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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의 만인보로 읽는 한국사-57화)‘노동자 타살’의 역사
“이 땅은 노동자가 살기 위하여 / 노동자가 죽어야 하는 땅임을”
2017-03-13 08:00:00 2017-03-13 08:00:00
태백이나 문경, 보령에 있는 석탄박물관에 가보면 막장에서 석탄을 캐던 광부들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다.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의 위험을 무릅쓴 채 일하던 그들의 유일한 휴식시간은 까만 얼굴로 양은도시락의 밥을 탄가루와 함께 먹던 순간이었다. ‘산업역군’이라는 미명 아래 지하 막장의 노동을 감내해 온 그들에게 남은 것은 ‘진폐증’이라는 직업병뿐이었으나 아무런 산재보상도 받지 못하던 시절. 그러나 그러한 시절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노동자들을 도구로,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노동환경이 존재하는 한.
 
79명의 방진복 행진과 부당노동행위
지난 네 달 반 동안의 촛불시민혁명이 일구어낸 박근혜 탄핵·파면과 더불어, 이명박 정권 때부터 쌓여 온 수많은 문제들을 이제부터 하나씩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이 국민들에게 공유되고 있다. 청산해야 할 그 적폐들 중에는 헌법이 규정한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이를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에 여전히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하는 문제도 포함된다. 봄이 오는 이 3월, 우리는 또 다시 두 명의 노동자를 추모한다. 3월 6일은 삼성전자 기흥공장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하다가 급성골수성 백혈병을 얻어 23살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故) 황유미 씨의 10주기였고, 다가오는 3월 17일은 2011년 직장폐쇄 이후 사측의 노조파괴 시도에 따른 수차례의 고소·고발, 부당징계에 고통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성기업 고(故) 한광호 씨의 1주기가 된다.
 
지난 3월 3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반올림) 그리고 다산인권센터의 활동가들은 시민·학생들과 함께 방진복을 입고 직업병으로 희생된 79명의 영정을 든 채 수원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수원역까지 ‘방진복 행진’을 했다. 영정의 79명은 삼성 반도체와 엘시디(LCD)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이나 암으로 희생된 노동자들이다.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반도체공장의 각종 화학약품들이 무엇인지는 삼성의 ‘영업비밀’이고 산재 노동자들은 책임자의 진정한 사과도, 조치도, 보상도 받지 못했으며, 새로운 피해자들이 나올 가능성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딸을 잃고 10년 동안 긴 싸움을 해 온 아버지 황상기(62) 씨.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500일 넘게 노숙농성을 벌여 온 이 선하디 선한 인상의 아버지가 딸의 10주기를 맞아 반올림 활동가들과 함께 삼성의 직업병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 1만1299명의 서명지를 전달하려는 것조차 삼성전자 측은 거부했다
 
한편 유성기업 한광호 노동자의 죽음은 사측의 악랄한 노조파괴 행위가 몰고 온 또 다른 ‘타살’이다. 2011년 5월 금속노조 유성 아산과 유성 영동지회가 ‘밤에는 잠을 자기 위해’ 주간 2교대제를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가자 유성기업은 직장폐쇄로 응대한다.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의 자문―그리고 원청업체인 현대자동차와의 공모―에 따라 어용노조인 제2노조를 설립한 사측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고 기존 조합원들을 해고징계·고소·고발하는 등 끊임없이 노조의 와해를 시도한다. 직장폐쇄와 함께 용역경비업체에 폭력을 사주하고 조합원을 상대로 사측이 행한 민·형사상의 고소·고발이 1300여건 이상이라고 하니, 사측의 집요한 노조파괴공작에 시달린 이 노동자들의 정신질환 고위험군의 비율이 일반 국민의 그것보다 몇 배나 높았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그 고통 속에서 한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고, 유성기업 대표는 6년 만인 2017년 2월17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6년 동안 지속된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1970년 전태일 열사 이래 꾸준히 발전해 온 노동운동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당노동행위가 자행되는 한국사회의 노동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일 경기 수원 삼성전자 본사 중앙문에서 故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62)씨를 포함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70~80년대에 죽어간 노동자들
고(故) 황유미 노동자처럼 앳된, 만 22살의 전태일과 21살의 김경숙이 1970년대를 열고 닫았다.
 
1970년 청계피복 전태일이 죽어 시대를 열고
1979년 YH 김경숙이 죽어 시대를 닫았으니
그 누구라서 70년대를 민중의 시대 아니라 말하는가
 
그 악몽의 유신시대 닫아버린
한 처녀의 죽음으로
우리는 여기 서 있다
< … >
(’김경숙‘, 별편)
 
근로기준법 책과 함께 산화한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그가 죽어 한 시대가 열렸”고 “이 땅의 어떤 일에서나 시작이었”으며(‘전태일, 별편),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하다가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머리를 맞아 사망한(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김경숙 열사의 죽음은 부마항쟁과 1026으로 이어져 “김경숙의 무덤 뒤에 박정희의 무덤이 생겼다”(‘YH 김경숙’, 12권). 한편, 전태일 열사가 1970년 11월13일에 사망한 후, 이듬해 3월 영등포에 있는 한영섬유 노동자 김진수가 노조탈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회사 측이 고용한 깡패에 의해 드라이버로 머리를 찔리고 5월에 사망하게 된다.
 
70년대는 섬유공장이 신나는 공장이었다
낮은 임금
바쁜 수출
서울 구로동도 부산도
박정희의 향토 대구도 섬유공장투성이였다
 
서울 한영섬유
그 공장노동자 김진수
노사 대립으로 살벌한데
사용자 쪽 깡패한테
드라이버로 머리 맞은 김진수
끝내 숨졌다
 
< … >
 
그가 죽은 뒤에도
하루의 임금
밤의 잔무 수당 합쳐야
고향으로 부칠 돈 턱없다 어림없다
 
영등포는 누구도 올 수 있는 곳
누구의 고향도 아닌 곳
어디 한군데 포근한 데 아늑한 데 없이
오직 진실로 황량할지어다
(‘김진수’, 15권)
 
전태일과 같은 나이에 죽은 이 노동자 청년에 대해 “사람들은 하나는 섬기고 하나는 저버렸다”(‘노동자 김진수’, 10권)라고 말하는 시인에게서 ‘사람들이 저버린’ 자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듯하다. 70년대를 지나 80년대가 왔으나 노동자들의 죽음은 계속되어, “전남도청 앞 광장 / 온몸 불길에 휩싸인 채 / 동구청까지 달려가 / < … > / 민주주의 만세 외치며 불덩이로 쓰러”진 “1980년 5월항쟁 시민군” 노동자 홍기일(’홍기일‘, 별편)이 있고, “분연히 불붙은 몸 솟구쳐 / 광주학살을 규탄하”고 노동3권 보장을 외친 노동자, “부산 초량리에서 태어난 목수의 아들 / 가난의 아들 / 서울의 변두리 달동네 살다가 / 광주 대단지로 쫓겨나 / < … > / 판잣집 지어 자라난 / 이 땅의 아들 / 나이 스무세살의 몸 불질러 / 그 침묵의 날 불질러 / 1980년 6월9일 신촌 네거리“에 ”홀로 쓰러져 / 이 땅의 암흑의 진실들“을 깨어나게 한 노동자 김종태가 있다(’김종태‘, 별편).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 “불온전단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 < … > / 1986년 6월11일 / 인천에서 일하다가 / 형사대에 붙잡혀가 / 8일 만인 / 6월19일 / 그의 고향 언저리 / 여수 돌산 대미산 중턱 암굴 / 변사체로 발견”된 노동자 신호수도 있다. 한편, “광주 박석무의 제자 / 고등학생으로 / 광주민중항쟁에 참가했다가 / 정학처분을 받고 / 호남대에 들어갔다가 / 그만두고 / 노동자가 되어 / 노동자 야학 교사가 되어 / 세상의 모래알로 살았”던 표정두는 “1987년 추운 3월 서울 광화문 / < … > / 30미터쯤 불덩어리로 달려가며 / 장기집권 분쇄하라고 외치며 / 달려가다 쓰러졌다가 / 일어났다가 쓰러졌다 // 시신 빼앗겨 / 벽제화장장 한줌 재로 뿌려졌다 / 이 겨레의 한 소년병 / 스물다섯살의 / 한 노동자는 / 결국 한줌의 재로 돌아갔다“(‘표정두’, 별편).
 
그리고 마침내, 1987년 7~8월의 노동자 대투쟁 시기에 최루탄 파편을 맞아 사망한 “옥포 대우조선에서 일하던 / 스물두살의 청년 이석규”가 있다. 그의 죽음은 그를 가슴에 묻은 천만 노동자와 더불어 ”노동자의 생존권 요구 투쟁을 / 정치와 역사의 앞장으로 끌어올렸다“('이석규', 별편)고 고은 시인은 그 의의를 밝힌다. 이와 같이 <만인보> 별편에는 생존권과 같은 최소한의 기본적 권리를 위해 자본과 권력에 대항해 싸우다가 죽어간 노동자, 민주화운동 속에 쓰러져간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여럿 실려 있다.
 
 
고(故) 전태일 열사 46주기였던 지난해 11월13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서 알바노조 회원들이 '박근혜 퇴진',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퍼레이드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노동자의 삶은 나와 무관한가?
우리 사회에는 부당노동행위 불감증이거나 무관심이거나 심지어 노조활동이 활발하면 경제가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에서는 80~90년대 노동운동의 발전이 가져다 준 결과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과 중소기업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 간의 임금 격차를 염두에 두고 ‘노동귀족’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노동귀족화된 어용노조 지도자들도 있겠으나 우리 사회의 노동현실이 갈 길은 여전히 멀다. 2009년 4월 2646명의 인력감축 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쌍용자동차의 집단해고·강제진압·복직투쟁의 지난한 과정과 최다 해직 노동자의 죽음은 한국 노동운동사에 있어 가장 무거운 기록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하는 것은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만이 아니다. 송전탑 고공 농성을 해야 했던 조합원들과, 표면적으로는 자살이되 본질적으로는 타살을 당한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과연 나의 현실로부터 유리된 것이겠는가? 정경유착과 글로벌 자본의 시스템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상, 그들의 문제는 우리들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가 ‘인간’이며 ‘휴머니즘’을 아는 인간인 이상, 외면할 수 있는 ‘그들의 현실’은 없다, ‘우리들의 현실’이 있을 뿐. 인간과 인간의 노동을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나 역시 그 도구에 불과하고 언제든 ‘노동개악’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만인보> 별편에 실린 민경교통 택시 노동자 박종만 열사(1984.11.30 분신)와 구로공단 신흥정밀 노동자 박영진 열사(1986.3.17 분신, 18일 사망)의 투쟁을 상기하면서 다가오는 봄, 적폐청산의 시작을 기대해본다.
 
격일제 22시간 달려야
악덕 도급제 사납금 바친다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월급에서 차액을 어김없이 떼어간다
그래서 마구 달려야 한다
치고받고
눈에 불 켜달고 달려야 한다
< … >
여기서 뜻을 세워
노동조합을 만드는데
여기서
모순의 힘 앞에서
택시 노동자가 깨치는데
< … >
 
그리하여 박종만은
동료 안을환 배철호와 함께
노조파괴에 맞서
해고된 동료를 위해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 … >
다음날 회사는
농성운전자 전원 해고를 통고
 
이때 박종만
내 한 몸 희생되더라도
더이상 기사들이…
이렇게 유서를 쓰고 나서
회사 대기실 문 잠그고
몸에 불 지르니
석유난로의 석유에 불붙어 나뒹굴며
그 처참한 소리
노동조합 탄압 말라!
사무장을 복직시켜라!
부당한 대우를 개선하라!
이렇게 외치고 죽어갔다
 
시꺼멓게 타버린 시체 빼앗기고
장례식도
추모식도 빼앗겨버리고
 
이 땅의 노동자
이 죽음
이 불지른 죽음
이 무슨 영광 있어야 하는가
(‘박종만’, 별편)
 
구로공단 노동자 분신자결
초임 일당 3천80원을
4천2백원으로 인상할 것
근무시간 아홉 시간을
여덟 시간으로 바로잡을 것
강제잔업과 철야특근 없앨 것
부당해고하지 말 것
이것을 요구하며 분신자결
 
< … >
 
드디어 종업원 궐기했다 경찰과 맞섰다
각목과 짱돌이 난무했다
옥상으로 쫓겨갔다
최루탄가스로 밀려갔다
거기서 박영진이 석유를 붓고
경찰 물러나라고 외쳤다
그러고 나서 불질렀다
동료들이 불 끄려고 달려갔으나
경찰이 막고서서 방치
 
가리봉동 구로동 노동자의 싸움
언제나 노동자는 하나
1천만 노동자는 하나라고 일어선 사람
부여 백마강 기슭에서 태어나
벽제 화장터 뒷산에 뼛가루로 뿌려진 사람
전태일을 이은 사람
이 땅은 노동자가 살기 위하여
노동자가 죽어야 하는 땅임을
온 세상에 소리친 사람
< … >
(‘박영진’, 별편)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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