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 이후 국방장관 출신별 비율. (자료=국방부)
[뉴스토마토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12·3 불법 계엄으로 치러지게 된 6·3 조기 대선의 선거운동이 본격화하면서 군 안팎에서는 차기 정부 첫 국방부 장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이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대의 아래 치러지는 만큼 내란을 주도했던 군 출신 국방부 장관 대신 군의 문민 통제를 실현할 문민 국방부 장관이 탄생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습니다.
노태우정부를 끝으로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1993년 이후 임명된 국방부 장관은 모두 장군 출신 인사였습니다. 이 기간 총 21명의 국방부 장관 중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16명(약 76.2%)으로 가장 많습니다. 노무현정부 첫 국방부 장관이었던 갑종장교 출신 조영길 장관까지 더하면 육군 장군 출신 국방부 장관은 17명으로 80%가 넘습니다. 해군사관학교와 공군사관학교 출신 국방부 장관은 각각 2명씩입니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민간인 국방부 장관은 이승만정부에서 3명, 박정희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1년도 못 채우고 내준 장면 내각에서 2명 등 총 5명뿐입니다. 짧게는 지난 30여년, 길게 보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국방부의 수장을 육군(육사) 출신 인사들이 독식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방부 장관에 민간인 출신 인사를 임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노무현정부에서 본격화했습니다. 군내 소수인 갑종장교 출신 조 장관에 이어 해군 중장 출신 윤광웅 장관이 '국방개혁 2020' 계획을 완성하자 이를 실행하기 위해 각 군과 선배 예비역 인사들로부터 자유로운 민간인 국방부 장관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당시 첫 문민 국방부 장관으로 국회 국방위원장을 역임한 장영달·유재건 의원 등이 거론됐지만 2006년 10월9일 북한의 첫 핵실험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문민 국방부 장관 탄생은 물거품이 되고, 육사 출신인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임명됐습니다.
이후 예비역 장군들이 득세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문민 국방부 장관'은 금기어에 가까웠고, 문재인정부에서는 개각 때마다 문민 국방부 장관 임명이 거론되긴 했지만 시기상조라는 여론에 밀려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결국 윤석열정부 들어 윤씨의 충암고 1년 선배인 육사 출신 김용현씨가 정권의 핵심 인물로 등장했고 경호처장을 거쳐 국방부 장관이 된 김씨는 결국 윤씨와 함께 12·3 불법계엄을 통해 군을 이용한 내란을 일으켰습니다.
역대 정부에서 군의 문민 통제라는 민주 국가의 기본 원칙을 저버린 후과라는 게 군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12·3 불법계엄, 문민 국방장관 필요성 보여줘
12·3 불법 계엄으로 문민 국방부 장관 탄생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13일 <뉴스토마토>에 "12·3 불법 계엄이 문민 국방부 장관 필요성을 제대로 보여줬다"며 "그동안 군 출신 국방부 장관이 국방정책 전반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얼마나 왜곡을 일으켰는지 계엄을 통해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육군 출신, 육사 출신 장관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예산, 조직, 인사 등 국방의 거의 모든 분야가 육군 중심으로 배분됐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런 이유 때문에 국방부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못 하고, 분배의 불균형을 초래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국방부가 제 역할을 해야 되는 것이고, 국방부가 제 역할을 한다는 게 군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라며 "불균형적이고 비정상적으로 성장해온 군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균형적인 의사결정과 객관적인 자원 배분을 할 수 있는 문민 국방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성진 안보22 대표는 "육군 중장 출신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정치적 어려움조차 총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나섰다가 군 통수권자와 함께 몰락했다"면 "군 통수권자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는 이유로 임명된 장군 출신 국방부 장관이 저지른 국가적 혼란의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의 몫이 됐다"고 꼬집었습니다.
박 대표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이유로 당연히 군 출신이 국방부 장관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에 많은 현역 군인들조차 동의하지 않는다"며 "국방부 장관이라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지시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게 덕목이 아니라, 국방 철학을 교감하면서 대통령에게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특히 박 대표는 "한국군이 천문학적 국방 예산을 쓰는 군대가 된 만큼 이제 더이상 국방 업무를 전쟁을 감당하고 부대를 관리하는 시점만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며 "국무위원이면서 국방 업무의 전반을 전문성 있게 담당할 경영인 출신 장관이 나올 때가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박 대표는 "전문 경영인 출신의 국방부 장관은 예비역·퇴역 단체나 외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군 조직의 효율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고, 국방 운용에 있어 비용 지출의 초기 기획 단계부터 중간 점검, 획득, 운용, 문제점 처리에 이르기까지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유리하다"며 "전투 임무태세는 '전쟁 전문가'로서 군복을 입은 합참과 각군 지휘관들에게 맡겨도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엄효식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현재 대한민국은 문민 국방부 장관을 충분히 임명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그런다고 군대가 무너지는것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엄 사무총장은 "다만 무조건 군 출신을 배제하는 건 부적절하다"며 "헌법 정신에 충실하고 능력 있는 인물이라면 민간인이든, 군 출신이든 할 수 있어야 하고 특히 군 출신이라면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처럼 영관장교도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헌법적 가치 수호하는 강군 만들 적임자 찾아야
현재까지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한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국방 문민화를 10대 공약에 포함시킨 데 이어 국방부 장관을 포함해 각 부처 장관 후보자 추천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자 군 안팎에는 차기 국방부 장관에 누가 유력하다는 등의 출처 모를 소문들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계엄 이후 실추된 군의 사기, 안정적인 안보 상황 관리 등을 위해 군을 잘 아는 군 출신 인사가 국방부 장관을 맡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다른 한편에서는 내란 종식과 군 개혁, 문민 통제 원칙을 세우기 위해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현재 상황에서 '출신'이 중요해 보이진 않습니다. 국방 개혁을 통해 12·3 불법 계엄 이후 나락으로 떨어진 군의 신뢰를 회복하고,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강한 군대를 만드는 데 적임자를 찾는 게 우선이라고 군사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sto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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