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고난의 시기를 보내는 정치인들
입력 : 2019-09-24 06:00:00 수정 : 2019-09-24 06:00:00
한국 정치인들은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여권 내 '잠룡'으로 주목받던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사법부의 심판을 받고 퇴진하는 모양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여비서 성폭행 혐의로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친형 강제입원' 사건 관련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항소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김경수 경남지사 역시 드루킹 사건에 연루돼 재판 중이다. 최근 임명된 조국 법무부 장관도 사모펀드 건으로 사법 조치를 받을지 모르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국 정치인들의 신뢰가 또 한 번 땅에 떨어진 사건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런 일로 국민들은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이보다 더한 일은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감옥살이를 한 전직 대통령도 한 둘이 아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일까.
 
물론 정치인들이 사법적 재판을 받는 것은 한국만의 풍경은 아니다. 요즘 프랑스 정치인들도 수난을 겪고 있다. 이번 달 수사를 받거나 법정에 선 정치인은 다섯 명이나 되니 우리와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건에 연루된 프랑스 정치인들이 한 정파에만 속한 것이 아닌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하다는 것이다. 공화당 소속 빠트릭 발카니(Patrick Balkany) 르발르와 뻬르(Levallois-Perret)시 시장,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 펜 전 대표, 공화국 전진 소속 리샤르 페랑(Richard Ferrand) 국회의장, 불복하는 프랑스의 장 뤽 멜랑숑(Jean-Luc Melenchon) 대표, 중도파 모뎀(Modem) 소속 실비 굴라르(Sylvie Goulard) 전 국방부 장관이 그들이다. 이들의 죄목도 우리 정치인들과 사뭇 다르다. 발카니는 탈세 혐의로, 페랑은 브르타뉴 신용금고에서 위법적으로 이익을 취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멜랑숑은 지난해 10월 당사 본부를 압수수색 당한 후 법정에 출두했다. 멜랑숑은 압수수색을 하고 있는 한 경찰의 면전에 “공화국은 바로 나다”라고 소리를 질러 더욱 문제가 됐다. 사법부는 멜랑숑에게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을 내렸다. 르펜은 FN 대표시절 거짓 일자리를 만들어 700만유로(한화 약 92억원)를 가로챈 혐의로, 굴라르 역시 거짓 일자리를 만들어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언론의 제보로 재판을 받는 중이다. 이렇게 대대적인 수사가 벌어지자 프랑스 언론들은 사법부의 힘이 부쩍 커졌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법부의 권한이 강화됐다기보다 정치인들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팠다는 해석이 맞다는 설도 있다. 사법부가 정치인들에게 매서운 칼날을 들이대기 시작한 계기는 2012년 12월 프랑스를 발칵 뒤집어 놓은 카위작 사건 때문이다. 그 당시 예산장관이었던 제롬 카위작(Jerome Cahuzac)은 스위스 계좌에 비자금 60만유로(한화 약 8억원)를 숨겨두었는데 메디아빠르트의 제보로 수사가 시작돼 진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공세에 직면해 많은 정치인들은 뒤로 몸을 숨기고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라는 이름으로 여론에 의해 가해진 결정들에 섣불리 반론을 제기할 수도 없다. 익명으로 제보된 증거들로 인해 피해가 적지 않다는 불만도 나온다. 마크롱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러한 조치는 높이 평가되고 있다. 다만 시민과 정치인 사이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만약 매번 어떤 사건으로 인해 정치인들에 대한 사법적 조치가 이루어진다면 대혁명기인 1793년의 공포 정치시대처럼 대혼란을 야기할 것이다"라는 염려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내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필연적으로 걸어야 할 길'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필연적으로 걸어야 할 길'이라는 말에 뭔지 모르는 숙연함이 느껴진다. 부작용도 있지만 프랑스 전체를 생각한다면 이 작업은 꼭 필요하다는 말이리라. 또한 사법부의 이러한 조치는 사회정화를 위한 것이지 다른 목적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기운이 빠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길을 수없이 걸어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는 나라가 진동할 정도로 정치인들의 부패를 파헤치고 치욕을 주는 사례가 많았다. 이를 견디지 못한 어떤 정치인들은 목숨까지 끊기도 했다. 그러나 악습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나라는 요동친다. 원인은 무엇일까. 사회정화를 위한 엄정한 수사였다기 보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수사여서 그랬던 건 아닌가.
 
언론도 마찬가지다. 정의를 위해서라기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에게 불리한 사람들에게는 무차별하게 공세를 가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 사회의 정화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정치가 쇄신하려면 정치권도 각성해야 하지만 사법권, 특히 검찰과 언론의 각성이 절대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우리 정치가 부패한 데는 이들의 몫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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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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