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한국 산업계의 비명이 커지고 있다
. 원유
, 나프타
(납사
), 액화천연가스
(LNG) 등 중동산 원재료 수급 차질로 산업 전반에서 각종 경고음이 속출하고
, 고유가·고운임 등 부대 비용 상승으로 주력 수출 업종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 완연한 봄이 찾아왔지만
,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중동에서 불어온 삭풍에 산업계에는 다시 겨울인 셈이다
.
문제는 이제 시작된 겨울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에 있다. 당장 종전이 된다고 하더라도 에너지 위기 상황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홍해 봉쇄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든 예멘의 친이란 무장단체 후티 반군의 참전은, 장기간 이어질 엄혹한 겨울을 예고한다.
이번 중동 사태는 산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가 압도적인 한국 경제의 근본적 취약성을 재확인한 까닭이다. 한국은 원유의 약 70%, 나프타의 절반가량, LNG의 약 20%를 중동 지역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수급선이 막히면서 석유화학 공장이 멈췄고, 주력산업인 제조업 전체로 연쇄 타격이 이어졌다. 수출기업들도 유가 상승과 운임비 압박 등 부담만 치솟았다. 곳곳에서 곡소리가 터져나오는 이유다. 정부도 원유 자원안보위기 단계를 ‘경계’로 격상하고 공공기관 ‘승용차 2부제’ 시행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의 위기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동발 사태마다 에너지 위기 상황에 처하는 한국 경제의 종속적 조건을 이젠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미-이란 전쟁으로 산업구조의 아킬레스건이 다시 드러난 만큼, 위기 극복을 넘어 에너지 약점을 보강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그동안 구호로만 그쳐왔던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와 에너지 안보를 위한 의지를 이제는 구체화해야 할 때다. 외부 충격을 완전히 상쇄할 수는 없겠지만, 충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안부터 고민해야 한다.
선원이 촬영한 중동 사태 현장. (사진=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먼저 단기적으로 민관이 원팀이 돼 공급망 위기관리에 주력해야 한다. LG화학이 정부와의 공조를 통해 러시아산 나프타 2만7000톤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사례는 이런 점에서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산업의 구조적 체질 개선 노력도 이참에 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핵심 원료의 안전 재고 물량을 확보하고 글로벌 공급망 단절에 대응해 수요처 인근 지역으로의 생산 거점 다변화 전략을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기술 혁신 및 공정 전환을 위한 기술 투자와 함께 신재생 에너지원 기반 시스템 도입도 필요하다. 정부 역시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에너지 강국과 협력 및 자원 외교를 강화하고 핵심 소재의 국내 재고 확보 등 기업을 위한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
늘 그렇듯 위기는 반복돼 왔다. 하지만 단순 위기 극복을 넘어서 체질 개선 등 기회로 삼을 때야말로 한 걸음 더 도약할 수 있다.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경쟁력이 좌우된다. 중동발 삭풍이 멈추기를 마냥 기다리기보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견고한 에너지 방벽을 세우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목표다. 글로벌 모든 국가가 중동 사태로 에너지 공급망 시험대에 오른 지금이,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낼 타이밍이다.
배덕훈 재계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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