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큰 폭의 지수 하락 이후 코스피의 회복 탄력성이 떨어졌습니다. 12일 코스피 지수는 장중 4%대 반등세를 보였지만, 앞서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를 맞았던 폭락장을 만회하기엔 부족합니다. 이날의 급반등에도 지수는 최근 3개월 내 13% 이상 주저앉은 상태입니다.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을 향한 시장의 기대감이 '정책 모멘텀 실종'으로 식은 데다, 반도체 대장주의 '중복상장' 우려까지 겹치며 투자심리가 위축된 까닭으로 풀이됩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던 정부의 공언과 달리 소액주주를 보호할 핵심 법안들은 누더기가 되고 대기업의 자금 조달 편의를 돕는 규제 완화가 속도를 내면서 시장의 신뢰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에 정부안 물타기
최근 '주가 누르기 방지법' 정부안이 국회서 발의한 원안보다 크게 후퇴했다는 반응이 쏟아지며 증시도 식었습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주가 누르기 방지법(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은 과세표준을 시가 평가해 온 상장사라도 PBR(주가순자산비율) 0.8 미만일 경우 순자산가치를 기준으로 상속·증여세를 과세해 총수 일가의 의도적인 주가 억누르기를 차단하자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세제개편안 속 정부안은 이보다 후퇴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이소영 의원은 SNS를 통해 "정부안은 사실상 적용 대상이 없을 법안"이라며 "국세청의 임의적 판단으로 적용받을 납세 기준이 달라져 결국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직격했습니다. 특히 주가 누르기가 확인될 경우 최근 최장 6년 6개월간의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과세하겠다는 정부안에 대해 이 의원은 "오히려 지금보다 장기적으로 주가를 눌러야 절세가 가능해지는 황당한 정부안"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상법 개정에 이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핵심 법안으로 꼽혔으나, 정부안이 섞이며 또다시 원안 후퇴할 것이란 실망감이 번졌습니다. 기대를 모았던 '자사주 의무 소각 법안'도 주총 승인 시 장기 보유 등으로 약화됐기 때문입니다. 이미 국회를 통과해 시행 중인 해당 법안은 자사주 계속 보유를 허용하는 맹점을 남기며,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전용될 여지를 남겼다는 시장의 싸늘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소영 의원실 관계자는 “배당소득 분리 과세만 해도 큰 산이었고 그 이후에 주가 누르기 방지법 순으로, 대통령도 여러 차례 말씀하신 바 있다”며 “어쨌거나 대통령도 정부안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씀 주셨고 재경부에서도 수정하기로 해, 정부안과 의원 발의안이 병합 심사를 거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업종별 6년간 PBR 하위 25%(코스피, 코스닥 10%)에만 주가 누르기를 추정하는 등 예외가 많은 정부안이 섞이면 원안도 후퇴할 것이 불가피합니다.
솔리다임 상장 우려에 투심 냉각
정책적 실망감에 더해 지수를 이끌었던 반도체 대장주의 지배구조 악재도 불거졌습니다. 시가총액 2위 SK하이닉스의 미국 낸드 자회사(증손회사 격)인 솔리다임이 나스닥 상장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사 측은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했으나 (추후 재공시하기로)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솔리다임은 정부가 마련한 가이드 기준에선 중복상장 규제망을 벗어날 수 있으나,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 상장하는 구조 자체가 미국 증시에선 찾기 힘든 사례(2025년 말 중복상장 비율 0.05%)입니다.
민주당에선 증손회사 지분 규제 완화 법안도 발의돼, 이와 맞물려 우려가 커지는 형국입니다. 법안은 국가첨단전략산업에 한해 일반지주회사 손자회사의 증손회사 지분 의무 보유 요건을 현행 100%에서 50%로 완화하는 내용입니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AI(인공지능) 투자 유치를 위해 지주회사 규제 완화를 건의했고, 이는 법안의 동력이 됐습니다. 솔리다임은 해외 법인이라 국내 공정거래법 규제를 받지 않지만, 비슷한 선례로 국내서도 증손회사 규제가 완화되면 중복상장도 늘어날 것이란 우려를 낳습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해외 법인의 미국 증시 상장이라 국내 규제망을 벗어나고 중복상장도 아니라는 식의 논리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솔리다임은 지금도 모회사와 법인격이 분리돼 있지만 결국 그 인수자금은 모회사에서 나왔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솔리다임이 상장하면 모회사 대주주는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 큰 변화가 없겠지만 모회사 소수 주주는 구주매출분 이상의 프리미엄이 상실되는 것”이라며 “그동안 솔리다임 적자가 모회사 주가의 하방 압력을 키웠다면, 흑자전환 후 상장은 선반영된 기대감도 반납하게 만든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솔리다임이 배당을 하면 지금은 100% 모회사에 귀속되지만 상장 후엔 배당을 포함해 지배지분이익이 감소하는 만큼 중복상장의 훼손 영향이 없다고 볼 순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증손회사 규제 완화 법안에 대한 논평을 통해 "반도체나 바이오 투자라는 억지 명분을 앞세워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제 체계를 허무는 것으로, 산업정책과 무관한 재벌 특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만약 증손회사 지분 보유 요건을 50%까지 낮추게 되면, 총수일가의 지배력과 경제력 집중은 확대되고, 소유와 통제의 간극은 더 커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더 심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단기 부양 아닌 근본 체질 개선해야”
결과적으로 폭락 이후 박스권에 갇힌 코스피는 대외 매크로 변수 악화가 아닌, 자본시장의 근본적인 신뢰 붕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에 힘이 실립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핵심 법안들이 후퇴하고, 오히려 지배주주의 이익을 대변할 여지가 있는 규제 완화가 속도를 내는 엇박자 속에서 외국인은 물론 소위 ‘서학개미’ 등 투자 자금의 복귀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경실련은 "건전한 자본시장은 기업가치와 투자자 신뢰를 기반으로 형성되는 것이지, 단기간의 주가지수 상승 자체를 정책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이어 “정부는 단기적인 주가지수 상승을 정책 성과로 내세우는 접근에서 벗어나 기업가치와 시장 신뢰를 높이는 제도 개혁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코스피가 진정한 회복 탄력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입법이 지속되고 편법을 막을 엄격한 제도 기준이 확립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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