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거리마다 추석 인사를 전하는 국회의원과 시·도의원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명절을 맞아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니 반가워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다. 저 현수막은 주민을 향한 인사일까, 아니면 다음 선거를 위한 얼굴 알리기일까. 물론 현수막 한 장만으로 정치인의 활동을 판단할 수는 없다. 지역구를 챙기고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정치인들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명절마다 반복되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정치인들은 지금 주민을 만나고 있는 것인지, 유권자를 관리하고 있는 것인지 묻게 된다.
지역위원장-현역 국회의원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이 지역을 잘 관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당원을 많이 모으고 행사마다 사람이 많이 나오게 하는 것일 수있다. 그러나 지역정치가 그것만으로 굴러가서는 곤란하다. 특히 지역위원장이 공천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되면 정책과 지역 현안보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누구와 가까운지, 어느 행사에 참석하고 지역위원장과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가 은근한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공천을 앞둔 당원들은 다른 의견을 내는 데 조심스러워질 수 있다. 회의에서 이견이 사라지고 비슷한 목소리만 남으면 지역위원장 역시 자신의 판단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기회를 잃는다. 건강한 조직에는 동의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필요할 때 쓴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이 살아 있어야 조직도 건강해지고 판단의 오류도 줄어들텐데 현실은 거리가 멀 때가 많다.
사실, 국회의원의 역할은 지역구 관리에만 있지 않다. 정부를 견제 감시하며 법안을 만들고 예산을 심의하는 것이 본연의 책무다. 국가적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도 또한 중요하다. 지역을 대표해 국회에 들어간 만큼 지역과 국가를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지역의 목소리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중앙정치에만 몰두해 지역과 멀어져서도 안 되고, 반대로 행사 참석과 인맥 관리에 치우쳐 국회의 본연의 역할을 놓쳐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지역의 어려움을 얼마나 성실하게 듣고 해결하려 노력했는지, 그 목소리를 정책과 입법으로 얼마나 연결했는지다. 민원을 접수했다면 처리 과정과 결과를 설명하는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
민주당이라면 이런 문제를 더욱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당원 중심의 시각을 넘어 말없이 살아가는 주민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역의 진짜 문제는 회의장보다 일상의 현장에 더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보수세가 강한 지역에서 보수정당이 보여주는 장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정책과 이념을 떠나 오랫동안 지역사회와 관계를 이어가는 조직력은 배울 만하다. 다만 사람을 정치인 개인 중심으로 묶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이 편하게 찾고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추석 현수막을 다시 바라본다. 얼굴과 이름은 선명하지만 주민들이 보고 싶은 것은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명절 인사보다 평소 어떤 행보를 보여 왔는지, 지역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 했는지가 더 궁금하다. 총선을 준비하기 전에 정치인들이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었으면 한다. 나는 지금 주민을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유권자를 관리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