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러시아 재발견)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길
입력 : 2019-09-09 06:00:00 수정 : 2019-09-09 10:25:28
어느 크리스마스 날 저녁, 낫과 망치와 별이 그려진 소련의 국기가 내려가고 러시아의 삼색 국기가 올라갔다. 지난 세기 인류는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을 경험했지만 그 세기가 저물 무렵 이 첫 실험의 실패도 목격해야 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이 사라지고 새로운 러시아가 역사에 등장했을 때, 타국의 사람들은 충격과 호기심으로 이 세계사적 사건을 지켜보았고 러시아인들은 혼돈과 기대, 희망과 절망의 시간 속에 던져져 있었다. 강산이 두세 번 바뀔 동안 커다란 변화를 겪어온 러시아인들,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플랫폼에 전시되어 있는 시베리아 횡단 증기기관차의 모형. 기차 앞 기념비에는 “1941년~1945년 대조국전쟁 시기 철도노동자들의 전투적 노동에 바쳐”라고 쓰여 있다. 이 증기기관차 모형은 블라디보스토크뿐만 아니라 러시아 내 여러 기차역에 세워져 있다. 사진/필자 제공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다시 타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3등칸이 사라진다!? 지난해 가을 한 신문 기사는 월스트리트저널(WSJ, 2018년 9월26일자)을 인용, 푸틴 대통령의 3등 객차 현대화 계획에 따라 ‘플라츠카르트’로 불리는 3등칸이 수년 내에 사라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뒤늦게 이 기사를 발견한 나는 3등칸이 사라지기 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다시 타기로 결심했다. 1992년 12월 말~1993년 1월 초 모스크바~이르쿠츠크 행을 탔으니 26년이 훌쩍 넘어서야 다시 횡단열차를 타게 된 것이다. 그때는 서에서 동으로 절반만 가고 남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이번에는 동에서 서, 즉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로 횡단열차의 전체 여정을 따르면서 변화된 러시아와 러시아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한국과 러시아 간 무비자 왕래가 가능해진 요즘에는 젊은이들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러시아 안에 한국인 유학생 1세대가 형성되던 1990년대 초, 처음 탄 횡단열차에는 러시아인 또는 구소련의 여러 공화국 사람들만 보였다. 2019년 여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중간 지점인 이르쿠츠크까지 가는 동안, 친구들끼리 여행하는 젊은 층과 가족 단위 한국인 여행자들을 종종 보게 되니 격세지감이 크다.
 
그런데 무엇이 나로 하여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그것도 3등칸을 다시 타게 한 것일까? 사실 처음 횡단열차를 탔을 때 기숙사 선배 언니와 나는 4인실(쿠페)을 이용했고 선배가 비행기로 모스크바에 돌아간 후부터는 3등칸을 사용했다. 6인씩 배치되어 있지만 완전개방형인 3등칸이 더 안전하고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은 불편한 3등칸의 진짜 매력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이는 이 독특한 공간에서 러시아 사회와 러시아인들을 그들의 내부로부터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데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은 오랜 세월 보지 못했던 기억 속 러시아 친구들의 외모만큼 변했을 러시아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소비에트가 붕괴하고 마피아와 스킨헤드족(러시아의 극우민족주의 유색인종차별주의자)이 창궐하기 시작하던 때 20대 유학생이던 필자의 대학 기숙사 안에도 변화가 일었다. 갑자기 바뀐 우리 층의 관리인―할머니 대신 젊은 사람이 새로 왔다―이나 방 배정 담당자들이 마피아 조직에서 꽂은 ‘낙하산’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기숙사는 매주 고려인들이 두부를 팔기 위해 땡그랑땡그랑 종소리를 내며 복도를 도는 정감 있는 곳이기도 했다. 기숙사 근처 지하철역의 시장 상인들은 아직 있을까? 지하철 객차 안 건너편 승객들의 표정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귀가할 때마다 스킨헤드 무리를 만날까봐 조마조마하던 밤길, 어쩔 수 없이 그들 옆을 지나쳐야 할 때 아시아인인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절대 입을 열지 않고 바짝 긴장한 채 걸었던 그 모스크바의 밤길은 어떻게 변했을까?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을 내려다 본 모습. 오른쪽에 러시아철도 마크가 찍힌 기차가 서 있고 왼쪽에는 증기관차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그 뒤로 러시아철도회사 건물이 보인다.사진/필자 제공
 
블라디보스토크 주민 따냐, 연금 대화와 새벽의 친절
항공권 예매 당시 제일 저렴한 가격이었던 러시아 비행기를 타고 옆 좌석의 러시아 여성 따냐씨와 대화를 나누다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러시아 비행기는 북한 땅을 가로질러 가기 때문에 항공시간 2시간에 현지 시차 1시간을 더해 3시간이 걸리지만, 한국 비행기는 북한을 피해 빙 둘러가야 해서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다. 처음 알았다! 이토록 가까운 블라디보스토크에 갈 때조차 반으로 나뉜 한반도의 운명이 작용한다는 것을.    
 
1997년 관광차 서울을 처음 방문한 이래, 캐나다에 살고 있는 딸을 보러갈 때마다 한국을 경유지로 지나간다는 따냐(따찌아나) 스테파뉵씨는 1964년생으로, 러시아의 연금법이 바뀌었다고 전해 준다. 예전 법대로라면 그녀는 만 55세가 되는 올해부터 연금을 받아야 하지만, 2018년 10월 3일 공포된 러시아 연방법의 개정 조항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의 연금 수령 나이는 각각 55세·60세에서 60세·65세로 상향 조정되었다. “온 국민이 축구 경기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이 법을 바꾸었어요!” 아마도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지칭하는 따냐의 항변이다.
 
개정안은 올해부터 적용되었는데, 연금수령 연령이 단숨에 다 바뀌는 것은 아니고 태어난 해에 따라 점진적으로 연장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올해 연금 수령 나이가 된 따냐는 예전보다 6개월 뒤에 연금을 받게 되었고, 그보다 후에 태어난 사람은 1년 뒤, 더 후에 태어난 사람은 2년 뒤... 5년 뒤 이런 식이다. 의료직·교사·예술가 등 특정 전문직 종사자나 러시아 북단(北端) 거주자, 3명 이상의 자녀를 둔 여성, 그리고 각각 42년·37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남성과 여성에게는 혜택이 주어지는 등, 세부사항은 복잡하다. 후에 소수민족 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소수민족의 경우 연금 수령 나이가 더 빠르다고 전해 주었다.
 
북한 상공을 지나간다기에 그 순간을 기억해야지, 생각하며 설렜던 마음은 연금 얘기를 듣느라 까맣게 잊혀졌다. 1990년대 5년 반 동안의 모스크바 생활에서 숱하게 듣던 ‘연금’이라는 단어를 2019년 블라디보스토크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상기 받을 줄은 몰랐다. 쥐꼬리만한 연금으로 생활해야 하는 연금생활자, 몇 달씩 지체되는 봉급생활자의 가난이 화두였던 시절이었다. 현재도, 직종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평범한 시민의 연금이 넉넉해 보이지는 않는다. 육아기간 10년을 제외하고 1996년~2019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따냐는 월 250달러 정도의 연금을 받게 될 것이고 아파트 공과금을 내고 나면 약 150달러의 생활비가 남을 것이라 한다.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그녀의 한 여성 지인은 교환수 비슷한 업무와 상품회사의 작은 사무직 등으로 32년간 일했는데, 현재 월 9,000루블(한화는 루블에 곱하기 20을 하고 그보다 약간 적다고 생각하면 된다)의 연금을 받는다는 게 그녀의 전언이다.
 
공항 도착 예정이 새벽 3시 40분이라 첫 대중교통수단이 운행될 때까지 공항에서 버티려던 나의 계획은 따냐의 놀라운 친절 덕분에 변동되었다. 그녀를 마중 나온 아들 싸샤(알렉산드르)가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본인의 승용차로 나를 기차역까지 데려다 준 것이다. 그 꼭두새벽에, 단지 엄마 옆에 앉았던 승객이라는 이유로, 그는 처음 본 한국인을 위해 길을 돌아가며 말했다. “나는 러시아와 북한의 접경 지역에서 6개월간 일했어요.” 북한에서 일할 때 찍은 사진도 보여준 그는 남한도 수차례 방문했고 아내와 제주도에도 갔다고 한다. “북한 사람들은 어떤가요?” “그들은... 말을 조심스럽게 하지요. 경제 형편상... 좀 안타깝습니다.” 접경지역이니 평양과는 큰 차이가 있으리라.
 
따냐, 싸샤 모자와 작별한 새벽 5시경의 블라디보스토크 역 모습. 사진/필자제공
 
여정의 시작
따냐와 싸샤는 내가 기차역의 짐 보관소에 배낭을 맡기는 것까지 살펴보고서야 작별인사를 했다. 그들의 친절이 준 감동은 잊지 못할 것이다. 1993년 1월 이르쿠츠크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갔다가 모스크바로 돌아올 때 3등칸 플라츠카르트에서 며칠을 함께 보낸 러시아인 가족이 지하철 표까지 끊어 내 손에 쥐어주고 나서야 돌아서던 그날을 상기시킨다(너무 피곤해서 택시를 타고 싶었던 나는 그 친절에 차마 말을 못하고 감동으로 표를 받았다).
 
역사(驛舍) 바깥의 시계는 새벽 5시를 가리켰다. 동이 틀 때까지 기차역 안을 둘러보고 날이 서서히 밝아올 무렵 환경미화원이 청소를 하는 거리로 나왔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역사는 꼼꼼히 둘러볼만한 곳이다. 단지 기차역 건물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안에 전시된 극동 지역 철도의 역사가 매우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차역 내 전시관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자.
 
이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었다. 모스크바로 가는 도중 우리는 여러 곳에 멈추고 그곳의 러시아인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기차 안 풍경도 후에 따로 이야기하겠지만 그 전에, 미리 밝혀 둘 것이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3등칸은 몇 년 후 정말 사라지게 되는 걸까? 나는 그에 대한 답변을 이 여정의 중간쯤 한 철도승무원으로부터 듣게 된다.
 
※ 뉴스토마토에서 <박성현의 러시아 재발견> 연재를 시작한다. 이 연재는 1997년 모스크바 대학에서 '철학박사(미학 전공)'를 받았으며, 이후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박성현의 기고로 진행된다. 20~30년 전의 러시아와 현재의 러시아라는 두 차원의 시간 속에서 러시아인들의 삶의 풍경을 관찰하고, 한국 독자가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재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percept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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