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하림 기자] 국가산단 소규모 제조기업의 경영 악화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2024년과 2025년 4분기 비교가 가능한 국가산업단지 32곳 중 18곳에서 50인 미만 기업군의 가동률이 전년보다 하락했습니다. 지난해 전국 국가산단의 50인 미만 기업군 가동률은 72.5%로, 300인 이상 기업군보다 15.4%포인트 낮았습니다.
15일 한국산업단지공단의 '국가산업단지 산업동향정보'에 따르면, 2024년과 2025년 4분기 50인 미만 기업 가동률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국가산단은 32곳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18곳에서 지난해 가동률이 전년 동기보다 하락했습니다. 가동률은 생산액을 최대 생산능력으로 나눈 비율입니다.
한편 지난해 4분기 기준 전국 국가산단 가동률은 84.0%로 전년보다 1.8%포인트 상승했습니다. 기업 규모별로는 50인 미만이 69.1%에서 72.5%로 3.4%포인트, 50~299인은 81.7%에서 83.8%로 2.1%포인트, 300인 이상은 86.5%에서 87.9%로 1.4%포인트 올랐습니다. 다만 50인 미만 기업군의 가동률은 여전히 세 규모 구간 가운데 가장 낮았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50인 미만 가동 업체 수가 적어 개별 기업의 실적 변동 영향이 큰 산단을 제외하면 군산·익산·주안·녹산의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컸습니다. 군산은 58.1%에서 47.6%로 10.5%포인트, 익산은 83.4%에서 73.5%로 9.9%포인트 떨어졌습니다. 주안은 71.1%에서 62.9%, 녹산은 67.1%에서 59.5%로 각각 8.2%포인트, 7.6%포인트 하락했습니다.
기업 규모별 격차도 컸습니다. 지난해 주안의 300인 이상 기업 가동률은 98.5%로 50인 미만 기업보다 35.6%포인트 높았습니다. 녹산에서도 300인 이상 기업 가동률은 86.9%로 50인 미만 기업과 27.4%포인트 차이가 났습니다.
소규모 기업 발목 잡는 수요·비용·인력난
한국산업단지공단 구조고도화사업실장과 경기지역본부장을 지낸 정인화 산업단지경제연구소 대표는 소규모 제조기업의 가동률 부진 배경으로 원자재·에너지 가격 상승과 고금리, 내수 부진을 꼽았습니다. 정 대표는 "자동차·건설 등 전방산업의 부품 수요가 줄고 수주 물량이 감소하면서 주조·금속가공·플라스틱 등 산단 기반 업종의 생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기업 자체의 조직·재무 문제보다 내수와 글로벌 수요 둔화에 따른 업종 성장성 저하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고 평가했습니다.
원가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운 거래 구조도 부담입니다. 정 대표는 "50인 미만 소기업은 원청 대기업이나 1차 협력사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절대적이므로 대체 불가능한 독자 기술이 없는 한, 단가 협상에서 철저히 을(乙)의 위치"라고 지적했습니다. 납품대금 연동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의무 연동 대상은 개별 원재료 비용이 납품대금의 10% 이상인 ‘주요 원재료’입니다. 여러 원재료의 가격이 함께 올라도 각각 10% 기준에 못 미치면 연동 대상에서 빠질 수 있습니다.
인력난과 설비투자 여력 부족도 생산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정 대표는 "산업단지 제조업 생태계의 기반이자 가장 심각한 인력난을 겪는 업종은 금속가공, 주조, 플라스틱, 표면처리 등 뿌리산업"이라며 "뿌리산업 단지 내 50인 미만 사업장은 인력 부족률이 30~50%에 달해 공장 라인을 풀가동하지 못하고 고령층이나 외국인 근로자에 의존해 조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중소기업은 노후 설비 교체에 대한 초기 비용 부담과 내부 전문 기술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인천항만공사 부사장을 지낸 최정철 인하대학교 교수는 소규모 제조기업의 디지털 전환 여건에도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봤습니다. 최 교수는 "50인 미만 기업은 대부분 전담 AI 인력과 데이터 관리 조직이 없고, 생산 데이터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다"며, "AI 도입에 필요한 초기비용과 실패 위험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개별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요구하는 방식은 소기업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산업단지 차원의 제도와 기반시설 개선도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김혜진 한국산업관광협회 이사장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 입지와 관리 제도가 현재의 산업 변화 속도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통 문제와 부족한 정주 여건도 기업 경쟁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이어 "같은 산업단지 안에서도 기업들이 서로 어떤 기술과 제품을 갖고 있는지 쉽게 확인하고 거래할 수 있는 체계가 부족하다"며 기업 간 연결 문제도 짚었습니다. 기업이 한곳에 밀집해 있더라도 기술과 제품, 수요 기업 정보를 연결하는 체계가 부족하면 집적에 따른 효과를 충분히 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운영자금부터 AX 인프라까지…소규모 기업 생산여건 개선해야
가동률 회복을 위해서는 운영자금 지원과 생산성 제고를 위한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정 대표는 "생존을 위한 운영 자금 압박을 해소할 수 있는 금융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하청 단가에 원자재 및 고용 비용 상승분이 반영되도록 납품대금 연동제 등의 실효성 있는 현장 안착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스마트공장과 설비 고도화 흐름에서 소외된 중소기업에 대한 초기 투자비와 AX·DX 인프라 지원을 확대하고, 청년층 기피와 현장직 공백을 줄이기 위한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와 정주 여건 개선도 병행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최 교수는 "중소기업마다 AI 시스템을 따로 구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광역정부가 '산업 AX 공공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광역정부가 공동 데이터 기반과 생성형 AI 플랫폼을 구축하고, 산업별 앵커기업이 공정·품질·납품 데이터 표준을 제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대학·테크노파크·산업단지공단이 현장 지원 인력을 공급하는 체계도 제안했습니다. 소규모 제조기업의 생산 격차를 줄이기 위해 개별 기업에 대한 지원을 넘어 산업단지와 공급망 전체의 생산 기반을 함께 끌어올리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여수국가산단. (사진=뉴시스)
이하림 기자 poetr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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