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박혜정 기자] 닻을 올린 이재명정부가 대표 공약인 인공지능(AI) 산업 육성 정책 추진을 본격화하면서 AI 기반 첨단 산업 육성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글로벌 AI 경쟁에서 뒤처진 상황을 따라잡고 새정부가 목표로 한 ‘AI 3강’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AI 정책 마련이 필수적입니다. 산업계에서는 지원과 함께 인프라와 인재 양성 등 AI 생태계 조성이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 서울 강남구 퓨리오사AI를 방문해 NPU칩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취임 직후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AI 관련 조치는 ‘컨트롤타워’ 구축입니다. 지난 6일 이 대통령은 대통령실에 ‘AI미래기획수석’을 별도로 두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AI미래기획수석 아래에는 국가AI정책, 과학기술연구, 인구정책, 기후환경에너지 등 4개 비서관실이 꾸려졌는데, AI미래기획수석을 국가 ‘최고AI책임자’(CAIO)로 범국가 AI 전략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취지입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AI,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산업에 대한 대대적 투자와 지원을 약속했던 이 대통령은, 앞선 4일 취임선서 후에도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눈 깜빡할 새 페이지가 넘어가는 인공지능 무한경쟁 시대가 열렸다”며 흔들림 없이 지원과 육성을 해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여당도 보조를 맞추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5일 ‘대한민국 신성장 동력, AI 스타트업 육성으로’를 주제로 AI스타트업·중소기업 간담회를 진행하고 새정부의 AI 공약을 점검하며 정책 과제를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지난 4월 최민희 의원이 대표발의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과학기술정보통신인공지능부’로 개편하고,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하는 방안도 검토 중에 있습니다.
업계에선 이 대통령의 AI 정책 방향이 ‘인공지능 대전환’(AX)에 방점이 찍혀 있는 만큼, 제조업 중심의 국내 산업 기반이 AI·로봇 등의 기술력과 접목해 스마트 설비 등으로 전환하는 이종 산업 간의 융합이 빠르게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선 기간 동안 “AI와 로봇을 통해 자동화율과 생산성을 높이고 작업자의 안전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 이 대통령은, ‘AI 로봇 수도’ 육성을 제시하며 대구 지역에 AI·첨단 로봇 융합 밸리 조성 가능성도 시사한 바 있습니다.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국제인공지능대전에 전시된 AI 로봇 (사진=뉴시스)
“AI 활용도 낮아…인프라 구축부터”
이처럼 이재명정부 AI 산업 육성책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가운데, 산업계에서는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AI 생태계 구축을 꼽고 있습니다. AI 기반 첨단 산업 육성에 대한 기대에도 인프라 부족해 AI 활용도가 낮은 현실에서 무엇보다 산업 AI 생태계 조성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9일 발표한 ‘AI 시대가 이끄는 한국 주력 수출 산업 변화’ 보고서를 보면, 국내 무역업 관련 기업(396개사) 중 16.9%만이 AI를 활용한 능동적인 업무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마저도 마케팅·브랜딩(21.9%), 제품 및 서비스 기획·개발(19.7%) 등 아이디어 기반 업무로 생산·제조 등 핵심 운영 분야에서의 활용률은 10% 미만에 그쳤습니다. AI로 인한 산업 전반의 변화는 시작됐지만, 국내 산업계의 AI 도입은 초기 수준에 불과하다는 분석입니다.
실제 AI를 바탕으로 한 산업 전반의 구조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수출 산업도 생산 최적화 중심에서 운영 최적화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는 AI 특화 반도체를 중심으로 생태계가 바뀌고 있습니다. 또한 자동차의 경우 ‘달리는 플랫폼’으로서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으로의 전환이 가속화하고 있고, 조선·해운 산업에서는 자율운항 선박 기술과 AI 기반 스마트 조선소로 수주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한국이 제조업 기반 국가로서 산업 AI의 핵심인 제조 데이터를 충분히 갖고 있지만 실질적 활용을 위한 표준화 및 연계 인프라가 미흡해 산업 AI 도입에 제약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따라 “반도체, 자동차 등 핵심 수출 산업을 중심으로 제조 데이터의 구조화·표준화를 선제적으로 추진하고 더 나아가 자국 데이터 및 인프라를 활용한 산업별 특화 AI 생태계를 조성해 디지털 주권과 데이터 안보를 확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경남 창원시 LG전자 스마트파크에서 로봇 팔이 냉장고 문을 조립하는 모습. (사진=LG전자 제공)
“산업 간 AI 도입 격차 커…지원 필요”
산업 간 AI 도입 격차가 크다는 지적과 함께 인프라·인재·데이터 등 생태계 구축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대한상의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도 제기합니다. SGI가 전날 발표한 ‘AI 도입이 기업 성과 및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AI 기술을 도입한 기업은 부가가치와 매출이 각각 약 7.6%, 4%로 증가한 반면, 국내 기업의 AI 도입률은 6.4%(2023년 기준)에 그쳤습니다. 이마저도 제조업은 4%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SGI는 “한국이 제조업 분야에서의 AI 기술과의 융합이 지체될 경우 산업 AI 개발과 활용을 가속화하고 있는 중국 등에 뒤처져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했습니다.
SGI는 특히 AI를 통한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AI 인프라 및 인적 자원에 대한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투자, AI 확산에 따른 불균형 격차 완화, 경영진의 전략적 대응 역량 제고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 생태계는 특정 산업 내 다양한 요소들이 지속가능하게 유지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재 AI·로봇 산업은 제대로 된 생태계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라며 “기술 수준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산업 현장에서 시범 적용을 하도록 차기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배덕훈·박혜정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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