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나치의 재등장을 막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키는 장치를 촘촘하게 만든 나라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헌법에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고, 극단주의에 대한 감시와 법적 대응도 강화했다. 학교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을 하고, 연방정치교육원은 시민의 정치적 판단과 참여를 돕는 역할을 해왔다.
정치교육에도 원칙이 있다.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주입하지 않고, 논쟁적인 문제는 논쟁적으로 다루며, 학생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
그런데도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성장했다. 2025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AfD는 20.8%를 얻어 152석을 차지했다. 2021년 10.4%와 비교하면 득표율이 두 배로 늘었다.
이 결과를 민주시민교육의 실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독일이 보여주는 것은 민주주의의 제도적 방어와 시민이 현실에서 느끼는 불안 사이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교육은 나치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가르칠 수 있다. 법과 제도는 폭력과 차별,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행동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일자리가 불안하고 주거비 부담이 커지며 지역경제가 쇠퇴하는 문제까지 교육과 법이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시민은 정치에 묻게 된다.
“왜 물가는 오르는데 내 삶은 나아지지 않는가.”
“왜 우리 지역에는 좋은 일자리가 없는가.”
“왜 이민정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가.”
“왜 내 목소리는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가.”
이 질문에 기존 정치가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다른 정치세력이 그 빈자리를 차지한다. 극우를 지지하는 시민에게 민주주의를 모른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다. 불만에는 나름의 현실적 배경이 있을 수 있고, 그 배경을 외면하면 정치에 대한 불신은 커질 수 있다.
이민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민과 난민의 규모, 주거와 복지, 교육과 치안, 사회통합을 걱정하는 것 자체를 극우적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이런 문제는 민주주의 안에서 충분히 토론할 수 있다.
다만 현실의 불안을 특정 집단 전체의 책임으로 돌리고 배제와 차별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시민의 불안을 듣는 것과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독일이 풀어야 할 과제는 이 두 가지를 함께 해내는 것이다. 극단주의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극우정당에 표를 던진 시민 전체를 극단주의자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시민의 불만을 외면해서도 안 되지만, 그 불만을 이유로 다른 사람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주장까지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민주시민교육도 교실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나치의 역사와 헌법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주거, 일자리, 이민, 지역경제처럼 시민이 실제로 부딪히는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을 듣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정치의 책임은 더 직접적이다. 시민에게 극우의 위험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청년이 지역을 떠나지 않아도 될 일자리를 만들고, 산업 전환에서 뒤처지는 사람을 보호하며, 이민과 난민 정책을 예측 가능하게 운영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투표하고 제도를 지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시민이 자신의 목소리가 정치에 전달되고, 정치가 자신의 삶에서 변화를 만들어낸다고 느낄 때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도 유지될 수 있다.
독일은 나치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 기억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과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현재의 극우를 막을 수는 없다.
시민의 불안을 외면한 채 민주주의의 원칙만 강조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불안을 이유로 혐오와 배제를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극우의 성장을 이해하려면 시민에게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묻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정치가 시민에게 무엇을 해주었고, 무엇을 해결하지 못했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과 민주주의가 시민의 삶에서 작동하게 만드는 것. 독일의 경험은 이 두 가지가 결국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