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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화난 소비자, 제대로 화 낼 수 있는 '광장' 만들었죠"
'집단소송 플랫폼' 연 최초롱·윤제선 변호사···"소액 다수피해자라고 무시당해선 안돼"
2018-08-13 06:00:00 2018-08-13 11:42:41
[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발암성 물질인 '라돈'이 검출된 대진침대에 대한 집단소송 원고가 5700명을 돌파했다. 이어 또다시 라돈이 검출된 까사미아를 상대로 진행하려는 소송에도 벌써 109명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이 두 소송에는 공통점이 있다. (주)‘화난 사람들’이 소송에 참여할 소비자들을 모집했다는 것이다. 기업 등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려는 변호사들은 '화난사람들'에서 사건소개 및 원고 모집을 진행할 수 있다. 기업의 불법행위로 인한 계속적인 집단피해와 법률시장의 고질적 한파 속에 생겨난 새로운 풍경이다. 이 플랫폼을 머릿속에서부터 구상해 만들어 낸 윤제선·최초롱 변호사를 만나봤다(편집자주). 
 
“기업으로 인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소송 서비스를 이용해 보지도 못하고 화를 삭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집단소송 플랫폼 '화난 사람들'을 운영하는 최초롱 변호사와 윤제선 변호사가 플랫폼을 마련하게 된 이유로 입을 모아 강조한 것은 소송 서비스의 한계였다. 소비자들이 손해를 인지했더라고 전문적 지식의 한계로 소송 진행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변호사들도 소액사건일 경우 맡아 봤자 돈을 벌기 힘들다는 생각에 결국 문제 해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법적수단을 통한 권리구제의 보편화' 
 
화난사람들의 대표인 최 변호사는 “소비자들이 모여 화만 내는 게 아니라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할수 있는 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화난사람들을 시작했다”며 “이슈가 된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같이 형사고발을 하거나, 피해자를 위해 기부금을 모금해 소송으로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화난사람들의 목표는 법적 수단을 통한 권리 구제를 사회에 보편화하는 것이다. 
 
윤 변호사 역시 “사실 여럿이 모이면 큰 사건이 되는 거고 그래야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할 수 있다”며 “변호사 수가 많아져 삶이 퍽퍽해지는 면이 있는데 이런 사건을 변호사들도 쉽게 수임하면 소비자들과 함께서로 '윈윈'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화난사람들 운영 원리는 간단하다. 신청인들이 화난사람들 웹사이트에서 수임을 원하는 사건 관련 피해 및 개인 정보를 입력하면, 이를 수임하는 변호사가 관리자 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 정보를 토대로 소송 등 법원에 제출해야 하는 형태로 가공 및 활용할 수 있다. 화난사람들은 변호사에게 이 절차를 이용할 수 있는 등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개인정보 유출 집단소송 대리하다가 착안 
 
사실 이 두 변호사는 대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낸 선후배로, 윤 변호사가 수임한 ‘여기어때 개인정보 유출 집단소송’ 등 기존 손배소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얘기하며 화난사람들을 생각해냈다. 1년 정도 아이디어를 구상했고, 올해 5월께부터 본격적인 플랫폼 구축을 시작했다. 윤 변호사는 “집단소송을 시작하면 워낙 원고가 많아 관리가 쉽지 않다”며 “원고 개개인 이름에서부터 우편번호 그리고 제출한 증거를 일일이 수작업하려면 폴더가 1000개가 생기고, 이에 지친 직원들이 퇴사해 업무가 마비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회상했다. 착수금을 확인하는 업무에서도 본인 이름이 아닌 ‘변호사님 힘내세요’로 송금될 경우 당사자 파악이 힘들었다는 사례도 있었다. 
 
재판에서도 피고 측은 집단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많다는 점을 이용해 피해가 없는 원고도 소송에 참여할 수 있으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정보 유출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때 로펌이 일일이 원고에 연락해 피해상황을 수집해야 하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고, 이때부터 소송 제기 전부터 소비자들이 피해 자료를 화난사람들에 직접 업로드하는 방식을 생각했다. 최 변호사는 “화난사람들에서는 본인인증을 거친 사람만 위임계약을 체결하도록 했고, 휴대폰 본인 인증과 같은 방식은 정보통신망법에서 인정하고 있어 향후 재판이 진행돼도 법원이 이를 놓고 적법하게 대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법 재판연구원 마치고 창업 뛰어들어 
 
올해 초까지 서울고법 재판연구관으로 활동한 최 변호사는 “보통 재판연구원 임기 2년을 마치면 대형로펌에 가는데 그쪽보다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윤 선배와 함께 플랫폼을 만들어보자고 이야기했고, 어렵고 복잡한 사건이 아니라 자기 전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며 기사 및 이슈를 보고 ‘나도 참여해보자’는 생각이 들 수 있는 사건을 전제로 정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진침대 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에게도 화난사람들 플랫폼 이용을 제안했고, 화난사람들을 통해 원고인단이 모집되고 있다. 윤 변호사는 “보통 변호사들이 집단소송 경험이 별로 없어 소송 이후 생길 어려움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아, 이런 어려움을 해소해주겠다고 제안해 같이 진행하게 됐다”면서도 “변호사들은 각자의 법무법인 소속일 뿐 이 플랫폼은 원고인단과 변호사들의 소송을 위한 장에 불과하고 카드사 수수료처럼 솔루션 제공에 대한 수수료만 받고 있다”며 변호사법에 저촉되는 부분은 없다고 밝혔다. 
 
화난사람들이 준비 중인 사건으로는 현대홈쇼핑, GS홈쇼핑 등을 상대로 한 집단분쟁조정이 있다. 홈쇼핑사에서 소비자들에게 김치냉장고를 출고가 그대로 판매하면서 고가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처럼 방송해 실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과징금 처분 결정이 있었고, 이에 대해 소비자들이 집단분쟁조정과 손배소를 진행하려는 것이다. 
 
현대·GS홈쇼핑 집단분쟁조정도 준비 중 
 
최 변호사가 또 준비하고 있는 것은 ‘예열 중인 분노’였다.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킨 사건을 선정해 과거 유사사건에서의 판례 등을 정리하고 변호사 등 전문가들의 해결책 제시, 소비자들의 의견 제시를 축적함으로써 여론을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때 그때 화제가 된 사건들에 대한 소송을 제시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지난 6월지방선거 당시 정태옥 의원의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에 살고, 망하면 인천에 산다) 발언이다. 윤 변호사는 “쟁점은 간단하고 변호사도 쉽게 수행할 수 있는 내용이다.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모르는게 문젠데 얼마든지 친근하게 소송절차를 이해할 수 있다”며 “사소한 내용이더라도 법원 판단을 받을 수 있고 소송 제기 액션만으로도 한이 풀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슈를 정하고 원고를 모집한다는 점이 소송을 조장한다는 우려에 대해서 최 변호사는 “소액의 다수 피해자들이 법적 구제 절차를 밟는 것은 쉽지 않다. 피해자들이 모여야만 피해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며 “힘을 가진 가해자에게 대응하기 위해 다수의 피해자들이 모일 수 있는 일은 지양할 것이 아니고 적극 장려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진 화난사람들이 소송 제기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제시하고 소비자들이 신청을 하고 있다면 향후에는 소비자들이 문제 제기를 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변호사 업계 "왜 진작 없었나" 호평 
 
이미 주변 변호사들에게는 "왜 이런 사이트가 진작에 없었는지 모르겠다"며 긍정적인 평가가 잇따르고 있었다. 최 변호사는 다만 “변호사업계나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시장조사를 거치고, 상품성을 분석해 이 일을 시작한 게 아니라 일반적인 반응까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피해자들의 의사를 표명하고 권리를 찾는 일을 주저하지 말고 적극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윤제선·최초롱 변호사.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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