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폭염중대경보'에도 농촌 이주노동자는 강행군…'야외작업 중지' 권고도 무시
7일 경기 포천 농가에선 비닐하우스 실내온도 '50도' 육박
식수·쉴 곳도 부족해…농장주 "일 멈추면 돈은 누가 주냐?"
38도 넘으면 작업중단 권고…현장선 강제력 없어 '외면 중'
2026-08-09 11:53:16 2026-08-09 11:53:16
[경기 포천=뉴스토마토 남윤서 기자] 폭염특보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인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진 지난 7일 오후 2시,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의 한 비닐하우스 밀집 지역을 찾았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훅 하고 숨이 막히는 열기가 얼굴을 덮쳤습니다. 바닥의 표면온도는 48도, 햇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서 있는 트랙터 의자는 49.3도까지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밭을 덮은 검은색 멀칭 비닐조차 48도에 육박해 비닐하우스 전체가 그야말로 '가마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열대 캄보디아 출신도 "너무 더워서 힘들어요. 사장이 일하래요"
 
첫 번째 찾아간 농장 흙바닥 위에선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A씨가 쪼그려 앉아 밭을 매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3년째라는 그는 이날도 아침 6시부터 일터로 나와 10시간째 뙤약볕을 견디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낮 최고기온이 37도까지 치솟았지만 단축 근무나 휴식 지시 따위는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A씨는 "너무 더워서 힘들어요. 어제도 오늘도 너무 더워요. 그래도 사장님이 일하래요"라면서 울상을 지어 보였습니다.
 
캄보디아는 한국에서 직선 거리로 약 3600㎞ 남쪽에 있는 나라입니다. 열대기후 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한국보다도 더 덥고 습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캄보디아에서 온 A씨조차도 올해 한국의 날씨는 견디기 힘든 고통인 셈입니다. 잠깐 땀을 훔치던 A씨는 짧은 대화가 끝나자마자 군말 없이 다시 허리를 숙여 밭일로 돌아갔습니다. 
 
7일 오후 경기 포천시 가산면의 한 농장에서 측정한 트랙터 의자 표면온도가 49.3도로 기록됐다. (사진=뉴스토마토)
 
물 한 모금·그늘도 없이 작업 중…'가마솥' 비닐하우스 속 강행군
 
주변 농장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뉴스토마토>가 이날 둘러본 포천 일대 농가 50여곳 대부분에선 네팔, 캄보디아, 태국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일꾼으로 고용돼 폭염 속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얼갈이 농장에서 만난 네팔 출신 노동자는 물을 건네자마자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앉은 자리에서 절반을 단숨에 비웠습니다. 그는 "사장님은 물을 안 준다. 너무 감사하다"면서 "일하는 동안 최소한의 식수조차 제공받지 못헤요"라고 했습니다. 최소한의 휴식 공간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은 물론, 밖에도 햇볕을 피할 만한 그늘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농장주를 만나 폭염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일을 멈추면 돈은 누가 주느냐. 폭엠엔 쉬라는 말은 현실성 없는 소리"이라고 되받아쳤습니다. 이어 "(일꾼들에겐) 물도 주고 수박도 준다"면서 "이제 그만 가시라"라며 취재팀을 밀어냈습니다.  
  
시간이 흘러 오후 4시가 됐지만 곳곳에서 작업은 계속됐습니다. 이날 둘러본 농장 가운데 폭염을 이유로 평소보다 일찍 작업을 끝낸 곳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7일 오후 경기 포천시 가산면의 한 농가에 마련된 이주노동자 숙소. (사진=뉴스토마토)
 
'비닐하우스 숙소', 더위 못 피하고 악취만 …5년전 '비극' 잊었나
 
차로 10분가량 떨어진 다른 농가로 이동했습니다. 이번엔 일꾼들이 숙식하는 곳을 들어가봤습니다. 일반 농장의 비닐하우스와 다를 바 없는 구조와 크기로 지어진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쓰고 있었는데, 샌드위치 패널로 조잡하게 조립한 방 세 개가 나란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방 하나당 1명씩, 이주노동자 3명이 함께 쓰는 보금자리였습니다.   
 
숙소 비닐하우스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퀴퀴한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내부엔 더위를 식힐 만한 냉방기도 제대로 구비되지 않았고, 환기조차 못하고 있어서입니다. 찜통 같은 일터를 벗어나도 더위를 피해 온전히 쉴 수 있는 환경은 아닌 셈입니다.
 
심지어 비닐하우스 내부엔 화장실 하나조차 없었습니다. 일꾼들은 용변이 급하면 숙소에서 멀찍이 떨어진 간이 화장실을 써야 했습니다. 맨 흙바닥 위에 대충 세워둔 재래식 화장실엔 제대로 된 문짝 대신 얇은 천 조각 하나가 덜렁 달려 있었습니다. 잠금장치도 안 보였습니다.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면 이런 풍경은 소름이 돋습니다. 포천에선 지난 2020년 12월, 한파 속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홀로 숨진 채 발견된 일이 있어서입니다. 당시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은 커다란 사회적 분노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5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이날에도 비닐하우스 숙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농촌 들녘 곳곳에 버젓이 남아 있었습니다.
 
폭염중대경보가 내린 7일 오후 경기 포천시 가산면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얼갈이를 수확하고 있다.(사진=뉴스토마토)
 
현장선 유명무실한 '폭염 땐 작업중지' 권고…"법적 의무화 시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폭염 작업장에선 노동자에게 2시간마다 20분 이상의 휴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고용노동부 역시 체감온도 35도 이상일 경우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옥외작업을 중단하도록 했습니다. 38도 이상이면 긴급작업을 제외한 옥외작업을 멈추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 마주한 농촌 현장에선 법으로 정한 휴식 시간조차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작업을 중단하는 기준 역시 강제력이 없는 행정지도 수준에 불과해, 농장주가 이를 지키지 않더라도 제재할 수단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주노동자 스스로 작업을 거부하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이동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고, 비자를 연장하는 과정에서도 사업주의 동의가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이주노동자는 해당 농장에서 계속 일해야 하기 때문에 농장주 앞에선 힘든 기색조차 쉽게 내비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러는 동안 농촌에선 이미 폭염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논과 밭, 시설하우스 등에서 온열질환자는 361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김달성 대표는 "이런 극심한 폭염 속에 노동을 강요하는 것은 살인행위나 다름없다"며 "폭염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만큼,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작업 중지를 사업주의 선택이 아닌 법적 의무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경기 포천=남윤서 기자 nyyyse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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