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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린 의뢰인’ 유선 “연기였지만 나 조차 내가 싫었다”
“영화 속 ‘지숙’, 이유 불문 악인이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인물”
‘아동학대 예방홍보대사’ 활동, 올바른 어른 올바른 부모 제시
2019-05-13 00:00:00 2019-05-13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언론 시사회 이후 눈물을 쏟으며 미안한 감정을 전했었다. 배우 유선은 영화 어린 의뢰인에서 악랄하다’ ‘잔인하다는 표현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악인 그 자체로 등장했다. 어린 딸과 아들을 폭행하고 또 폭행하며 마지막에는 잔인하게 살해를 하는 계모로 출연했다. 실제로도 딸을 키우는 엄마인 유선은 너무도 힘들었고 너무도 고통스러웠다고 되돌아봤다. 데뷔 20년차에 접어든 이 여배우가 이토록 힘들었다고 토로하며 눈물까지 쏟았다면 이건 단순한 연기 이상을 넘어선 것이라고 미뤄 짐작을 해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실제로 영화 속 유선의 모습은 끔찍하다 못해 섬뜩하고 섬뜩하다 못해 공포스러웠다. 단순한 동작 반복만으로도 영화 속 두 어린 캐릭터는 공포에 사로 잡혔다. 이 영화는 실제로 일어났던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유선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접한 뒤 사명감과 함께 절대로 일어나선 안될 천인공노할 만행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 마음에 출연을 결정했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2017년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예방홍보대사로 위촉돼 활동 중이다. 그가 어린 의뢰인에서 악마와도 같은 모습을 선보인 이유는 명확했다.
 
배우 유선.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주)
 
언론시사회에서 눈물을 쏟으며 고통스러웠던 모습과는 달리 인터뷰 장소에서 만난 유선은 그나마 많이 밝아져 있었다. 워낙 데뷔 연차에 따른 연기 내공이라면 유선도 장소를 불문하고 명함은 충분히 내밀만한 수준이다. 그래서인지 언론시사회 이후 며칠이 지난 상태에서 만난 유선은 많은 것을 털어 버린 듯 했다. 그래도 촬영 당시의 고통스러웠던 점은 다시 한 번 인정하고 언급했다.
 
막연하게 악인이라고 표현하자면 더 악랄하게 갈 수도 있었죠. 그렇다고 이유를 부여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연기한 지숙이 행한 악행은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용서 받을 수 없잖아요. 전형적인 계모의 모습에서 벗어나서 진짜 악인이 돼야 했죠. 감독님도 그걸 원하셨고. 우선 여러 가지를 생각했는데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인물이라고 봤어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래서 디테일을 잡아나갔죠.”
 
지숙에 대한 감독은 생각과 유선의 생각이 일치한 지점은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이유 조차 주고 싶지 않은 악인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유도 주지 않고 완벽한 악인으로 그려졌다. 반대로 유선은 그럼에도 연기를 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이해란 단계로 접어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분노조절장애였다. 그 단계에서 나온 디테일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머리를 묶는 장면이었다. 모두가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우는 명장면 중 하나이다.
 
배우 유선.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주)
 
지숙 같은 경우 극단적인 결핍이 만들어 낸 인물이라고 봤죠. 자신의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했고. 지금 생각만 해도 괴롭네요(웃음). 엄마에 대한 해석도 그저 기능적으로만 하잖아요. 법정 장면에서 내가 뭘 해줬고 뭘 해줬고등등. 엄마란 단어가 갖고 있는 숨은 뜻이나 경험이 없으니. 어떻게 그 내면을 끄집어 낼까 고민했죠. 우선 감독님이 장치한 게 머리 묶은 장면이에요. ‘머리를 묶으면지숙도 악행의 스위치가 켜지고. 아이들도 공포에 떨고.”
 
자신의 악행 연기에 가장 미안한 대상은 바로 영화에서 딸과 아들로 출연한 두 아역 배우였다. 두 아역 배우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엄마의 표정으로 변하면서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을 연신 전했다. 물론 현장에서 두 아역 배우가 느낀 감정과 달리 연기를 소화한 면에선 대단한 배우였다며 두 손의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대선배로서 어린 아역 배우들의 강단이 대단했다고 칭찬 일색이었다.
 
사실 아역 배우 둘이 워낙 친한 사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번 영화 촬영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대요. 진짜 감독님이 레디 액션사인 들어가기 전까지 둘이 깔깔거리고 장난치고 하하하. 촬영이 들어가면 두 아이들이 나한테 겁을 먹고 짓눌린 감정이 나와야 하는데 초반에는 그게 잘 안됐죠. 그래서 제가 아이들의 감정을 좀 끌어 내줘야 하기에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어요. 대신 동휘씨가 아이들을 많이 다독이고 친밀하게 대했죠. 그게 작품 전체에 도움이 된다고 봤어요.”
 
배우 유선.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주)
아이를 학대하는 장면을 찍으면서도 유선은 당연히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단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신도 이렇게 힘들지는 몰랐다고. 길고 긴 촬영 현장에서 그래도 자신의 마음을 다 잡고 촬영에 임했지만 몇 차례 위기가 온 적도 있었단다. 인터뷰에서 그는 딱 한 번 자신도 무너질 뻔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여섯 살짜리 딸을 키우는 엄마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계속 말씀 드리지만 너무 힘들었죠. 그렇다고 그걸 제가 하소연하기도 그렇고. 매일 촬영장 가는 발걸음이 너무 힘들었어요. 세트 촬영 분량이 3주 정도 됐는데 그 세트에서 대부분 저의 악행 연기가 나와요. 한 번은 아들로 나온 민준이가 저한테 학대 당하는 부분을 촬영하고 오케이 사인이 났는데 빠져 나오질 못하는 거에요. 그 모습에 순간적으로 제가 무너졌죠. ‘내가 뭐하는 거지란 생각에. 그 순간만큼은 제가 너무 싫더라고요.”
 
어린 의뢰인은 사실 캐스팅 난항으로 제작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유선이 연기한 지숙캐릭터를 맡겠단 여배우가 나타나질 않았었다. 당연한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무도 끔찍하고 악인 그 자체였기에 엄두를 낼 여배우가 없었단다. 우연히 유선에게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평소에도 작품 선택에 긴 시간을 고민하지 않던 유선은 시나리오를 받고 그날 밤 읽은 뒤 다음 날 아침 출연을 결정했단다.
 
배우 유선.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주)
 
제가 아동학대 예방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에요. 글쎄요. 그런 의무감이라면 의무감일 수도 있고. 엄마로서의 의무감일 수도 있고. 배우로서의 욕심일 수도 있고. 사실 지금은 왜 이 작품을 선택했냐고 물으시면 딱 떨어지는 답은 못하겠어요. 그냥 해야 했어요. 이런 상황을 알리고 어른들이 더 경각심을 갖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동 학대요? 진짜로 법을 개정해서 최고형으로 벌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반드시.”
 
그는 자신의 악인 연기도 있지만 극중 착한 어른으로 등장한 이동휘에 대한 칭찬과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지금을 바라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영화 자체가 이동휘가 연기한 정엽의 시선을 따라가고 그의 내면 변화와 함께 생각의 변화까지 이끌어 낸다. 모두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영화 속 정엽은 그것을 굳건히 대면했다.
 
배우 유선. 사진/이스트드림시노펙스(주)
 
이동휘란 배우가 없었다면 전 이 영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봐요. 정엽이란 인물을 너무도 잘 그려줬어요. 요즘 어른들의 모습이 정엽을 통해 잘 그려졌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는 부모의 사랑과 어른들의 관심이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명확하게 그려내고 있잖아요. 정엽이 깨닫게 되는 순간을 영화를 보신 어른들도 똑같이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어떤 부모인지 어떤 어른인지 꼭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이 영화를 통해 시작됐으면 좋겠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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