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프랑스-독일의 대담한 화해
입력 : 2019-07-23 06:00:00 수정 : 2019-07-23 06:00:00
일본을 두고 흔히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표현한다. 요즘 한일 양국의 관계를 보면 이 말이 들어맞는다. 아베 내각의 사실상 경제보복 조치로 한일 양국이 극도로 멀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정당하지 못한 일본의 행위에 대항하기 위해 한국 국민들은 일본 제품을 보이콧하고, 일본에 가지 말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일본의 보복 조치는 우리에게만 손실을 주는 게 아니라 세계경제와 자국에게도 큰 손실이다. 경제대국인 일본의 이러한 처사는 안타깝다 못해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긴장관계를 일본 탓으로만 돌리고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다. 이번 기회에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근본 대책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세계 역사를 보면 이웃 나라와 전쟁을 벌였거나 지금도 긴장관계에 있는 나라가 한 둘이 아니다. 프랑스도 영국과 혹독한 백년전쟁을 치렀고 지금도 그 앙금이 남아있다. 독일과는 어떠한가. 여러 번의 전쟁을 치렀고, 그 중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는 프랑스 파리까지 점령했다. 이 참혹한 역사는 프랑스와 독일을 원수 관계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오늘날 우리와 달리 평화적으로, 그리고 신사적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생활한다. 여러 번의 전쟁을 치르고도 양국이 이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위대한 지도자들이 나서서 평화협정을 맺고 이를 잘 지켜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독일의 우호(Amitie franco-allemande)'는 2차 세계대전(프랑스와 독일의 3번째 갈등) 후에 생겨난 프랑스와 독일의 외교개념이다. 국민들 사이에 퍼져있던 원한을 종결하고, 새로운 전쟁을 피하기 위해 두 나라가 화해하려는 노력의 시발점이었다. 프랑스-독일 우호관계는 유럽연합 구성과 병행해 발전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단짝이 되어 유럽연합 건설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63년 엘리제 조약은 이 상징적 화해를 공식화했다. 샤를르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콘라드 아데나워(Konrad Adenauer) 서독 총리와 엘리제 조약을 체결하고 두 나라를 협력 관계로 만들었다. 지금 프랑스와 독일의 수많은 마을, 도시, 학교, 대학들은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청소년을 위한 프랑스-독일 사무국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상호교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1997년 양국이 서명한 바이마르협정은 프랑스와 독일 대학의 상호협력을 지원한다. 또한 양국 학생들이 수업을 나누어 받는 기회를 제공하고 연구자들도 상호협력 하여 지식이나 노하우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노력은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된다. 2014년 8월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1차 세계대전 100주년 기념식에서 "의지는 언제나 운명을 넘어선다"고 천명하며 프랑스-독일의 우호와 화해가 세계평화의 귀감이 되길 호소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요하임 가우크(Joachim Gauck) 독일 대통령과 함께 병사들이 희생된 알자스의 아르만스윌러콥프(Hartmannswillerkopf)에서 기념식을 거행했다. 알자스 평원을 차지하기 위해 956미터 높이의 바위산 봉우리를 놓고 전투를 벌이던 프랑스와 독일 병사 3만 명이 죽은 곳이다. 두 대통령은 2013년에도 1944년 6월 독일군이 프랑스 리모주 주민을 대량 학살한 오라두르 쉬르 글란(Oradour-sur-Glane)에서 추모제를 지냈다. 추모제가 진행되는 동안 올랑드 대통령과 가우크 대통령은 여러 차례 손을 잡았다. 국립기념관 지하 예배당에서도 이들은 뜨거운 포옹을 한참동안 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대담한 화해를 가져온 프랑스와 독일의 우정은 세계의 귀감이자 힘이고, 특히 평화와 인권이 무시당하는 곳에서 귀감이 된다"며 우크라이나, 이라크 내 기독교인, 나이지리아 여성들을 상기했다. 두 대통령은 전쟁을 물리치고 유럽을 민주적으로 통일하는 유럽 건설이야말로 "특별한 모험"임을 강조했다.
 
아르만스윌러콥프에서 올랑드 대통령과 가우크 대통령은 기념제를 지내고 프랑스, 독일 청소년 100여명을 만났다. 그리고 이들은 한 농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양국 병사의 우정을 그린 프랑수아 트뤼포(Francois Truffaut) 감독의 영화 쥘르 에 짐(Jules et Jim)을 관람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지난 1월22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엘리제 조약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액스 라 샤펠 조약(traite d'Aix-la-Chapelle)에 서명했다.
 
이처럼 숙적인 두 나라가 대담한 화해를 통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것은 일관된 외교정책과 이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다지는 만남이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교류를 통해 미래세대 만큼은 원한이 아닌 우정이 싹트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어른들의 배려 또한 빼 놓을 수 없다. 한일관계가 최악인 지금 ‘배려’라는 단어는 어쩌면 사치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공존공영하기 위해서는 적대보다 우호적 비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프랑스와 독일 모델을 참고하여 한일관계를 풀어나가는 지혜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최한영

정치권 이모저모를 소개합니다

  • 뉴스카페
  • email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