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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국민'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습니다
2014-09-23 18:30:21 2014-09-23 18:30:21
"내 이럴 줄 알았지."
 
예상은 적중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20일 순방 일정이 알려지면서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청와대발로 사건이 또 터질 것이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됐다. 일부 보도는 '대통령 순방 징크스'라고 했다. 이제는 관례요, 관행이 됐다.
 
박 대통령이 순방길에 오른 지난 20일, 임명 석달이 갓 지난 송광용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사임 소식이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즉각 수리했다.
 
수리를 하고 출국했는지, 이동 중에 전자결제를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사이 청와대 수석이 스스로 사퇴했다는 것과 대통령은 그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아무 설명이 없었다. 이 역시 이제는 관례요 관행이다.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송 전 수석의 입장이 반영됐다는, 다소 민망한 해명이 뒤이어 청와대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를 믿는 사람은 없었다. 청와대 담당 기자는 물론 국민도 그랬다. 인사 문제에 대해 청와대의 설명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것 역시 이제는 관례요 관행이 됐다.
 
그러는 사이 송 전 수석이 고등교육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아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사건은 검찰에 배당됐다. 경찰은 개인비리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지만 검찰은 필요할 경우 송 전 수석의 개인계좌까지 들여다볼 태세다.
 
송 전 수석의 임명과 사퇴, 청와대의 뒷처리는 박근혜 정부의 인사시스템이 여전히 인수위 수준이라는 것을 확인시키고 있다.
 
인수위 시절 인사청문회 전 낙마한 김용준 국무총리 내정자를 시작으로 안대희, 문창극 내정자까지 부실 인사검증으로 낙마한 국무총리만 후보자만 3명이다.
 
여기에 정부 출범 초기 사퇴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부터 최근의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 정성근 문화부장관 후보자 등 부실검증으로 우수수 떨어져간 공직 후보자도 적지 않다.
 
문제는 청와대가, 정확히는 박 대통령이 이런 사태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분명한 해명도 없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송 전 수석의 경우 지난 6월9일 고등교육법 위반혐의로 서초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이 있음에도 청와대는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사흘 뒤인 6월12일 송 전 수석은 청와대로 입성한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수석으로 임명된 뒤인 7월 서초서가 송 전 수석 사건을 서울지방경찰청에 보고하고 그를 입건했지만 아무런 문책이나 즉각적인 처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경찰의 보고를 묵살했거나 숨기면 넘어갈 것으로 치부했음이 분명하다. 보고가 안 됐다면 그 또한 문제다.
 
더구나 송 전 수석은 임명 전부터 제자의 연구 성과를 가로채거나 거액의 불법 성과급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흠 있는 인사를 이렇다 할 검증 없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라는 중책에 임명한 뒤 잡음이 예상되자 순방을 떠나기 전 사퇴시킨 셈이다. 나아질 줄 모르는 인사시스템 수준과 '도피성 순방'이라는 꼼수의 결정판이다.
 
인사 문제는 아니지만 지난해 6월 중국 방문시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의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9월 러시아 방문 당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10월 APEC정상회의 참석시 기초연금 공약 파기 등 박 대통령이 출국할 때마다 대형 사건이 터졌다. '나 다녀올 동안 모두 정리해 놓으라'는 지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본령으로 돌아와 주목해야 할 것은 인사 실패와 관련한 박 대통령의 태도다. 사과는 없으며 이렇다 할 해명도 없다.
 
문창극 사태'로 여론의 뭇매가 집중되자 그제서야 '인사수석실'을 가동하겠다고 짐짓 엄중한 각오를 드러냈다. 그나마 인사수석실은 노무현 정부의 인사시스템을 베낀 것이다. 김기춘 실장은 여전히 인사권을 쥐고 흔들고 있다. 이정도면 국민모독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그것은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고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닌 것이다." 참으로 오랫동안 기다려 들은 말이 고작 그것이다. 팽목항에서의 약속과는 달리 면담을 요구하는 유족에 대한 사과는 역시 없었다.
 
다만 야당 의원의 '연애' 발언에 대해서는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국가의 위상추락과 외교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기억되는 그의 발언 중 가장 힘 있고 단호했다. 그러나 정작 박 대통령은 본인의 허물을 모르고 있다.
 
헌법에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권력 역시 국민이 부여한 것이다. 권력을 부여받은 자로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숨기고 반복하며 사과나 해명조차 없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은 것이다.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오는 28일 박 대통령의 책임 있는 사과를 기다려 본다.
 
 
최기철 정치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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