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데이터 트래픽과 통신망에 요구되는 품질 수준이 높아지면서 망중립성과 망 비용 분담 등 기존 통신 규제 체계를 AI 시대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5G 단독모드(SA), 접속망과 백본, 엣지 등 네트워크 전반을 AI 인프라로 보고 투자를 확대해야 하지만, 트래픽 증가가 통신사의 수익 증가로 직결되지 않는 만큼 투자 재원 확보와 규제 예측 가능성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디지털 생태계를 위한 글로벌 포럼'에서 이정헌 민주당 의원은 "네트워크 인프라는 AI 산업의 토대이자 국가 경쟁력의 문제"라며 "생태계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공정하게 기여하고 혁신의 결실을 나누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지속가능한 디지털 생태계를 위한 글로벌 포럼'이 열렸다. (사진=뉴스토마토)
AI가 본격적으로 확산하면 네트워크에 요구되는 품질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기존 웹이나 동영상 서비스가 주로 다운로드 속도에 초점을 맞췄다면, 생성형 AI와 실시간 AI 추론, AI 에이전트 등은 이용자의 요청과 데이터가 네트워크를 통해 데이터센터로 전달되고 연산 결과가 다시 이용자에게 돌아오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다운로드 속도뿐 아니라 지연시간과 업링크 성능, 신뢰성 등이 AI 서비스 품질을 좌우하게 됩니다.
김명수 강원대 교수는 "네트워크는 단순 콘텐츠 전달 수단을 넘어 지연시간·연속성·응답성을 통해 AI 서비스 성능을 직접 결정한다"고 진단했습니다. 생성형 AI는 빠른 응답을, 영상 AI는 대역폭과 연속성을, 확장현실(XR)은 낮은 지터를, 자율주행과 산업제어는 초저지연과 높은 신뢰성을 요구한다는 설명입니다.
이에 따라 5G SA와 네트워크 슬라이싱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물리적 통신망에서도 서비스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품질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는 "핵심은 품질 차등 자체가 아니라 투명성·이용자 선택·비차별성"이라며 이용자가 필요에 따라 품질을 선택하고 가격과 조건을 투명하게 제공하는 서비스와 특정 플랫폼을 임의로 우대하는 행위는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5G SA 등 무선 네트워크 고도화와 함께 AI 인프라의 범위를 전체 통신망으로 확장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조대근 서강대 겸임교수는 AI 시대 국가 통신 네트워크 전략에 5G SA와 향후 6G뿐 아니라 접속망과 백본망, 엣지, 데이터센터, 해저케이블을 아우르는 전체 네트워크가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AI 연산 능력이 높아져도 이용자와 데이터센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서비스 품질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처럼 AI 확산으로 네트워크 전반의 고도화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문제는 늘어나는 투자 부담이 통신사의 수익 증가로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술 플랫폼 매출은 2025년부터 2031년까지 1.91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 반면 모바일 통신은 1.16배, 유선 통신은 1.19배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도 디지털 생태계가 사람을 연결하는 연결의 시대(Connectivity Era)와 콘텐츠를 유통하는 콘텐츠의 시대(Content Era)를 거쳐 지능을 구현하는 컴퓨팅의 시대(Compute Era)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트래픽과 가치, 투자, 수요, 협상력 간 비대칭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에 AI 시대 네트워크 투자 비용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부담할지도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전문가들은 망중립성과 네트워크 이용에 따른 비용 부담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김태오 강원대 교수는 "망중립성은 인터넷접속사업자(ISP)가 특정 콘텐츠를 부당하게 차단하거나 차별해 시장경쟁을 왜곡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으로, 콘텐츠제공사업자(CP)와 ISP 사이의 모든 네트워크 연결관계를 반드시 무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해외에서는 네트워크 이용에 따른 비용을 둘러싼 분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독일 도이치텔레콤과 메타 간 분쟁이 대표적입니다. 메타가 계약 종료 이후 비용 지급을 중단하자 독일 법원은 2024년 약 2000만유로를 지급하도록 했고, 2026년 항소심에서도 약 3000만유로의 지급을 명령했습니다. 법원은 도이치텔레콤이 시장지배력을 남용했다는 메타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민간투자를 끌어내기 위해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조대근 교수는 "신기술과 네트워크 투자를 통해 미래 이용자의 편익을 높이는 동적 효율성을 통신정책의 주요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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