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을 브로커처럼 활용할 수 있는, 브로커 현상을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금지법(청탁금지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2015년 3월10일, 이 법안을 처음 제안한 김영란 전 대법관이 한 경고입니다.
청탁금지법상 국회의원이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를 처벌하지 않겠다는 예외조항에 우려를 나타낸 겁니다. 구체적으로 같은법 5조2항3호는 “선출직 공직자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기준의 제정·개정·폐지 또는 정책·사업·제도 및 그 운영 등의 개선에 관해 제안·건의하는 행위”에 대해 이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합니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에게 해선 안 되는 부정청탁 행위 15가지를 정한 내용이 핵심입니다. 아울러 법을 적용하지 않은 7가지 예외조항을 뒀는데, 이 중 하나가 국회의원의 민원전달 행위입니다.
김 전 대법관이 2012년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만들었던 원안에는 없었던 내용입니다. 원안에는 국회의원 등이 법령 및 정책 개선에 관해 제안하는 행위만 예외로 뒀는데, 19대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를 거치며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부분이 추가됐습니다. 지역구민의 억울한 사정을 듣고 민원을 전달하는 국회의원의 대의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는 국회의원들의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도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오경식 강릉원주대 명예교수는 2015년 2월 청탁금지법 국회 공청회에서 “공익적 목적의 고충 민원이란 범위가 모호하다”며 “입법 취지와 달리 정치인들은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불평등 법안”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15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9회 국회(정기회) 법제사법위원회 국무위원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안경을 벗고 있는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진=뉴시스)
10여년이 지난 지금, 19대 국회의원들이 마련한 예외조항을 활용하고 있는 건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입니다. 김 후보는 ‘신약 청탁’ 의혹 관련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에 불복해 지난해 5월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김 후보 측은 이 예외조항을 근거로 청탁 자체가 처벌 대상이 돼선 안 된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 후보는 지난 15일 인사청문회에서도 “제가 가진 권한 중에서 불법이 되지 않도록 가장 최소한도의 민원만 전달했다”며 “(코로나19 당시 국내산 치료제) 약을 10만원대로 공급할 수 있다는 말을 너무 믿은 건 아닌지 후회스러운 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익적 목적의 고충민원을 전달했을 뿐이란 주장입니다.
그러나 김 후보와 그의 오랜 지인 브로커 양수진씨의 대화를 보면 공익적 목적의 고충민원인지 의문이 남습니다. 양씨의 뇌물공여약속 등 혐의 공소장에 따르면, 양씨는 김 후보에게 식약처의 제넨셀 신약 임상시험 계획 승인을 요청하며 “이미 300억 투자유치도 돼 있다”, “내년에 상장 준비로 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후보는 이에 따라 식약처장에게 전화해 “잘 챙겨봐달라”고 말했습니다. 김 후보는 양씨로부터 승인 관련 구체적 실무 사항을 전달받고, 식약처장에게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식약처장으로부터 받은 답변 메시지는 양씨와 공유했습니다.
10년 전 국회가 예외로 둔 '공익 목적 고충민원'의 모호성이 결국 이번 사태를 불렀다는 지적과 함께, 김 후보 사태를 계기로 국회의원의 민원 전달 범위를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