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정치인이 갖춰야 할 '인간애'
입력 : 2019-10-01 06:00:00 수정 : 2019-10-01 06:00:00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전 프랑스 대통령이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인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장일치로 국장에 동의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30일을 애도의 날로 정하고 파리 7구 앵발리드(Invalides)에서 시라크 대통령의 장례식을 치렀다. 측근들은 시라크 전 대통령의 시신을 그의 장녀가 잠들어 있는 파리 14구 몽파르나스(Montparnasse)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프랑스 일요신문(Le journal du dimanche)은 지난 29일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제5공화국 대통령이 누구인지 조사해 발표했다. 조사 결과 시라크 전 대통령과 샤를르 드 골 전 대통령이 동률(30%)로 나타났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은 17%로 3위를, 마크롱 현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각각 7%를 얻어 4위를 차지했다. 그 뒤로는 조르주 퐁피두 전 대통령(5%),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3%),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1%) 순이었다.
 
프랑스인들은 왜 시라크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것일까. 가장 먼저, 정치인생 중 고난의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극우세력과 타협하기를 거부했고, 국민통합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다. 또한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에두아르 필리프(Edouard Philippe) 현 수상은 시라크 전 대통령을 이렇게 기억한다. "자크 시라크, 그는 틀림없는 프랑스인이었다. 때로는 패기와 야망, 재기발랄함을 보여줬고, 복잡한 국면에서는 주저하거나 포기하기도 했다."
 
털털한 성격이었던 시라크 전 대통령은 그의 고향 꼬레즈(Correze)에서 '촌 사람들의 친구'로 인정받아 하원의원이 되었고, 약관 34세의 나이로 장관이 됐다. 수상과 파리시장을 각각 세 번 지냈고, 두 개의 정당(RPR와 UMP)을 설립했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프랑스 공화국의 대통령을 두 번 지냈다.
 
대통령으로서 시라크의 주요 업적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Non"이라고 자기의사를 분명히 밝히며 이라크 전쟁에 가담하지 않은 것과, 징병제도를 폐지한 것이다. 또한 유대인의 강제수용에 대한 프랑스의 책임을 인정했고, 기존 7년이었던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바꿨다.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라고 외치면서 환경파괴를 경고했고, 교통사고율을 크게 낮췄다.
 
이러한 업적들도 분명 의미가 있지만 프랑스인들이 시라크 전 대통령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의 자연스럽고 수더분한 인간성 때문이다. 시라크 전 대통령의 절친이자 복심이었던 장-루이 드브레(Jean-Louis Debre) 전 국회의장은 프랑스 엥포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정치인이 그렇듯 시라크는 프랑스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위대한 점이 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프랑스인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이러한 그의 사랑은 위선적이거나 결코 정치적 쇼맨십이 아니었다"라고 회상했다. 드브레 의장은 "한없이 슬프다. 나는 오랫동안 그와 우정, 사랑, 신뢰를 함께 나눴다. 이는 나의 버팀목이었고 내 정치 인생의 일부였다. 그는 과격주의자들을 싫어했고, 인종주의자들이나 외국인 혐오자들을 싫어했다"라고 덧붙였다.
 
결점도 많았고 때론 정치적 스캔들로 위기에 내몰려 비난을 받았던 시라크 전 대통령이었지만 그의 죽음 앞에 찬사가 쏟아지는 이유는 그의 인간성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거짓이 아닌 진실로 고향 사람들과 국민을 사랑했기에 이 진정성이 통한 것이다.
 
이러한 장면을 보니 우리 정치가 더 형편없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국민의 찬사를 받으며 대통령의 권좌에서 내려오거나 무덤에 묻힌 대통령이 없기 때문이다. 어디 대통령만 그러한가.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정치에서 신뢰받고 존경받는 정치인은 그 누구던가. 조국 정국으로 두 달 째 마비된 국정을 보라. 국민에 대한 사랑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자신들의 이득을 얻기 위해 나라야 어찌되든 극단적인 언어로 갈등을 조장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번 정부가 들어설 때 최대 현안을 국민통합으로 삼았건만 이는 온데간데 없다. 이제라도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가 나서서 국민통합을 큰 이슈로 부각시켜 과제를 풀어야 한다. 정쟁에 휘말린 지금의 정국을 바라만 본다면 이건 직무유기다.
 
불완전한 인간인 시라크 대통령이 프랑스인들에게 최고의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인간애와 솔직함 때문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한다. 정치인은 그 무엇보다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 이런 마음이 크면 국민을 분열시키기보다 통합시키기 위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결국 한국 정치인들은 인간애가 너무 크게 결핍돼 있다. 정치는 머리나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어야 한다. 이 정치의 기본을 우리 정치인들은 잘 익히고 행동해야 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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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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