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명석의 재계시각)‘칠순’ 정몽헌 회장 “살았다면 금강산서···”
별세 15년, 여전히 평가 엇갈려
‘외줄타기’ 경협, 환호·비난 모두 받아
입력 : 2018-08-05 15:49:46 수정 : 2018-08-05 16:19:53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여기 조선 땅의 숨결이 맥동치는 곳 금강에 고이 잠들다. 아버지 아산 정주영의 유훈을 이어 세계사의 모든 갈등을 한 몸에 불사르며 남북 화해의 새로운 마당을 열었다. 그의 혼백과 영원히 하나 된 민족의 동산에 춤추리.’
 
북한 금강산관광특구 내 온정각 맞은 편에 세워진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추모비에 도올 김용옥 선생이 새겨 넣은 글귀다. 지난 3일 현정은 회장은 남편의 15주기 추도식 참석차 현대그룹 임직원 15명과 함께 4년 만에 금강산을 찾았다. 이날 올해로 고인이 칠순이 됐다는 기자 질문에 현대그룹 관계자는 "살아계셨더라면 칠순 잔치를 가족과 함께 금강산에서 열 수 있었을 텐데···"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북한 금강산관광특구내 온정각에 세워진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추모비. /사진 뉴시스
 
1948년 9월14일 태어난 정몽헌 전 회장은 55세 생일을 한 달여 앞둔 2003년 8월4일 생을 마감했다. 올해로 15년이 지났지만, 고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를 기억할 때마다 떠올릴 수밖에 없는 남북경제협력사업(경협)도 시각에 따라 다른 주장을 제기한다. 경협을 숙원으로 여겼던 선친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도와 대업의 첫 발을 내딛었다는 평가와, 경협 독점을 위해 국민적 정서를 거스르고 북한에 퍼주기식 자금 지원을 했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보수와 진보 모두 통일은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라고 말하지만, 방법론은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강국들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춘 남북관계를 고집하고 있다”며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은 정치적 이념 대신 ‘경제’라는 외줄 위에서 어느 한 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중심을 잡으며 ‘아슬아슬한’ 경협을 추진했다. 누구의 색깔과도 맞지 않으니 정권에 따라 입맛에 맞으면 환호를, 그렇지 않으면 비난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사업은 감성만으로, 또는 이성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현대 출신 임원들은 정몽헌 회장에 대해 “같은 민족, 같은 국가라는 원칙에 따뜻한 가슴으로 다가가되, 경제협력을 통한 남북 공동번영이라는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냉철한 지혜로 경협을 추진했다”고 말한다. 실향민 출신인 창업주는 북한을 이성적으로 대하는 데 있어 일정 부분 한계가 있었다. 이를 사업적으로 잡아준 이가 바로 정몽헌 전 회장이었다.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으로부터 금강산 일대 8개 지구의 독점 개발권 및 사업권을 보장받아 경협을 현대가 주도할 수 있게 되자, 정몽헌 회장도 꿈에 부풀었다. 1999년 현대건설 회장이었던 그는 “경협은 우리 민족이 역사적인 통일을 이룩하는데 초석이 되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우리 현대가 주도하는 사실에 대해 임직원 여러분들께서는 남다른 의미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지시켰다.
 
남북관계가 긴장 국면에 빠질 때마다 그의 추모식을 전후로 해소되곤 했다. ‘정몽헌’이라는 이름 석 자가 갖는 의미와 영향력은 그만큼 크다. 올해 남북 정상회담 개최 후 북한은 남측 기업인 가운데 가장 먼저 현 회장의 방북을 허가했다.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위원장은 추모식에 참석한 맹경일 부위원장을 통해 “아태는 현대에 대한 믿음에 변함이 없고, 현대가 앞장서 남북 사이의 사업을 주도하면 아태는 언제나 현대와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경협 재개 가능성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일부 기업들이 중견그룹으로 축소된 현대가 과연 경협을 주도할 능력이 있느냐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김 위원장의 메시지는 이러한 분위기를 일축하고 경협 파트너는 현대임을 재확인해 준 것과 다름없다. 정주영·정몽헌 2대를 잇는 경협 숙원은 현대의 존재가치가 됐으며, 그 유훈은 북한에게도 약속이자 다짐이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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