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현경 기자] 금융투자협회 주도로 증권업계가 3년간 약 1조원 규모 세컨더리 펀드 조성을 추진하는 가운데, 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 등 초대형 투자은행(IB) 9곳이 공동펀드 출자금의 90%인 2700억원을 부담하는 구조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기업공개(IPO) 시장 침체로 막힌 벤처투자 회수시장을 지원하기 위한 취지지만 업계에서는 투자 위험을 대형 증권사들이 떠안게 됐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9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금투업권 회수시장 지원 사업은 초대형IB 개별 투자와 업권 공동펀드 조성의 '투트랙'으로 추진됩니다. 발행어음·종합투자계좌(IMA) 사업을 영위하는 초대형IB 7개사는 각사 모험자본 공급계획의 3% 수준인 총 6185억원을 개별 투자합니다. 삼성증권과 메리츠증권은 현재 공동 펀드 참여 대상으로 논의 중이나, 향후 발행어음 인가를 취득할 경우 이 개별 투자 트랙에도 참여할 전망입니다.
출자 비율은 각 증권사의 자기자본, 영업이익, 수탁수수료 규모를 종합적으로 반영해 산정됩니다. 특히 자기자본에 가장 높은 가중치가 부여됩니다. 사실상 규모가 크고 실적이 좋은 증권사일수록 더 많은 금액을 부담하는 구조입니다. 이들을 합한 업권 차원의 공급 규모는 약 1조원 수준이며, 한국거래소·예탁결제원·코스콤·한국증권금융 등 유관기관 출자분까지 포함할 경우 최종 규모는 2조원 안팎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세컨더리 펀드는 벤처캐피털(VC)이나 사모펀드(PEF)가 보유한 비상장 기업 지분을 사들여 기존 투자자의 자금 회수를 돕는 펀드입니다. 벤처투자 전자공시시스템(DIVA)에 따르면 올해 만기를 맞는 벤처펀드 규모는 약 17조원에 달하지만 기업공개(IPO) 시장 침체와 인수합병(M&A) 부진으로 회수가 막히면서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지난 5월7일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증권업계의 기록적인 수익을 언급하며 회수시장 유동성 공급에 앞장설 것을 당부하면서 급물살을 탔습니다.
공동펀드 조성에는 뜻을 모았으나 세부 방식은 막판 조율 중입니다. 이날 열린 회의에서 초대형 IB들은 법적 의무인 모험자본 투자가 인정되는 방향으로 방식을 요구, 투자 방식이 확정돼야 운용사 선정 등 향후 투심위 일정도 속도를 낼 전망입니다.
분담 방식을 둘러싸고도 일부 증권사들은 부담 수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분담 기준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자율 참여 방식이지만 사실상 정책성 사업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금융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자율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업계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하는 측면이 있다"며 "발행어음 인가 확대와 모험자본 공급 요구가 맞물리면서 부담으로 받아들이는 곳도 있다"고 했습니다. 반면 금투협 관계자는 "세컨더리 시장 활성화 필요성은 과거부터 증권업계가 정책당국에 건의해온 내용"이라며 "철저히 업계 자율"이라고 밝혔습니다.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습니다. 정부 주도 모태펀드의 경우 투자처를 찾지 못해 쌓인 미투자액이 5년간 4조7509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1조원짜리 펀드를 또 만드는 게 실질적 효과가 있겠냐는 지적입니다. 또 올해 만기를 맞는 벤처펀드 규모가 17조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1조원 규모 펀드가 회수시장 병목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여기에 개별 증권사가 떠안아야 할 법적·경영적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더해집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자금 여력이 있는 증권사가 시장의 유동성 공급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세컨더리 투자 자체가 리스크가 높은 영역이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기존 투자자의 위험을 떠안는 '폭탄 돌리기'가 될 수도 있다"며 "정책 취지에 동조하더라도 장기간 IPO가 어려운 기업 지분까지 매입했다가는 주주에 대한 배임 문제가 될 수 있어 투자 적정성을 따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시장 정상화 효과보다는 회수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마중물' 역할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금투협 관계자 역시 "전체 회수 물량을 커버하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고 마중물 역할"이라고 했습니다.
김정연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세컨더리 펀드가 시장 구조를 단번에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IPO 외에도 회수 경로가 존재한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며 "회수시장 참여자들에게 새로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5월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투업권 모험자본 역량강화 협의체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현경 기자 khk@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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