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문명으로 읽는 기업)⑥현대중공업, '불원복' 리더십으로 혁신하라
입력 : 2018-04-16 07:00:00 수정 : 2018-04-16 07:00:00
현대중공업의 기업리더십은 긴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을 준비하는 '복(復)괘'다. 조선업은 한때 한국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했지만 글로벌 경기불황과 중국 조선업의 가격경쟁에 밀리면서 수세국면이 됐다. 위기를 돌파하려고 현대중공업은 석유시추선 등으로 눈을 돌렸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축적의 시간'이 필요한 분야에서 성급하게 행동한 측면이 컸다. 이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은 더 어려워졌다. 그리고 구조조정을 하면서 봄을 기다리는 처지까지 왔다. 그래서 현대중공업 리더십은 '불원복(不遠復)'이다.

'불원복'하기 위한 힘을 비축할 기업리더십 개선

불원복은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온다"는 뜻으로 복괘의 가장 핵심적 메시지다. 송나라 유학자 정이(程臣+頁)는 "잃은 뒤에 회복함이 있는 것이니 잃지 않으면 무슨 회복함이 있겠는가. 잃기를 멀리하지 않고 돌아오면 후회함에 이르지 않으니, 크게 선하고 길한 것이다"라고 했다. 불원복은 주희(朱熹)가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고귀한 리더십의 정수다. 그만큼 불원복은 동아시아문명의 사유에서 가장 가치 있는 리더십이다.
 
사진/뉴스토마토
 
글로벌기업의 리더십으로 보면 불원복은 잘 나가던 기업이 길을 잃고 방황하지만 다시 제 위치로 돌아와 성장세로 가는 길목에 있는 상황이다. 한겨울에 새순 하나가 겨우 밑바닥을 뚫고 움트려면 고단하고 쓰라린 시간들을 넘겨야 한다. 현대중공업은 2016년 11월 순환출자 해소를 통한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투명성 제고 등을 위해 지주사체제 전환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지난해 2월 현대중공업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현대로보틱스를 지주사로 하는 회사분할 안건을 통과시켰다. 4월에는 존속법인 현대중공업을 제외한 현대로보틱스와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등 신규법인이 설립됐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수주절벽의 영향으로 선박 건조량이 줄면서 매출이 감소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업분할을 통해 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지주사체제로 전환한 현대중공업이 불원복 리더십으로 심기일전한다면 새로운 기회가 다시 올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중공업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중부(中孚)괘'다. 동물 중 감정이 가장 둔한 돼지와 물고기까지도 감동하도록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믿음 부(孚)'의 글자 생김을 보면 손톱으로 자식을 품는 형상이다. 참으로 정성스럽게 중부(中孚)가 되면 아무리 우둔한 동물이라도 감동시킬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중국의 저가공세와 차별화하면서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새로운 신뢰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현대중공업의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은 어미 새가 알을 품고 부화를 기다리듯 정성스럽게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최선이다. 학은 바닷가나 골짜기 개울의 낮은 곳에서 저음으로 울지만 그 소리가 새나 짐승의 울음 중에서 가장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새로운 신뢰를 얻기 위한 현대중공업의 노력도 낮은 곳에서부터 겸손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의 어느 곳에도 서서히 퍼져 나가고, 글로벌 연구소나 학계, 투자기관 등에서도 자연스레 공명(共鳴)을 얻을 수 있다. 
 
또 현대중공업은 새로운 사업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단기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장기적 투자를 해야 한다. 국내 조선업의 선두기업으로서 글로벌조선업 네트워크에서의 위치를 고민하고 조선업을 통해 핵심가치를 창출하려는 전략이 요구된다. 예를들면 크루즈산업은 정성 어린 장기투자가 필요한 영역으로, 현대중공업의 새로운 도전과 기회가 될 수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인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전경. 사진/현대중공업

'회복기'에 계열사·임직원 재정비 요구
 
회복기에 들어서는 현대중공업의 리더십이 가장 신경을 써야 할 것이 계열사 사장단의 진용을 제대로 재정비하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계열사의 재정비는 <주역>의 '둔(屯)괘'에 해당한다. 공자는 이 괘사를 해석하면서 "구름 아래 치는 천둥의 형상이 둔괘이니, 군자로서 제후들을 경륜(經綸)하라"고 조언했다. 구름 아래 천둥이 친다는 것은 아직 시원하게 비가 내리지는 않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 전해지는 <주역>의 순서에서 둔괘는 건괘와 곤괘에 이어 세번째다. 이는 물 아래에서 천둥이 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주의 발생에서 물속에서 천둥이 치는 것은 세상이 새롭게 태동하기 위해 우주가 흔들리고 모양을 뜻한다. 
 
주나라 문왕은 둔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하늘의 조화가 어지럽고 어두우면 제후를 세우고 편안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天造草昧 宜建侯 而不寧)"고 말했다. 천하의 창조가 거칠고 어두워서 아직 정리가 잘 안 된 상태는 질서정연하게 조화가 이루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계열사의 책임자를 가려낼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현대중공업은 한겨울을 지나 봄을 준비하는 새로운 시작의 단계다. 기업이 어수선한 상태이니 그 일을 치러내려고 보다 더 모진 힘을 써야 한다. 편안해서는 안 되는 단계이기 때문에 '불능(不寧)'이라는 말을 쓴다.
 
언론보도를 보면, 현대글로벌서비스가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플랫폼 구축 등 사업 다각화에 시동을 걸었다. 이러한 시도는 외형 확대와 ICT 기반의 플랫폼 사업을 통한 매출 다각화가 목적이다. 실제로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설립 초기 193명에 불과하던 직원 수를 올해 2월 270명으로 늘렸다. 주력 계열사인 현대중공업이 수주절벽에 따른 매출 감소로 인력을 줄이는 행보와는 대조적이다. 플랫폼 사업은 오는 2019년까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핵심기술인 딥러닝 등을 접목, 운항선박과 육상 엔진발전 시설의 '생애주기 관리 서비스'를 고도화해 매출을 늘려나갈 방침이다. 사업 다각화 등 새로운 경영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끌고 갈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다.
 
우주가 생겼다든지 국가가 세워졌다든지 또는 기업이 새롭게 시작하든지 할 때 실제로 사업을 수행할 제후나 계열사 사장단이 가장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 단계에서 현대중공업의 리더십은 계열사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이고 책임자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 그리고 부지런히 일을 치러내도록 해야 한다. 편안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주 문왕은 "제후를 세우고 난 뒤에 편안함을 돌보지 않는 것(建侯不寧)"이라고 했다.
 
1970년대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전경.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이와 턱이 잘 씹는 모양의 '이괘'…현대중공업. 협력사와 상생해야
 
현대중공업의 협력사들은 이(臣+頁)괘로 해석된다. 새롭게 시작하는 현대중공업의 리더십이 협력사와 관계에서도 절도를 지켜 상생하는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새로운 관계정리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음식물을 먹어서 우리 몸을 기른다는 뜻이다. 또 대화할 때도 턱과 입으로부터 말이 나오므로, 만민을 기른다는 뜻도 있다. 동아시아문명에서 '기른다'는 것은 운동을 해서 힘을 기르고, 음식을 먹어 육체를 기르고, 수양을 해서 덕성을 기르고, 덕성이 밖으로 나타나 사람들이 본받으므로 사람을 기르고, 개인이 부족하면 사람들에게서 길러짐을 받는 것이다. 동아시아문명에서는 '만민을 기르는 것'을 가장 크게 기르는 것으로 본다. 덕이 쌓여서 그 덕이 밖으로 나타나면 만민이 감화하게 되고, 만민 역시 쌓인 덕이 있으므로 덕을 닦아서 보다 더 빛나게 하는 게 기르는 것의 극치라고 봤다.
 
이런 맥락에서 현대중공업이 동반성장의 가치에 주목하는 것은 긍정적 신호이다. 조선업에서는 협력업체의 경쟁력이 곧 현대중공업의 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 협력회사의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고 협력업체와의 상생관계를 확대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나눔활동과 지역인프라 구축도 중요하다. 이런 활동이 '이괘'의 상생원리다. 현대중공업은 2011년부터 자재대금을 100%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명절과 하계휴가 때는 대금을 조기 지급해서 협력사의 자금운용에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협력과 상생은 조선업이 어려울 때일수록 더 확대되어야 한다. 그래야 조선업의 이해관계자 네트워크가 건실해진다.
 
아울러 현대중공업의 기업리더십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자구구실(自求口實)'의 원칙이다. 현대중공업과 협력사 모두 스스로 먹거리를 찾되 그 자신의 기여도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말라는 경계다. 긴 불황의 터널을 겪는 조선업에서는 결국에는 누가 제대로 기사회생할 것인지, 기사회생하는 동안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하지만 이때 국가나 동종업계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이득을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현대중공업과 협력사들이 불황에서 인내한 수고의 대가로 벌어오는 것은 옳지만 교묘한 술수로 이득을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돈을 벌어들일 때는 더 세밀하고 촘촘하게 의리가 나누어져야 한다.
 
3월30일 대구 국립대구과학관에서 현대중공업지주 출범식이 열렸다. 사진/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 직원과 노조, 첩첩산중
 
현대중공업이 한겨울의 어려운 시절을 벗어나 봄으로 가는 초입에 들어섰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가장 고통받고 것은 직원들이다. <주역>에서는 현대중공업 직원들의 처지를 절름발이 생활을 뜻하는 '건(蹇)괘'로 풀이한다. 이 괘사는 태산준령의 높은 산을 온 힘을 다해서 겨우 오르고 보니, 더 험한 산이 또 있어서 쉽게 걸어가지 못하고 지쳐서 있는 형상이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상황은 한국 대기업 노조의 축소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현대중공업 소속 노동자와 협력사 노동자의 임금격차가 대표적이다. 수십년째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노동계의 고질적 문제다. <주역>에서 염려하는 절음발이의 어려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조는 산별노조 중심이 아니라 기업별 노조기 때문에 개별 기업의 노동문제를 넘어서기 어려운 면이 크다. 왜곡된 제도들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노동의 보편적 가치실현을 가로막고 있다. 누군가의 선도적이고 전향적인 자세만이 88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쌓여온 노동계 내부의 만성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중공업은 선도적으로 나서서 절름발이 노동문제의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절름발이 시대를 사는 직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만민을 구제해줄 대인을 만나는 게 이롭다. 직원들이 아무리 스스로의 지혜와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난세를 벗어날 때는 혼자의 힘만으로는 안 되고 뜻깊은 동지들을 규합해야 한다. 고난에 시달리고 힘이 쭉 빠진 상황에서 또 어려운 길을 간다고 하면 흉한 것이야 이루 말할 게 없으므로 궁색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건괘'를 해석할 때 "백성들을 어려운 길로 가게 하면 그 도(道)마저 궁색하게 된다"고 했다.
 
절름발이 시대에는 재물을 많이 벌어들이고 경제를 부흥시키고 과학발명을 이루는 것도 좋지만, 인재를 얻어서 교육하고 제대로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 큰 사람을 보는 것이 이롭다고 했다. 대인이 들어와야만 절름발이 시대를 무사히 치러낼 수 있다. 현재중공업 노조는 한국 노동계의 절음발이 구조를 혁파하는 데 누구보다 앞설 수 있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에게 절실한 것은 어려운 시대에 좋은 리더십을 만나는 것이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 임채원은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행정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동대학 한국행정연구소와 국가리더십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경희대에서는 세계화와 사회정책 등 글로벌 어젠다와 동아시아 문명의 국정운영을 연구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등 20여개 중앙·주정부의 정책 어젠다를 공동 연구하는 '비교어젠다 프로젝트'에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참여 중이다. 이번 기획은 필자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연구와 실천을 토대로 동아시아 문명의 가능성과 미래에 관해 <뉴스토마토>에 격주로 총 12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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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호

최병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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