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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거버넌스 3일 전

"카와이" 뒤에 숨은 침략의 역사: 일본 서브컬처와 한국 언론의 비평적 부재

📰 중국통신
[심층분석] 일본은 어떻게 서브컬처(Subculture)를 통해 침략을 미화할까? - 중국통신
일본 대중문화는 흔히 “귀엽고, 정교하며, 무해하다”는 꼬리표를 달고 세계에 널리 퍼져 나간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점은 일본이 오랫동안 ACGN, 즉 애니메이션

중국통신에 게재된 일본 서브컬쳐비평을 보며 최근 우리나라 언론에서 이런 비평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의견을 정리해 보았다.

오늘날 일본의 서브컬처는 더 이상 마니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교한 기획과 귀여운 캐릭터, 감성적인 서사를 둘러싼 일본 ACG(Anime, Comic, Game) 문화는 글로벌 대중문화의 중심에 섰다.

우리의 웹툰과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들도 더 이상 이것이 한국 캐릭터인지, 일본 서브컬처발 캐릭터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무의미해졌다. 한때는 왜색이라던 베이글, 로리거유 스타일의 여성캐릭터들이 지금은 게임에 차고 넘친다. 아이들은 '카와이, 카와이(귀엽네)'를 연발하며 친근함을 표시한다.

더불어 친근함과 감수성이라는 미명 아래 구성된 캐릭터들이 수행되는 역사의 재구성, 즉 ‘침략 역사의 탈맥락화’와 ‘피해자 서사로의 전환’은 더욱 치밀해지고 있다.

일본 서브컬처가 침략을 미화하는 핵심 기제는 ‘가해자의 맥락 삭제’와 ‘피해의 감성적 장악’이다. 태평양 전쟁을 다룬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은 전쟁을 일으킨 제국주의의 폭력성이나 타국에 가한 참상은 다루지 않는다. 대신 폭격받는 도시, 희생되는 민간인, 국가를 위해 장렬히 스러져가는 청춘의 순수함을 집중 조명한다. 전쟁은 원인 불명의 재앙처럼 묘사되고, 일본은 그 재앙 속에서 연민받아야 할 유일한 주체로 탈바꿈한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 가해는 사유의 영역 밖으로 밀려나고, 무해한 캐릭터들의 비극만이 소비된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명작으로 꼽히는 《반딧불이의 묘》가 대표적이다. 미군의 공습 속에서 참혹하게 죽어가는 어린 남매의 비극은 관객의 눈시울을 적신다. 그러나 이 작품 어디에도 “일본이 왜 폭격을 맞게 되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진 제국주의의 폭력성은 깔끔하게 오려내어지고, 전쟁은 원인 불명의 '자연재해'처럼 포장된다. 가해의 역사적 주체는 사라지고, 오직 전쟁이라는 재앙 속에서 연민받아야 할 불쌍한 피해자로서의 일본만 남는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판타지나 밀리터리 장르로 위장된 군국주의적 향수다. 역사적 사실을 가상의 세계관으로 각색하거나, 정교하게 고증된 군사 무기 뒤에 “국가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논리를 이식함으로써 젊은 세대에게 제국주의 시대의 정당성을 은연중에 학습시킨다. 침략은 ‘지방 수호’나 ‘세계의 평화’라는 명분으로 교체된다.

웹게임과 애니메이션으로 큰 인기를 끈 《함대 컬렉션》은 태평양전쟁 당시 타국을 침략했던 제국 해군의 전범 무기들을 매력적인 미소녀 캐릭터로 탈바꿈시켰다. 과거의 침략 도구들은 '세계 평화를 지키는 순수한 소녀들'이 되고, 정교하게 고증된 군사적 디자인은 낭만화되어 젊은 세대에게 제국주의 시대에 대한 자긍심과 향수를 은연중에 이식한다. 역사적 정당성이 부재한 자리에 시각적 쾌감과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대신 들어차는 순간, 역사적 경계심은 무력화된다.

심지어 이러한 프레임은 ‘가해자 후손의 억울함’이라는 철학적 질문으로까지 진화한다. 《진격의 거인》과 같은 작품은 과거 선조들이 저지른 죄 때문에 벽 안에 갇혀 억압받는 후손들의 서사를 다룬다. “과거의 역사 때문에 왜 지금의 우리가 속죄의 굴레를 쓰고 피해를 봐야 하는가?”라는 서사적 질문은 현대 일본 우익들이 전개하는 “전후 세대에게 속죄의 짐을 지우지 말라”는 논리와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침략국의 역사적 부채감은 어느새 ‘역차별받는 피해자 의식’으로 둔갑한다.

이처럼 일본 서브컬처는 노골적으로 "침략이 정당했다"고 외치지 않는다. 그 대신 가해의 원인을 삭제하고, 피해의 기억을 부각하며, 속죄에 대한 피로감을 원망으로 치환하는 방식으로 대중의 무의식을 침투한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한국 언론의 태도는 극도로 빈곤하다. 한국 언론은 일본 서브컬처를 대할 때 비판적 감시자로서의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욱일기 문양이나 명백한 우익 성우의 발언처럼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단순 상징물'에는 과도하게 분노하면서도, 서사 깊숙이 스며든 역사 수정주의의 논리 구조를 추적하고 해부하는 비평적 역량은 보여주지 못한다.

언론은 일본 서브컬처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정치적 맥락을 희석하는 ‘소프트 파워’로 작동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소비를 무조건 단죄하는 1차원적 반일 선동도, 문화와 정치를 이분법적으로 분리하여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방임주의도 답이 될 수 없다.

지금 한국 언론에 필요한 것은 ‘정밀한 문화비평’이다.대중이 소프트웨어에 담긴 감성적 자극을 즐기면서도, 그 내면에 숨겨진 역사적 왜곡과 가해자의 무책임성을 식별할 수 있도록 미디어 리터러시를 제시해야 한다. 문화라는 포장지 속에 숨겨진 제국주의의 잔재를 인지하지 못할 때, 우리는 가해자의 피해자 코스프레에 자발적으로 동조하는 역사적 인지부조화에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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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마토 P · 어제

반딧불이의 묘 >> 바로 제가 보며 느낀 이상한 감정의 이유가 뭔지 알려고 새벽까지 알아봤던 그 배경과 역사에 배신감을 숨길수가 없었던 애니입니다. 감독은 이후 전쟁시대를 살아간 평범한 아이들을 그린것이라 했으나 글쎄... 큰 그림으로야 전쟁이 주는 파괴력과 잔인함이겠으나 남매가 배급받았던 쌀은 우리에게서 수탈해간 그것들이 아니었을런지... 씁쓸합니다. 가해자의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시선과 전쟁속 피해를 입은 아이들을 보는 시선 그 중간 어딘가에 서서 말이죠.

호
호정 G · 어제

처음 나왔을 때, 여러 갑론을박이 있었죠. 가장 대표적인 사레라고 봅니다. 가해자의 역사를 지운 피해자 코스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