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감사 결과와 조희대 대법원장의 업무추진비 논란, 대법관 재제청 문제까지 겹치면서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편치 않다. 사법부의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독립이 견제받지 않는 권한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라면 재판뿐 아니라 인사와 예산, 행정에서도 투명성과 책임을 보여야 한다.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는 그 기본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감사원은 지난 8월 31일 대법원 정기감사에서 12건의 위법·부당 사항을 확인했다. 대법관들에게 법적 근거가 불분명한 현금 격려금을 지급한 것뿐 아니라 전산장비를 필요 이상으로 구매한 사실도 드러났다. 2025년 말 기준 PC 6131대, 프린터 2983대, 스캐너 559대가 예비품으로 남아 있었다. 가격이 낮아지자 구매 물량을 늘린 것으로 조사됐다.
예비 장비가 모두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물량이 남았다면 수요 예측이 적절했는지, 구매 과정에서 내부 통제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가격이 낮아졌다는 이유로 물량을 늘린 판단 역시 설명이 필요하다. 핵심은 장비 몇 대가 아니라 왜 이런 행정을 내부에서 걸러내지 못했느냐에 있다.
격려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지급 사실 자체에만 머물지 않고, 법적 근거와 집행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대법원처럼 권한과 상징성이 큰 기관일수록 내부 기준과 통제는 더 엄격해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업무추진비 공개 과정에서도 논란이 제기됐다. 취임 후 2년9개월 동안 2억6000여만 원을 사용했는데, 일부 식당의 참석 인원과 실제 수용 규모가 맞지 않거나 기록된 1인당 식사비와 실제 메뉴 가격에 차이가 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법원행정처는 참석 인원 기재 등에 실무자의 단순 실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JTBC, 9월 21일)
그 해명이 사실이라면 왜 그런 실수가 발생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최고 법원의 회계 기록을 단순한 실수로만 설명해서는 국민의 의문을 해소하기 어렵다. 누가 기록하고 누가 확인했는지, 집행 과정에 다른 문제는 없었는지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대법관 재제청 문제 역시 충분한 설명이 필요한 사안이다.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이 장기간 공석인 가운데 조 대법원장은 8월 18일 손봉기 후보자를 제청했다. 이후 대통령실이 재제청을 요구했고, 조 대법원장은 9월 22일 헌법적 근거와 구체적인 사유가 없다며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9월 22일)
대법원장이 사법부 독립과 자신의 제청권을 지키려는 것은 헌법적으로 따져볼 문제다. 대통령에게도 대법관 임명권이 있는 만큼 양측의 권한 관계 역시 법과 헌법에 따라 살펴봐야 한다. 다만 대법관 한 자리가 장기간 비어 있는 상황에서 충돌이 이어지는 만큼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이제 대법원장의 거취 문제도 외면하기 어렵다.
하지만 탄핵은 가볍게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그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먼저 따져야 한다. 감사원의 지적만으로 곧바로 탄핵 사유라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법적 책임만이 책임의 전부인 것도 아니다. 대법원장이 행정 논란의 중심에 서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흔들린다면, 최고 책임자로서 자신의 거취를 돌아볼 필요도 있다.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법적 유죄를 인정하라는 뜻이 아니다.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고 책임자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판단하라는 의미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일을 대법원장 개인의 문제로 끝내지 않는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가 보여줬듯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권한이 지나치게 집중되면 내부 견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번 감사 결과와 업무추진비 논란도 사법행정의 구조를 다시 살펴보게 한다.
재판의 독립은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인사·예산·업무추진비 같은 사법행정에는 더 강한 투명성과 견제가 필요하다.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적절히 분산하고, 주요 예산 집행과 행정 과정은 국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재판의 독립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사법행정까지 성역이 될 수는 없다.
대법원장 탄핵을 먼저 말하기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왜 내부 통제가 작동하지 않았는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무엇을 바꿀 것인가.
국민이 사법부를 믿는 이유는 법원이 권력을 견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법원 역시 자신의 권한과 행정을 국민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이번 논란이 특정 인사의 거취에만 머물지 않고 사법행정의 투명성과 견제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