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정말 낯이 익다. 사실 이 배우는 낯만 익은 건 아니다. 이름도 알려져 있다. 배우 신정근을 모를 리는 없다. 아니 모를 수도 있다. 대부분 모르는 대중들은 ‘어디서 봤는데’ ‘드라마 어디에 나왔었는데’라고 기억을 한다. 연극 무대에서 탄탄한 내공을 쌓은 그는 드라마와 영화로 넘어온 뒤 가리지 않고 작품을 소화했다. 주로 코믹한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난 지금까지 코미디를 한 적이 없다’고 단언한다. 이건 그의 연기적 색깔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그가 작품 속에서 존재해야 할 이유를 설명한다. 가볍고 조금은 쉬어갈 수 있고, 때로는 인간미 넘치는 페이소스 짙은 배역이 대부분 그의 역할이었고 그의 몫이었다. 그래서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속 신정근의 모습은 정말 낯설었다. 정우성 곽도원 투톱을 밀어내고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뇌리에 신정근을 제대로 박아 버린 그의 연기와 존재감은 놀라웠다. 이건 신정근의 존재감이거나 연출을 맡은 양우석 감독의 ‘신의 한 수’ 둘 중 하나였다. 영화를 본다면 두 사람의 공이 절반씩 이란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지만 말이다.
배우 신정근.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가 개봉한 이후 최근 뉴스토마토와 만난 신정근은 낯설고 묘하다며 웃는다. 올해 54세인 그는 배우를 시작한 이후 이처럼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 본 게 처음이라며 기분 좋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점쟁이가 ‘50세가 넘으면 잘 될 것이다’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며 ‘그 점쟁이 정말 용하다’고 농담 아닌 농담까지 한다. 직접 만난 신정근은 ‘강철비2’의 부함장이라기 보단 익히 알고 있던 유쾌하고 재미있는 신정근 그대로였다.
“이 정도로 반응이 뜨거울지는 전혀 예상을 못했죠. 아니 그걸 할 수가 있었겠어요(웃음). 물론 배역을 보고선 ‘정말 나한테 온 배역이 맞냐’고 되묻긴 했어요. 남자라면 이런 배역을 왜 마다하겠어요. 정우성 배우가 소속사 대표인데, 감독님에게 부함장 역할로 딱 맞는 배우가 있다고 절 추천했다고 들었어요. 제가 분장을 전혀 안 해도 북한군 모습이 나온다나 뭐라나(웃음).”
정우성의 추천으로 ‘강철비2’에 합류했다고 하지만 사실 결정권은 양우석 감독의 몫이었다. 그리고 양 감독도 마음 속으로 신정근을 ‘부함장’에 점 찍어 두고 있었다고. 신정근과 만난 양 감독도 ‘선배님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전했단다. 그래서 현장에서 누구보다 더 열심히 임했다고. 그럼에도 정우성이 걱정을 했는지 자신의 연기를 연신 지켜보며 감시(?)를 했다며 웃는다.
배우 신정근.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뭐 소속사 대표이니 걱정이 되긴 했나 보죠. 하하하. 글쎄, 저한테 ‘한국 배우 중에 형이 제일 북쪽 얼굴이 가깝다’고 하면서 절 추천한 게 아닐까 싶긴 해요. 그래도 소속사 대표가 추천했으니 현장에서 다른 작품보다 더 신경 쓰고 했죠. 그럼에도 뭐가 걱정이 되는지 자꾸 내 촬영 때 감시를 하더라고요. 그러다 잠수함에서 화재가 난 장면을 찍을 때 이후론 뭔가 내려 놨던 것 같아요. 아니 본인 연기가 걱정하지 하하하.”
사람 좋고 또 유머스러한 성격 탓에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부함장’ 역할에 조금이라도 엇나가지 않을까 싶었던 정우성의 걱정이었을 듯싶다. 하지만 신정근은 이미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을 때로 굵었던 베테랑이다. 특히나 지금까지 가볍고 코믹한 이미지의 배역만 맡았기에 그의 배역 준비를 잘 모르는 대중들은 오히려 ‘부함장’을 오해할 수도 있었다. 신정근은 이런 것들을 감안했다.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
“우선 제가 나오는 부분은 잠수함 세트뿐이에요. 근데 뭐 기사도 많이 나왔으니 다들 아시겠지만 실제 잠수함을 고스란히 재현했어요. 저희 조언을 해주시던 실제 잠수함 함장님께서 ‘이거 진짜 잠수함이다’고 하셨으니. 그 안에서 몇 번이고 걸어 다녀보고, 식판도 들고 다녀보고 동선 체크를 꼼꼼히 했죠. 복도 끝에서 반대편을 바라보기도 하고. 부함장으로 가기 위해 사전에 저 스스로를 그 안에 자꾸 밀어 넣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잠수함 군인들만 쓰는 명칭도 정말 어렵더라고요.”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미 여러 번 얘기했지만 ‘강철비2’에서 신정근은 가장 무게감 있고 진중한 역할이었다. 그가 전작들에서 보여 준 모습과는 전혀 다른 지점이었다. 그래서 일부 관객들은 ‘이쯤에서 웃겨주겠지’라고 기대감을 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연기한 ‘부함장’은 끝까지 군인으로서의 강직함을 지키고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 역시 이런 관객들의 기대감을 조금은 예상했다고 웃는다.
“글쎄요(웃음) 난 지금까지 웃기려고 연기를 한 적이 없는데 그걸 재미있게 봐주셨으니 뭐. 하하하. 이번 영화에선 그런 지점을 싹 빼려고 노력했죠. 우직함, 딱 그것 하나만 담아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애드리브도 한 번도 안했어요. 우리가 보통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하잖아요. 나와 내 가족이 평안하고 나라가 평안해야 모든 게 평안하다는. 영화에선 잠수함 속 사병들을 구해야 한다. 딱 그 일념 하나였어요.”
그런 우직함은 영화 마지막 대한민국 대통령을 연기한 정우성과의 케미에서 빛을 발한다. 이미 공적으론 소속사 대표와 배우다. 물론 사적으론 친한 선후배다. 낯가림 없는 신정근의 털털함은 그를 ‘아티스트 컴퍼니’란 회사로 이끈 원동력이기도 하다. 평소 신정근의 진정성을 눈여겨 본 정우성이 그를 영입하는 데 큰 힘을 낸 것은 말 안 해도 알 만한 사실이다.
배우 신정근.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우성 배우하고 친분이 사실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됐죠. 그리고 현장에서도 우성 배우와 연석씨 그리고 감독님이랑 한잔씩 하면서 나눈 대화가 많이 도움이 됐어요. 연석씨도 참 털털하고 예쁘고. 한 번은 우성 배우하고 촬영을 하는데, 우성 배우가 날 지긋하게 바라보는 데, 순간 대사를 까먹을 뻔했어요. 뭔 남자가 그리 ‘스윗’하게 날 쳐다보는지. 하하하.”
영화가 흥행 중이고, 신정근이란 이름이 포털 사이트에 연이어 검색 키워드로 뜨면서 본인도 연기를 처음 한 이후 처음 겪는 관심이 얼떨떨하단다. 특히 그의 두 딸 반응이 가장 궁금했다. 평소에도 그냥 아빠는 ‘연기를 하는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정우성과 함께 하는 영화에서 정우성을 능가하는 존재감으로 급부상한 아빠의 모습에 어떤 반응일지 궁금했다.
배우 신정근.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우리 큰 애는 아직 영화를 봤는지 모르겠어요. 큰 애가 날 안 닮아서 공부는 곧잘 하는 거 같아요. 하하하. 와이프는 가족 시사회를 본 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나보고 ‘악수합시다’ 그러더라고요(웃음). 작은 딸은 워낙 천방지축인데 영화를 보고 오니 ‘엄마 아빠가 주인공이었어? 그런데 아빠랑 정우성이랑 사귀던데’이래서 참 많이 웃었어요. 이 영화가 가족 들에게 연기하는 직업 가진 아빠가 아닌 우리 아빠가 ‘배우 신정근’이란 걸 자랑스럽게 해준 것 같아서 기분 아주 좋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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