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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국가·장르 경계 넘은 음악…홍대 들썩인 '잔다리 페스타'
첫날 대만 시작으로 세계 각국 119팀 무대에…"음악엔 그 어떤 경계 없어"
28일 세계 음악 종사자들 모인 컨퍼런스…밴드 음악·페스티벌 시장 상황 공유
2019-10-04 18:43:53 2019-10-04 18:43:53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하루를 꼬박 비행기에 앉아 있다가 바로 달려 왔어요. 시차 때문에 조금 힘들긴 하지만 '잔다뤼(잔다리 페스타)'는 멋진 곳이예요."
 
지난달 26일 서울 홍대 인근에 위치한 컨벤트 라이브 펍 앞. 맥주잔을 부딪히던 한 네덜란드 관객이 느닷없이 '고백'을 털어놨다. 암스테르담 LG전자를 다니다 최근 퇴사한 그는 급히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이 곳에 온 참. "잔다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뜨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죠. 올해가 벌써 8회라니 놀라워요!" 잔다리 1회 때 자원봉사단으로 '작은 보탬'을 줬다던 그는 당시 창립 멤버들과 다시 잔을 부딪히며 포옹을 나눴다.
 
지난 2012년 시작된 '잔다리 페스타'는 매년 이 맘 때 홍대를 들썩이는 뮤직페스티벌이다. '잔다리'는 작은 다리란 뜻의 서교동 옛 지명. 국내외 아티스트와 관객, 기획자, 제작사를 잇는 '가교' 역할을 의미한다. 지난달 26~29일 무브홀, 컨벤트 등 8곳에서 치뤄진 올해 행사 역시 예년처럼 전 세계의 '핫'한 밴드들이 대거 참여했다. 유럽, 아시아, 미주 등 20개국에서 119팀이 서로의 음악을 알리고 듣고 교감했다. 세계 음악 산업 관계자들, 관객까지 뒤엉킨 축제에선 모두가 음악을 듣고 맥주를 마시며 친구가 됐다.
 
'잔다리 페스타 2019' 첫 무대에 오른 대만 밴드 '쏘리 유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만·헝가리가 연 '잔다리'…'음악엔 그 어떤 경계 없어'
 
첫날이던 26일 8시, 대만의 라이징 밴드들이 대거 무대에 선 '타이완 비츠(Taiwan Beats)' 직전. 컨벤트는 이미 찬란한 세계 각국의 문화들이 의식과 무의식 사이로 침투 중이었다. 미국, 영국, 중국, 일본, 헝가리…. 세계 각국에서 온 이들이 명함을 주고 받고 잔을 부딪히며 흥을 나눴다. 
 
10분 후, 단숨에 주목을 받은 팀은 첫 무대에 오른 대만 밴드 '쏘리 유스(Sorry Youth)'. 정통 로큰롤 박자에 가까운 드럼 박자와 함께, 블루스와 스카, 전통 대만 민요까지 섞어내는 이들의 현란함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멤버 전원 80년대 중반 태생으로 이들인 10년간 맞춰온 합은, 그들의 꿈에 닿아 있었다. 풀타임 뮤지션을 뛰지 못하는 설움, 그럼에도 꿈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이 섞인 음악들. 
 
대만 특유의 아기자기한 행위 예술이 곁들여져 묘했다. 물고기 탈을 쓴 근육질 남성이 노란 물방울 총을 두 손 높이 치켜들 때 그 꿈의 음악들이 함께 날렸다. 꿈을 꾸는 이들,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쏘리유스, 그 꿈의 음악들.
 
10시경 같은 무대에 오른 '어메이징 쇼(Amazing Show)'는 정말이지 어메이징. 대만 전통 악기 양식을 빌려 손수 제작했다는 '수퍼 파워 로켓'이 거대한 화력을 뿜으며 광란의 무대를 열었다. 하드록과 펑크, 포크가 뒤섞인 이들의 음악은 꼭 혀가 마비될 정도로 얼얼한 마라(麻辣) 같은 느낌. 흡사 아코디언 같기도 한 생김새의 '수퍼 파워 로켓'은 심장이 요동칠 정도로 BPM을 높이며 질주했다. 대만 전통 향이 강한 음색이 극강으로 치달을 때 곳곳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대만 밴드 '어메이징 쇼'를 보러 온 수오 찬씨와 렁 페이씨.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무대에서 전곡을 따라 부르던 수오 찬(24)씨는 "어메이징 쇼는 대만에서도 꽤나 잘 알려진 팀"이라며 "대만어로 '쉔파우(수퍼파워로켓)'라 부르는 저 악기에는 대만의 전통악기 요소들이 들어가 있다. 디스코처럼 질주하는 대만 풍 묘한 매력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함께 온 렁 페이(24)씨는 "한국 밴드 중 혁오를 좋아한다"며 "이번 기회에 다른 좋은 한국 팀들 무대를 많이 보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10시반부터 컨벤트에서 북쪽으로 370m 떨어진 무브홀에서는 헝가리 뮤지션들의 쇼케이스 '핫츠 나잇(HOTS NIGHT)'이 열리고 있었다. 헝가리 음악 수출기관 'HOTS'가 엮은 헝가리 핫한 밴드 4팀의 무대. 한국-헝가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는 집시, 발칸, 록, 사이키델릭, 재즈, 팝 등 다채로운 동유럽 음악들이 무대 위 올려졌다.
 
2011년 결성해 유럽풍 재즈, 블루스로 미 전역 콘테스트 상을 휩쓴 헝가리 게베르트 울버트 프로젝트는 "개막 전날 다른 카페에서 이미 한 차례 공연을 했는데 분위기가 좋았고 오늘도 반응이 좋은 것 같다"며 한국어로 '감사하다'고 했다. 부다페스트 출신의 밴드 매리 팝키즈가 무대에 설 땐 8인 연주자들의 규모 만으로 압도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소울풀한 팝 음악에 몸을 늘어뜨리며 춤을 추는 이들의 장단에 공연장 일대에 '춤판'이 벌어졌다.
 
스피드 포크와 프릭 펑크를 선보이는 부다페스트 출신 월드뮤직 밴드 보헤미안 벳야스, 록부터 아프로 팝 등을 아우르는 프랜 팔로마까지 이날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파티는 계속됐다.
 
헝가리 밴드 게베르트 울버트 프로젝트.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한국 교환학생을 잠시 왔다는 헝가리 출신의 레이첼 브루츠는 "검색해보다 헝가리 팀들이 공연을 연다길래 반가운 마음에 이끌리듯 왔다"며 "다양한 전 세계 음악이 홍대에 널려 있어 꼭 페스티벌에 온 기분이다. 계획이 없었는데 내일도 와야겠다"고 했다.
 
영국 브리스톨에서 왔다는 60대의 에일씨는 "음악엔 그 어떠한 경계도 없다"며 "나는 모타운을 좋아하고, 알앤비를 좋아하지만 록도 즐길 줄 안다"며 "오늘 대만음악도 언어는 전혀 모르지만 너무나 흥겨웠다"고 했다. 잠시 뒤 그가 술잔을 건네며 안내시켜 준 곳으로 따라가니 영국의 신진 펑크밴드 아이디스트로이 멤버들이 있었다. 에일씨는 "이들은 내 딸들"이라며 "기사를 쓰려면 사진이 필요할테니 마음껏 찍어도 좋다"고 했다.
 
에일씨(오른쪽)과 그의 딸들로 구성된 밴드 아이디스트로이(IDESTROY).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음악, 페스티벌…국제 정보 교류의 '장' 
 
국가, 장르 경계가 없는 음악의 힘은 나흘 내내 홍대를 들썩였다. 28일 서교동 인근에 위치한 호텔 RYSE에서는 낮 12시부터 오후 5시20분까지 세계 각국 음악 관계자들이 모이는 릴레이 컨퍼런스가 열렸다. 전 세계 공공·민간기관의 음악 국제적 수출 대한 정보 교류, '글로벌 음악 도시'를 위한 서울과 벤쿠버, 취리히 간 정책 비교, 지난 20년 동안의 한국 음악 페스티벌 역사 정리 등에 관한 주제가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됐다.
 
벤자민 데멜르메스터 프랑스 르 브레우 엑스포트의 프로젝트 매니저는 "프랑스에서는 세계 각국의 대사관과 협업해 프랑스의 인디 아티스트들 프로모션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또 민간기업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레코드 음반사나 레이블에 전달하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투자한 민간기업들은 정부 측의 세금 환급 등의 혜택을 받는다"고 자국의 밴드 음악 시장 활성화 대책을 공유했다.
 
에릭 리앙 대만 유니크 원 엔터테인먼트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세계적으로 팝 뮤직이 인기가 많지만 대만에서는 밴드 음악이 메인스트림이라 봐도 좋을 정도로 성장해 있다"며 "잔다리 같은 기회가 많다면 대만 내 인기 있는 아티스트들이 해외로 알려지고, 그 반대도 성립해 밴드 음악 전체가 유기적으로 성장하는 효과가 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28일 서교동 인근 호텔 RYSE에서 열린 컨퍼런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일본인이지만 스위스 취리히에서 음악 행사를 기획하는 카키타니 아유미 뮤직 프로듀서는 서로 다른 국가가 융합하는 행사 'Match & Fuse'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세계 각국 프로듀서들 간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자 했다"며 "공연과 교육 기회를 바탕으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도록 돕고자 노력 중이다. 앞으로 세계 각 국가별 도시의 음악인들을 모아 보고 싶다"고 했다.
 
20년 간의 뮤직페스티벌 역사를 이야기하는 세션에서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전신인 트라이포트 페스티벌부터 지역 연계, 장르 뮤직의 대중화를 시도한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최근 부상 중인 대형 EDM 페스티벌 등의 사례가 소개됐다. 
 
대형 해외 페스티벌 브랜드를 라이센싱하는 최근 음악계 흐름과 관련 록 페스티벌도 가능하냐 물은 한 외국 관계자의 질문에 박정용 벨로주 대표는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를 떠나 니즈가 없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라며 "라이센싱보단 DMZ 피스트레인 같이 특정 가치를 지향한다면 브랜드를 협업하는 선에선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얘기했다.
 
임희윤 동아일보 기자는 "50주년을 맞은 '우드스톡'마저 취소될 정도로 올해는 대형 야외페스티벌이 분기점이 되는 상징적인 해"라며 "그럼에도 올해 한국에선 'DMZ 피스트레인'이란 새로운 가능성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최근 정부의 DMZ 평화구상에 따라 향후 DMZ를 베이스로 한 여러 시도가 나올 것 같다. 코첼라나 프리마 베라 등 메이저 페스티벌이 이런 한국적 바이브를 고려한다면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고 예상했다.
 
28일 서교동 인근 호텔 RYSE에서 열린 '한국 음악 페스티벌 20년, 그 기묘한 이야기'.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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