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전쟁과 폭력, 차별에 맞서 침묵하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흘간 서울의 스크린을 채웠습니다. 국가폭력과 인권침해를 고발하는 영화부터 개인의 상처와 새로운 도전을 담은 작품까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정의와 평화, 용기라는 공통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제3회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가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렸습니다. 약 260편이 출품돼 18개국 46편이 선정됐고, 지난해보다 상영작이 20편 늘면서 상영관도 2개로 확대됐습니다. 영화제는 슬로건 '너의 비밀을 말해봐'에 맞춰 내부고발자(Whistleblower)의 정신을 개인의 내면에 감춰진 이야기까지 넓혔습니다.
'숨, 말, 외침'으로 막 올린 영화제…저항과 연대의 메시지
첫날인 23일에는 음악과 영상이 결합한 개막 공연 '숨, 말, 외침'에 이어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윤정모 공동조직위원장은 "전쟁과 기근, 차별이 계속되는 현실에서도 예술가들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영화를 만든다"며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서로 다른 고통과 외침이 이번 영화제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오동진 공동조직위원장은 안정적인 재정 기반이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이명재 시민언론 민들레 대표는 재정적 어려움을 언급하면서도 "그 가난함이야말로, 결핍이야말로 휘슬러영화제의 최고의 자산이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개막식에는 영화제 공동조직위원장을 비롯해 집행위원장, 공동 주최사인 시민언론 민들레, 뉴스토마토 K콘텐츠연구소, 국회의원, 국내외 감독 및 관객들이 참석했다. 오동진 공동조직위원장(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윤정모 공동조직위원장, 김만수 뉴스토마토 K콘텐츠연구소장, 민병덕 민주당 의원,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 황정아 민주당 의원 모습. (사진=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
대상 '더 디센던트 오브 케이블 스트리트'…본상 10개 부문 시상
개막식에서는 본상 10개 부문과 특별언급 7편이 발표됐습니다. 수상작에 전달된 나무 상패는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부모들이 직접 만든 것으로 제1회부터 이어진 전통입니다.
대상은 노아 미를라흐 감독의 단편 <더 디센던트 오브 케이블 스트리트>가 받았습니다. 과거 파시즘에 맞서 싸운 아버지를 둔 유대인 남성이 런던의 친팔레스타인 시위에서 체포되는 과정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은 우크라이나 성소수자 군인과 시민들을 담은 폐막작 <아우어 컬러스 네버 페이드>(짐 맥셰리 감독)가, 최우수 극영화상은 뒤늦게 엔카 가수의 꿈을 좇는 주부의 이야기 <엔카, 길이 시작된다>(잭키 우 감독)가 받았습니다. 최우수 단편상은 이한샘 감독의 <봄길>이 차지했습니다.
감독상은 <졸업앨범: 선생님을 기다렸다>의 김종관 감독이, 심사위원특별상은 <체이싱 플라스틱>이 받았습니다. 시상에 이어 개막작 <레인보우스 테일>이 상영됐습니다.
단편 <더 디센던트 오브 케이블 스트리트>를 연출한 노아 미를라흐 감독이 대상을 수상하고 있다. 시상은 윤정모 공동조직위원장이 맡았다. (사진=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
영화 밖으로 확장된 문제 제기…포럼부터 GV까지
영화제는 독립영화 산업과 언론, 민주주의, 노동 문제를 다루는 포럼 4개를 마련했습니다.
23일 개막 포럼 '독립영화는 독립적인가'에서는 독립영화가 배급·유통에서도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논의했습니다. 24일에는 '실시간 학살의 시대: 전쟁의 참상과 미디어 보도의 한계'는 전쟁 보도에서 언론이 져야 할 책임을, '우리 안의 보수와 극우 그리고 민주주의'는 극우 현상의 사회적 배경과 민주주의의 대응 방향을 살폈습니다.
25일 '공정은 누구를 배제하는가: 능력주의와 비정규 노동'은 비정규직과 청년 노동자가 겪는 불평등을 짚었습니다.
개막 포럼 '독립영화는 독립적인가: 극장과 플랫폼에서 만나는 독립영화' 현장. 김청강 한양대 교수(왼쪽부터), 안윤빈 감독, 김대현 감독, 이종훈 동국대 교수, 최재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윤솔지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 총괄프로그래머. (사진=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
24일과 25일에는 관객과의 대화(GV)가 모두 13차례 열려, 국내외 감독들이 제작 배경과 주제를 관객과 나눴습니다. 영화제는 마지막 날 폐막작 <아우어 컬러스 네버 페이드> 상영과 감독과의 대화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란 아이들의 이야기로 문을 연 영화제가 우크라이나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로 여정을 마친 셈입니다.
2024년 출범한 영화제는 대규모 지자체 예산 대신 시민 후원과 자원봉사, 공공기관·기업·단체의 협찬으로 운영을 이어왔습니다. 외형은 성장했지만 안정적인 재원 확보와 독립영화의 유통 기회 확대는 여전히 과제입니다.
영화제 이후에도 관객이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IPTV 등 새 플랫폼과 연결하는 방안이 제시됐습니다. 영화제가 스크린에 올린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갈지는 관객과 사회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제3회 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가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열렸다. 첫날에는 음악과 영상이 결합한 개막 공연 '숨, 말, 외침'에 이어 개막식이 진행됐다. (사진=서울국제휘슬러영화제)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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