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도와주는 가족 말고, 함께 책임지는 가족
2026-09-17 06:00:00 2026-09-17 06:00:00
“엄마가 힘들면 할머니가 봐주면 되지.”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오가는 말이다. 아빠가 퇴근 후 아이를 봐주면 “도와준다”고 하고, 조부모가 아이를 돌보면 “덕을 본다”고 한다.
 
그런데 문득 묻게 된다. 왜 아이를 키우는 일에서 누군가는 책임지고, 누군가는 도와주는 사람이 되는 것일까. 육아는 부모가 함께 책임져야 할 일이고, 조부모 역시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돌봄을 떠맡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돌봄의 공백을 가족의 희생으로 메워왔다.
 
가족이 잘해서 버티는 것이 아니다. 돌봄 공백이 생기면 가장 먼저 움직이는 사람은 가족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문을 닫는 시간, 아이가 아파 기관에 갈 수 없는 날. 엄마는 일을 조정하고, 아빠는 휴가를 내고, 조부모에게 연락한다. 그래서 겉으로는 가정이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일을 포기하고, 누군가는 경력을 줄이고, 누군가는 자신의 노후 시간을 다시 육아에 내어준다.
 
특히 여성에게 그 부담은 더욱 크게 돌아온다. 우리 사회가 여성의 경력 단절을 이야기할 때도 ‘아이를 낳은 여성의 선택’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말 선택이었을까. 돌봄 공백 앞에서 일을 계속할 수 없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까. 돌봄은 개인의 가족관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시장과 복지, 교육,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사회적 인프라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돌봄을 너무 쉽게 ‘도움’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남편이 육아를 많이 도와준다.” 이 말부터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빠가 자기 아이를 돌보는 것은 아내를 돕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양육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조부모도 마찬가지다. 손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보는 것과, 부모의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기적으로 육아 노동을 맡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사랑은 자발적일 수 있지만, 돌봄은 지속되는 순간 노동이 된다. 따라서 가족의 사랑을 이유로 돌봄의 책임을 가족에게 계속 전가해서는 안 된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최근 연구에서도 육아 시간 지원과 가족돌봄제도의 활용, 유연근무제도 개선 요구 등을 별도의 정책 과제로 다루고 있다. 이는 돌봄을 단순한 가족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과 사회정책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가족의 역할을 없애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에게 가족의 돌봄은 중요하다. 부모와 조부모가 함께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은 오히려 좋은 일이다. 문제는 선택과 강제가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가족이 원해서 함께 돌보는 것과,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가족이 떠맡는 것은 다르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50회 베페 베이비페어를 찾은 시민들이 육아용품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육아 정책의 언어부터 바뀌어야 한다. ‘엄마를 도와주는 아빠’가 아니라 공동 양육자가 되어야 한다. ‘손주를 봐주는 할머니’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존중받으면서 필요할 때 함께 돌봄에 참여하는 가족 구성원이어야 한다. 국가는 가족에게 돌봄을 맡겨놓고 지원금을 지급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돌봄 자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의 공공 돌봄 확대, 긴급·시간제 돌봄의 실효성 강화, 부모의 유연근무 확대, 남성의 실질적인 돌봄 참여, 농어촌 지역의 돌봄 인프라 확충 등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돌봄은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는 일이어야 한다. 이제는 ‘도와주는 가족’이라는 말을 넘어 ‘함께 책임지는 가족’을 이야기할 때다.
 
이정원 쉼표힐링팜 CEO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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