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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삼진그룹 영어토익반’, 100% KO 어퍼컷!!!
1995년, 모 기업 ‘토익반’ ‘페놀 유출사건’ 실화 모티브 영화적 ‘풍자’
여성 중심 서사와 대결 구도…25년 지나도 바뀌지 않은 현실 부조리
2020-10-14 00:00:00 2020-10-14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단점을 굳이 찾아보자면 의미를 직시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의미가 모호해지는 제목뿐이다. 이 정도로 통쾌한 것도 의외이지만, 이 정도로 재미까지 더하고 있다면 코로나19’로 여전히 쪼그라든 시장 활성화에 큰 영향력을 기대해도 좋을 반전 카드로 차고 넘친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은 게 당연하던 시절의 얘기를 그린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 속에서 그리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은 지금의 시대에서도 통용되는 불합리, 적폐, 불의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들이다.
 
 
이 영화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여성 중심의 서사는 언제나 승리의 역사를 그려냈고, 그런 희망을 담아 소망을 품어내 왔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도 마찬가지다. 그 시절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하찮게 생각하던 고졸 말단 여사원 3인방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약자다. 그래서 피해를 본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한다고만 여겼던 시대다. 하지만 그들은 그걸 거부했다. 스스로 그 모든 것에 대항했다. 한 마디로 쪽 팔렸기 때문이 가장 적절했을 듯싶다. 지금의 내가,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절대 하지 못할 말, 해서는 안될 말이라고 배웠던 그 말. 그냥 무던하게 무난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흘러가는 세월에 순응하는 법에 익숙했던 우리에겐 없던 그것. 그것을 약자라고 불린 3인 방을 통해 대리 만족을 하게 되는 순간. 관객들은 저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어퍼컷을 날리게 된다. 이건 이 영화가 전하는, 아니 영화가 전하는 가장 마법 같은 순간이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통쾌하다 못해 시원하고, 시원하다 못해 짜릿하며, 짜릿하다 못해 화끈한 역전 만루 홈런의 묘미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먼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제목이다. 1995년 배경의 이 영화 속 두 가지 축이다. 그 두 가지는 그 시절 실재했던 사건이다. 모 대기업이 고졸 사원 승진 시험 준비반으로 운영하던 영어 토익반그리고 그 시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페놀유출 사건이 이 영화의 기본 베이스다.
 
지금과 비교하면 이 영화 속 세상은 하늘이 땅이고, 땅이 하늘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상황이 버젓이 일상처럼 돌아간다.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 직원들, 남자 직원들의 담배 심부름을 하는 여자 직원들. 부장님 과장님 대리님의 아침 커피를 담당하는 여자 직원들. 그게 자신들의 당연한 업무라고 생각하는 고졸 말단 여직원들. 차별이란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이다. 그 속에서 입사 8년차 이자영(고아성) 정유나(이솜) 심보람(박혜수). 세 사람은 매일이 전쟁이다. 멋들어진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싶지만 현실은 부장님 구두 심부름, 전화 받아 돌리기, 서류 정리가 전부다. 빼어난 미모와 늘씬한 몸매가 무기인 유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좋은 아이디어는 항상 대졸 입사 선배에게 가로채기 당하기 일쑤다. 미모와 몸매로 남자 상사 꼬시기 모함을 듣지만 대꾸 한 마디 못한다. 소심한 성격의 보람은 고교 시절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 경력자. 하지만 현실은 남자 직원들의 가짜 법인카드 영수증 처리가 전부. 타부서 고졸 입사 선배는 임신때문에 해고를 당한다. 그들의 눈에 임신 해고는 자신들의 미래다. 승진은 언감생심이다. 입사 후배 남자가 대리를 달고 있지만 입도 뻥끗 못한다. 그게 그들에겐 당연한 일상이다. 사실 생각도 못했고, 해볼 노력도 안 해 본 것이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런 그들이 도전의 기회를 잡는다. 배려인지 배품인지는 모르겠다. 글로벌 시대를 맞이해 토익 600점을 넘으면 대리 승진을 약속한 회사. 상고 출신 고졸 여직원들은 모두 회사에서 개설한 토익반에 등록한다. 이제 그들도 꿈에 그리던 승진 기회를 얻게 됐다.
 
자영과 유나 보람, 그들도 큰 소리 치고, 부하 직원들에게 땍땍거리는 상사를 꿈꾼다. 기회는 왔다. 그걸 잡으면 된다. 어설픈 영어를 읊조리며 눈 앞에 떠다니는 기회를 잡기 위해 허우적댄다. 하지만 그 기회가 그들에겐 서글픈 허상이었음이 드러나는 사건이 된다. 그룹 회장의 말썽꾸러기 아들인 상무가 본사 발령을 받는다. 상무가 일하던 공장으로 짐을 챙기러 떠난 자영은 그곳에서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다. 독극물인 폐놀이 무단으로 방류되고 있었다. 인근 마을 사람들은 모두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허덕이고 있었다. 자영은 자신이 쫓던 꿈과 현실의 괴리감 속에서 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우선 갈등의 괴리감을 풀기 위해 단짝 유나 보람과 함께 원인 분석에 나선다. 자영의 추진력, 유나의 실행력, 보람의 계산력이 더해지면서 세 사람의 행보는 예상치 못한 거대 흑막을 향해 점점 더 다가서게 된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영화의 유일한 단점은 제목이다. 하지만 가장 적절한 제목이기도 하다. 그 시절 실재했던 한 개의 일화, 또 다른 한 개의 사건을 끌어와 제목으로 융화시켰다. 그리고 제목 그대로 영화가 말하는 내용도 두 가지다. 주된 얘기는 삼진그룹에서 벌어진 흑막이다. 여성, 그리고 고졸, 그리고 말단 사원. 세 가지 모두 조직 사회 속 가장 밑바탕이다. 가장 꼴등이란 말도 된다. 결과적으로 꼴지의 반란이다. 그리고 또 1등의 패배다. 성적 순도 아니고, 점수의 등수도 아니다. 그 시절, 사회가 채점했다. 몇 점짜리 인간, 몇 점짜리 인생, 몇 점짜리 직업. 사회가 바라본 꼴등의 삶은 그들을 지배한 삶은 결코 아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교과서 속 대사가 거북스럽다고 하지만 그게 지금도 통용되고 또 지금도 거절할 수 없는 룰이란 점에서 이 영화 속 그 지점은 사실 많이 아프다. ‘너 하고 싶은 일 해란 대사가 아프게 다가오는 건 25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바뀐 건 티끌이고, 버티고 있는 건 태산이란 말이 가슴 아프지만 현실이기에 무겁게 다가온다.
 
영화 속 토익반’, 그리고 영어는 이중성이다. 1등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1등 남자들의 무기다. 글로벌 회사를 추구하는 외국인 사장님의 친근하면서도 속내를 알 수 없는 거만한 표정 속의 표피는 조직 사회의 민 낯이고,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유창하게 쏟아지는 영어와 또박또박 받아 치는 우리말의 대화가 서로 통하는 기묘한 상황은 그래서 사회가 만들어 놓은 줄 세우기의 이중성이고, ‘남녀가 차별된다는 당연함이 지배한 사회의 통렬한 풍자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삼진그룹과 토익반을 한 줄로 세웠다. 그래서 이 영화가 됐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줄 세우기의 주체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전한다. 이건 지금의 시대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얘기이고 룰이다. 바뀐 건 티끌이고, 아직도 버티고 있는 건 태산이라고 하지만 태산도 티끌만큼 옮기고 옮기다 보면 언젠가는 티끌 만큼 작아진다. 반대로 티끌도 모으고 또 모으다 보면 태산처럼 거대해 진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명확하다. 작은 힘과 큰 힘의 대결이다. 여성이 주체이고 여성의 서사가 전체의 맥을 짚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바꿔 말하면 이건 과거의 얘기이고, 지금의 얘기이며 또 다가올 미래의 얘기다. ‘나를 보지 말고 너를 봐라는 유나의 통쾌한 사이다 한 방처럼,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현재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린 바뀌지 않는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지금을 바뀌기 위해 노력하지만 과거와 미래의 족쇄에 이끌려 다니는 우리의 현실을 향한 통쾌한 어퍼컷이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날리는 그 한 방이 너무너무 시원하다. 개봉은 오는 10월 중.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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