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인터뷰)‘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속 전도연이 놀라운 이유
“나에 대한 칭찬, 어느 순간부터 무서워…내게 무게감 원해”
“흥미롭고 특이한 구조의 영화, 블랙 코미디 예상했는데…”
2020-02-17 00:00:00 2020-02-17 09:09:29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전도연이다. 그의 이름 석 자라면 비교 불가란 단어 외에는 달리 설명이 불가능하다. ‘칸의 여왕’이란 수식어도 이젠 진부하다. 그는 흐름을 바꾸고, 바뀌어진 흐름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법을 안다. 그의 가장 깊은 내공은 주변까지 모든 것의 흐름을 변화시킨단 점이다. 자신만이 독보적이라고 소리치는 스타일이 아니다. 전체의 흐름과 반전을 주면서 모든 것을 그 흐름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은 독보적이다. 이건 보통 내공으론 불가능한 영역이다. ‘전도연’이란 최절정의 고수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슬’ 속 전도연은 이 모든 것을 그저 해냈을 뿐이다. 하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한 게 아니다. 그는 그저 했을 뿐이다. 영화 시작 30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그는 등장한다. 그의 등장만으로 압도적이고, 또 압도적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가 전도연이 이 영화 출연을 결정한 뒤 내린 결론이란다. 뭘 더 했다면 도대체 어떤 힘을 느끼게 했을까. 이번 영화에서도 그는 탄성을 터트리게 만드는 전도연의 악역을 그려냈다. 전무후무다.
 
배우 전도연.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최근 들어 출연 영화가 뜸했다. 지난 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삶을 그린 ‘생일’로 대한민국의 눈물을 폭발시켰다. 같은 해 연말 개봉한 재난 블록버스터 ‘백두산’에선 눈을 의심케 하는 깜짝 출연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단 몇 장면이었지만 그 존재감은 ‘백두산 폭발급’이었다. 전도연의 연기를 갈망해 온 그의 팬들 입장에선 너무 즐거웠다. 이번 영화는 그가 선보이는 제대로 된 악역의 첫 번째다.
 
“’연희’가 잔혹한 면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미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사람에겐 여러가지 모습이 있듯이 연희에게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죠. 글쎄요. 우리 영화 뿐만 아니라 어떤 영화에서든 악녀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미우면 끝까지 미워야 한다. 그런데 인간에겐 너무 많은 모습이 있잖아요. 제 눈엔 연희가 마냥 미워만 해야 할 존재일까 싶었죠.”
 
언론 시사회 이후 이 영화에 대한 찬사는 쏟아졌다. 무엇보다 전도연의 존재감과 그의 연기에 ‘명불허전’이란 찬사와 박수가 집중됐다. 실제로 그의 등장과 함께 영화 전체의 톤 앤 매너가 완벽하게 달라지고 분위기가 반전되는 흐름을 보였다. 등장 인물들이 많고 각각의 사연이 전체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이지만 전도연이 연기한 ‘연희’가 단연코 압권이었다.
 
배우 전도연.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사실 그런 분위기와 칭찬이 전 좀 무서워요. 이게 영화에 도움이 되는 걸까 싶어요. 얼마 전 ‘백두산’에서도 정말 몇 장면 안 나왔잖아요. 그런데 그게 ‘너무 좋다’ ‘깜짝 놀랐다’고 반응해 주시고. 어느 순간부터 모든 분들이 제게 어떤 무게감을 원하시는 것 같아요. 호평도 좋죠. 그런데 제가 너무 부각된다면, 그리고 ‘뭐가 더 있겠지’란 기대감이 쌓인다면 그게 전체에 도움이 될까 걱정이 되요.”
 
그래서였을까. 전도연은 이번 영화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자’란 자신과의 약속을 하나 만들어 냈단다. 그건 작품에 허투루 임하자는 것이 아니다. 장르적으로 워낙 뚜렷한 색채가 드러난 이야기다. 더욱이 시나리오에 각각의 인물에 대한 성격과 색깔 역시 완벽하게 설계가 돼 있었단다. 그 안에 자신이 무얼 더 그리고 덧입힌다면 구조적으로 문제가 생길 것이라 봤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고.
 
“‘전도연이라서 강렬했다’는 사실 너무 과찬이세요. 누가 했어도 강렬했을 배역이에요. 시나리오 자체가 워낙 강했으니. 더욱이 그 안에서 ‘연희’가 가장 뚜렷했죠. 등장부터 파격인데 제가 뭘 하면 그 임팩트가 오히려 줄 것 같았죠.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시작했어요. 솔직히 영화를 보고 놀랐어요. ‘내가 이런 영화를 찍었나’ 싶었죠. 내 생각과는 조금 달랐거든요. 그런데 언론시사회에서 두 번째 보고 감독님이 뭘 그리고 싶었는지 알겠더라고요.”
 
배우 전도연.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그는 자신의 예상과 달랐다는 점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게 어떤 지점이었을까. 전도연의 상대역이던 배우 정우성도 언급했던 지점이다. 바로 블랙 코미디였다. 등장 인물들이 워낙 많고 그들의 얘기가 하나하나 숨을 쉬면서 따로 움직인다. 각각의 얘기들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세밀하게 연결이 돼 있었다. 그 얘기들 하나하나가 현실의 아이러니를 담고 있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굉장히 독특했죠. 사실 이게 영화로 될까 싶을 정도로 구조가 특이했죠. 특히나 전 느와르나 범죄물보단 블랙 코미디적인 면이 강하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시나리오 봤을 때 정말 많이 웃었는데, 처음 편집본에서 정말 많이 웃었거든요. 물론 편집본에는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가 거의 안보였죠. ‘어 이상하다’ 싶었어요. 사실 첫 촬영도 제가 중간부터 등장해서 그렇게 맞춰서 찍었는데 많이 낯설었죠. 결과적으로 맞춰가면서 찍다 보니 너무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이 영화에서 가장 관객들의 기대를 갖게 하는 호흡은 전도연과 정우성이다. 두 사람은 영화에서 연인 사이다. 물론 보통의 연인 사이는 아니다. 그들은 데뷔 30년 차에 가까운 베테랑들이지만 이번 영화 직전까지 단 한 작품에서도 만난 적이 없었다. 묘한 인연이었다며 웃는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감이 높았다. 전도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배우 전도연.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사적으론 가끔 씩 봐왔던 사이에요. 전혀 모르는 사이는 아니죠. 사실 첫 촬영에서 너무 당황했어요. 우성씨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태영’을 연기해서(웃음). 정말 아쉬운 건 우성씨와 제가 연인 사이로 등장하지만 같이 나오는 장면이 몇 장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내가 정우성과 연기를 하면 저런 모습이고, 이런 느낌이었구나’를 알게 될 때쯤 끝이 나버렸어요. 저희 둘이 ‘연희와 태영의 얘기만으로도 영화 하나가 나올 것 같다’고 얘기를 한 적이 있었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결코 쉽지 않은 영화였다. 구조적으로 정밀하고 정확한 준비가 필요했다. 연출력은 당연히 기본이었다. 이 영화를 데뷔 감독이 맡았단 점이 놀라울 뿐이었다. 오랜만에 영화를 하는 입장에서 데뷔 감독과의 작업 그리고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형태의 영화가 낯설게 느껴질 법한 전도연이다. 그의 생각은 이랬다.
 
배우 전도연.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좋은 작품이라면 신인 감독이란 점은 고려 대상이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사실 이번 영화가 데뷔 감독이란 점에 좀 우려를 했죠. 너무 구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 저렇게 멋지게 만들어 내셨으니. 오래 전부터 장르의 다양성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워요. 봉준호 감독님 박찬욱 감독님의 얘기는 대중들이 많이 들어 줄 준비가 돼 있잖아요. 그런데 전 신인 감독님들과 오래 전부터 작업 많이 해왔어요. 누군가 ‘신인 감독의 얘기를 전도연이 해주면 되잖아’라고 하셨어요. 이분들의 얘기도 이렇게 재미있다. 이걸 제가 좀 전달해 드리고 싶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