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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돌멩이’ 김대명 “아파하는 석구와 많은 얘기 나누고 싶다”
“‘맞다’ ‘틀리다’ 개념 아닌 ‘다름’에 대한 얘기, 우린 모두 다른 존재”
끔찍한 오해 받은 ‘석구’ 연기…”내가 점 돼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2020-10-15 00:00:01 2020-10-15 00: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조심스러워했다. 본인의 의도와 생각이 잘못 전달될지 걱정을 했다. 연기 잘하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배우 김대명은 데뷔 이후 가장 힘없는 인물을 연기했다. 영화 돌멩이에서 그는 8세의 지능을 가진 30대의 남자 석구를 만들었다. 영화 속 석구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 혼자 사는 8세의 어린 남자다. 하지만 동네 모든 이웃들이 그의 가족이고 친구다. 모두가 그를 살뜰하게 챙기고 보살핀다. 석구도 그런 이웃들과 함께 웃으며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예정됐던 것처럼 그에게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그 사건으로 인해 석구는 모든 것을 잃는다.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이웃들의 시선이다. 믿었던 이웃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는 아픔은 겪어 보지 않은 관객 입장에서도 상상이 안 된다. 석구는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석구는 믿고 싶다. 그들을 믿고 싶다. 그런 석구의 심정과 상처는 김대명의 섬세하고 내밀한 연기를 통해 오롯이 스크린에 투영됐다. 너무 아프게, 그리고 너무 안타깝게, 그리고 너무 화가 나게. 보이는 것만 믿고 싶었던 사람들의 선입견은 어린 어른석구를 낭떠러지 끝으로 몰아 세웠다. 김대명이 그런 석구를 위해 나섰다.
 
배우 김대명. 사진/리틀빅픽처스
 
김대명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할 때마다 제가 제대로 잘 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라는 말을 연이어 했다. 그만큼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발달장애인이 주인공이다. 사회적 약자의 개념에서 어쩌면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사람들이 이 영화의 소재이고 주인공인 셈이다. 그런 사람들을 소재적인 측면으로 끌어왔기에 소비로만 비춰지는 모습에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우리가 항상 하는 얘기잖아요. 장애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사실 모든 것에서 적용될 수 있는 말 같아요. ‘맞다’ ‘틀리다의 개념이 아니라 다름에 대한 얘기죠. 우린 모두가 다른 존재잖아요.너와 내가 다르듯이, 그걸 틀리다의 개념으로 끌어가는 건 답이 아니죠. 사실 모든 건 이해하지 않으려 드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이 영화를 보고 관객 분들이 다름을 얘기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서 출연을 결정했어요.”
 
데뷔 이후 꽤 많은 작품을 소화했다. 하지만 포스터 전면에 자신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경험이 이번이 처음이라며 쑥스러워했다. 사실상 첫 단독 주연작이다. 김대명도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연기에서만큼은 베테랑 축에 속하는 데뷔 경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첫 데뷔작은 부담감이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단다.
 
배우 김대명. 사진/리틀빅픽처스
 
사실 현장에선 몰랐어요. 촬영에 집중하느라. 그런 걸 느낄 시간도 없었죠. 언론시사회가 끝나고 다른 홍보 일정을 소화하는 대 그때 포스터 사진을 보는데 어깨에 뭔가 묵직하게 쌓이는 느낌이 왔어요. 옆에 계신 선배님들을 보니 이런 무게를 견디고 오셨구나싶었죠. 나중에 저와 함께 이 영화를 작업한 모든 분들에게 행복한 기억이 남았으면 싶어요.”
 
의도와 메시지가 그만큼 묵직했다. 하지만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 김대명에게 돌멩이의 석구는 보통 힘든 배역이 아니었다. 우선 8세 지능을 가진 30대의 성인 남자다. 발달장애를 연기해야 하는 입장에서 수 많은 레퍼런스가 있다. 하지만 자칫 특정 계층을 희화화시킬 우려가 가장 많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대사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대사가 A4 절반 분량도 안됐다. 모든 감정을 표정과 몸짓으로 대신해야 했다.
 
가장 힘든 건 대사가 없단 것이죠. 석구가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감정을 더 정확하게 표현할 텐데. 그게 생략돼 있으니 아주 작은 것들로 채워야 했어요. 너무 답답해서(웃음). 하지만 연기를 하면서 한 편으론 석구가 부럽기도 했어요. 곡해가 될 수도 있는데 우린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에 살잖아요. 하지만 석구는 자신의 감정에 너무도 솔직하잖아요. 얼마나 순수하고 착한 심성이에요. 이런 석구를 만들기 위해 사실 다른 영화를 볼까도 했지만 그건 답이 아닌 것 같았어요. 시설에 가서 발달장애 친구들을 실제로 만나기도 했고, 저의 8세 시절 기억을 많이 끌어 왔어요. 8세였을 때의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배우 김대명. 사진/리틀빅픽처스
 
영화 속에서 석구는 송윤아가 연기한 김선생에게 극단적인 오해를 받게 된다. 사실 그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시퀀스이면서도 사건의 전환이 이뤄지는 부분이다. 스포일러에 해당하기도 한다. 그 장면에서의 감정이 궁금했다. 연기였지만 오해의 극단이 이뤄지는 지점이다. 그리고 만약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면 인간 김대명은 어떤 감정이 들까. 영화 속 석구의 심정은 진짜 어땠을까.
 
우선 영화 속 석구로서 말씀 드리면 그냥 제가 이 되는 느낌이었어요.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난 잘못을 한 게 없고. 그런데 소리를 지르니 내가 잘못한 건가 싶고. 너무 힘들었어요. 눈 앞에 어른이 소리를 지르니 그게 아니라요라고 해명할 용기조차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도 진짜 식은 땀이 나는 것 같아요. 정말 끔찍한 순간이었어요.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었죠.”
 
만약이다. 정말 만약이다. ‘석구는 영화 속에 존재하지만 사실 현실에도 수 많은 석구가 있다. 이 영화를 볼 석구도 있다. 이 영화를 볼 석구 중에는 영화 속 석구처럼 극단적인 오해를 받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석구가 있을 것이다. 그런 석구가 이 영화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김대명은 그런 석구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하게 될까.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거운 표정이었다.
 
배우 김대명. 사진/리틀빅픽처스
 
그 모습을 보는 제가 너무 아플 것 같아요.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그리고 만약 석구와 같은 친구가 이 영화를 보고 아파한다면 그 옆에서 먼저 손을 잡아 주고 싶어요. 그리고 또 그 친구와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정말 많은 얘기를 하고 싶어요. 상처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고. 그냥 나와 그 친구의 얘기일 수도 있고. 우선은 혼자 두고 싶지 않아요. 절대로.”
 
돌멩이는 답을 하는 영화는 아니다. 질문을 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의미가 있고, 또 너무도 무겁다. 그 질문을 받는 사람은 내가 될 수도 있고, 당신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는 질문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 질문이다. 김대명 역시 그 질문을 받았고, 그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됐었다.
 
배우 김대명. 사진/리틀빅픽처스
 
전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고, 또 무언가를 잘못 알고 있는지 느껴야 된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저희 영화는 어떤 문제에 묵직한 돌멩이 하나를 던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굴 때리고 아프게 할 목적의 돌멩이가 절대 아닙니다. ‘틀림이 아닌 다름에 대한 질문을 하는 돌멩이죠. 전 이 영화를 통해 저만의 답을 찾았어요. 이제 이 영화를 보실 관객 분들도 각자의 답을 찾으셨으면 합니다. 결코 가볍지는 않을 답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답이라고 생각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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