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표진수 기자] 제21대 대통령선거가 약 열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대선은 대내외 복합 위기에 직면한 상태에서 치르게 됐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저성장이 뉴노멀이 된 현실에서 여야 대선 주자는 모두 ‘경제 성장’을 1순위 공약으로 꼽으며 표심 잡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파탄난 한국경제를 되살릴 묘안은 무엇인지, 대선 후보자들의 산업 공약을 분야별로 나눠 점검합니다._편집자
14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부산진구 서면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경남 진주시 진주광미사거리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부산 금정구 부산대학교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다.(왼쪽부터) (사진=연합뉴스)
21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21대 대선 후보들이 내세운 경제 공약 가운데 자동차 등 전통적인 의미의 제조업 관련 공약은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선 후보들이 발표한 공약은 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신산업 분야에 초점을 맞춰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미래를 선도하기 위해 신산업 육성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난 수십년간 한국경제를 지탱해 온 자동차 등 제조업 부흥을 위한 실질적 방안은 빠져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각 당 후보들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집을 보면, 주요 대선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 분야 공약은 눈에 띄지가 않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산업 공략과 관련해 AI 등 신산업 집중 육성을 통한 새로운 성장기반 구축을 강조해 담았습니다. AX(인공지능 전환)와 반도체, 방산, 조선 그리고 국가첨단전략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목표입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미래산업에 집중하는 공약을 제시했습니다. AI, 에너지에 집중 투자를 하고 생태계를 조성해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이준석 후보는 해외로 옮겼던 기업이 국내로 복귀하는 리쇼어링 촉진 등을 약속했습니다.
AI가 대세라지만, 여전히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오고 있는 것은 제조업입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자료 등을 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7.8%입니다. 이는 미국(11.6%), 영국(9.6%)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높은 수준입니다.
한국은 제조업 중심 수출로 성장한 나라로 이에 따른 의존도도 높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1일 발표한 ‘우리 제조업 국내 및 해외 수요 의존도 현황과 시사점’을 보면 2023년 한국 제조업 GDP는 총 4838억달러로 그중 58.4%(2824억달러)가 해외 수요로 유발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수출이 근간인 제조업이 흔들리면 한국경제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셈입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강소에서 직원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온 제조업은, 현재 미중 무역 갈등과 관세 폭탄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장기 침체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지난 8일 이재명 후보와 경제5단체 간담회에서 “미국, 중국이 신산업을 집중 육성해 온 지난 20년간 한국 제조업은 성장판이 닫혔다”며 “대부분의 주력산업이 중국에 추월 위기에 빠졌고 석유화학과 철강은 존폐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최우선 과제는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이고 위기산업 구조개혁도 시급하다”며 “과잉생산 설비 폐기에 세제 혜택을 부여해 원활한 구조조정을 유도해야 하고 테스트배드 단지를 조성·지원해 연구개발(R&D)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당부한 바 있습니다.
물론 각 후보별 홈페이지를 보면, 광역별 세부 공약으로 제조업 관련 정책이 제시돼 있지만, 이마저도 역대 대선과 비교하면 빈약한 실정입니다.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전통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고,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제조업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스마트 제조업 부흥 전략’을 공약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조차 규제 합리화를 통한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 추진’을 공언하기도 했습니다. 제조업 위기 국면에서 대선 후보들의 제조업 관련 공약이 전무한 사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국 보호주의 목표 아래 제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국 내 공장을 짓도록 노골적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트럼프 관세 폭풍의 직접적 영향으로 수출 감소가 현실화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에 대한 주요 후보들의 공약이 제시되지 않은 점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이재명 후보는 전기차 보급 확대 및 노후경유차 조기 대·폐차 지원을 내세우며 미래차 전환·투자와 고용 전환 지원을 약속한 데 그쳤고,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는 AI를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기술에 집중한 공약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서는 실망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표심을 얻기 위해 AI 등 신산업 육성을 아젠다로 삼는 것은 이해하지만 제조업을 상대적으로 작은 이슈로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노력, 인프라 구축, 정부 지원 등으로 함께 육성돼야 하는데 주요 정책 공약에서 빠진 것 같아 다소 아쉽다”고 했습니다. 다만, 업계에서는 선거 이후 새 정책 수립 과정에서 제조업에 대한 주요 지원책이 반영되길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경기 평택항 자동차 전용부두에 선적을 기다리는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도 이번 대선에 유독 자동차 등 제조업 관련 공약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통 자동차 정책은 장기적으로 5년 단위로 이어져 이명박 정부때까지는 교수와 전문가가 함께 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산업 정책은 이어받기 하면서 과거 정책을 개선 보완하지만 현재 (자동차 정책은) 무용지물 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올해 대선은 예전보다 자동차 공약이 더 없어 결과적으로 모빌리티 쪽 정책이 굉장히 취약해졌다”며 “전기차를 보급하겠다고만 하지 세부적 내용은 없다. 이런 점은 배터리나 자율주행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국가경제를 이끄는 산업적 측면을 고려해 새정부 출범 이후라도 정책이 보완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배덕훈·표진수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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