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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거버넌스 2일 전

에이즈, 신종플루, COVID 죽음의 공포에서 만성 관리로: 바이러스와 인류가 맺은 정전 협정

1994년 9월 27일, 아홉 번째 생일을 단 하루 앞둔 여덟 살 어린이가 세상을 떠났다.

2살 때 에이즈(AIDS·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에 걸린 뒤, 6년이라는 짧은 생의 대부분을 어머니의 손을 잡고 미국 전역을 누비며 "우리 친구들을 에이즈로부터 보호해 주세요"라고 외쳤던 아이, 타일러 스프릭스(Tyler Spriggs)의 이야기다.

당시 사람들에게 에이즈는 선고받는 즉시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현대판 흑사병이었고, 그 공포는 타일러 같은 어린아이의 작은 손끝에까지 차갑게 미쳐 있었다.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 에이즈가 몰고 온 충격은 전 세계를 집어삼켰다.

1985년 할리우드 미남 스타 록 허드슨의 사망을 시작으로, 전설적인 록 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 철학자 미셸 푸코 등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이 차례로 에이즈로 목숨을 잃었다. 공포는 모르는 것에 대한 무지에서 증폭되었다.

악수로도 옮는다거나, 공기 중에 전염된다는 식의 흉흉한 소문이 돌았고, 수혈로 인해 감염되어 사망한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애시등 환자들은 질병의 통증보다 더 아픈 사회적 편견 속에 병을 드러내지 못하거나 고립 속에서 외롭게 죽어갔다. 에이즈는 그 자체로 절대적 종말을 의미하는 대명사였다.

에이즈에 관한 한 록 허드슨은 에이즈로 사망한 최초의 스타였으며, 그의 비극적 죽음은 에이즈에 대한 경종이 되어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 의회는 서둘러 에이즈 치료법을 위해 2억 2천 백만 달러를 예산으로 책정했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에이즈 연구 자금을 두 배로 올렸다. 평생 게이임을 숨기다 병을 통해서야 고통스럽게 아웃팅되었음에도 성적 지향을 공개적으로 밝혀온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은 일종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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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은 전염병은 비단 에이즈뿐만이 아니었다.

2009년 전 세계를 판데믹으로 빠뜨렸던 신종플루, 그리고 불과 몇 년 전 전 세계의 일상을 완전히 마비시켰던 COVID-19까지, 신종 바이러스의 첫 등장 순간은 언제나 거대한 쇼크와 혼란을 동반했다.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경계심이 가득했고, 매일 집계되는 사망자 수는 사회 전체를 짙은 우울감과 집단적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그 거센 난리법석과 공포의 파도는 왜 시간이 흐르면 거짓말처럼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 것일까?

오늘날 에이즈나 신종플루 소식이 언론에서 조용해진 이유는 그 질병들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의학의 발전을 통한 ‘만성 관리 체계로의 전환’덕분이다.

1990년대 중반, 3가지 이상의 약제를 조합해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칵테일 치료제'가 등장하면서 에이즈 치료의 판도는 완전히 뒤집혔다. 바이러스 자체를 체내에서 완전히 뿌리뽑지는 못하더라도, 하루 한 알의 약으로 바이러스 수치를 '감지 불가' 수준까지 낮출 수 있게 된 것이다. 바이러스가 감지되지 않으면 타인에게 전파되지 않는다는 'U=U(Undetectable=Untransmittable)' 원칙이 의학적으로 입증되었고, 이제 에이즈는 당뇨나 고혈압처럼 약을 먹으며 평생 관리할 수 있는 만성질환이 되었다.

신종플루 역시 타미플루라는 치료제와 정기 백신의 도입으로 독감의 일종으로 흡수되었고, 코비드-19 역시 백신 보급과 집단 면역, 변이 바이러스의 독성 약화 과정을 거치며 엔데믹(풍토병)으로 자리를 잡았다.

공포를 만든 것은 바이러스였지만, 그 공포를 침묵시킨 것은 바이러스의 멸종이 아닌 인류 과학의 지속적인 응전이었다.

반에이즈 운동의 절규와 수많은 연구자들의 지치지 않는 투쟁은 결국 오늘날 '치명적 불치병'을 '관리 가능한 질환'으로 바꾸어 놓는 기적을 일궈냈다.

뉴스에서 특정 전염병의 이름이 사라지고 세상이 조용해졌다는 것은, 인류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는 뜻이 아니다. 바이러스의 치명적인 공격을 무력화하고, 그것을 일상의 영역 안으로 길들여 조용히 통제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바이러스의 위협은 앞으로도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겠지만, 통곡과 공포를 관리와 일상으로 바꾼 이 침묵이야말로 인류 의학이 쟁취해 낸 가장 위대한 평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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