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계약대출 상환 유예가 저출산 대책?
2025-10-16 14:38:05 2025-10-16 16:53:36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금융당국과 보험업권이 내년 4월 도입을 목표로 보험료 할인, 납입 유예, 대출 상환 유예를 합니다. 당국은 출산·육아 가정의 부담을 덜 수 있다며 '저출산 지원 3종 세트'로 명명했는데요. 이 정책이 저출산 대책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오히려 금융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뒤따릅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16일 서울 종로구 손해보험협회에서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및 20개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과 취임 후 첫 간담회를 열고 이러한 내용의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김철주 생명보험협회장, 이병래 손해보험협회장, 주요 생·손보사 CEO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보험산업은 국민의 건강과 노후를 지키는 사회 안전망이자 자본 형성의 근간"이라며 "단기성과 경쟁 대신 장기적 시계와 신뢰를 중심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보험산업이 장기 운용 수익을 기반으로 생산적 금융과 신뢰 금융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보험업권이 출산·육아 가구의 부담을 덜기 위해 어린이보험 보험료 할인, 보험료 납입 유예, 보험계약대출 상환 유예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저출산 지원 3종 세트'는 사망보험금 유동화, 지방자치단체 상생 상품에 이어 보험업계가 추진하는 세 번째 국민 체감형 지원 상품입니다. 
 
"빚 안 갚아도 되니 애 낳으라?"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 회의적 시각이 나옵니다. 이번 '3종 세트'의 핵심은 출산 또는 육아휴직 중인 보험가입자에게 △최대 1년간 보험료 납입을 미루게 하고 △보험계약대출 상환도 유예(최대 1년, 무이자)해주며 △어린이보험 신규 가입 시 보험료를 할인하는 제도입니다. 
 
보험계약대출은 보험 가입자가 자신의 해약 환급금을 담보로 받는 개인 대출입니다. 금융당국이 이를 육아기 가계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으로 제시했지만, 상환 유예는 "출산하면 일정 기간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 우려가 제기됩니다. 
 
보험료 납입 유예나 대출 상환 유예가 '저출산 대책'으로 연결된다는 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출산 가정의 일시적 부담을 덜겠다는 명분이지만, 저출산 해법이 결국 '빚을 당겨 쓰고 갚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정책이 아니라 복지정책을 금융권에 떠넘겼다는 비판도 적잖습니다. 
 
유예기간 이자가 계속 쌓이거나, 유예 종료 후 상환 압박이 몰리면 오히려 출산 가정의 부담이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출산 지원은 복지정책의 영역이지, 보험사의 신용 리스크 관리 영역이 아니다"며 "보험계약대출 상환 유예는 금융상품 본질과도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출산 장려책이 아닌 채무유예제도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결국 보험사가 이자 수익을 포기하고 대출채권의 연체 위험을 떠안게 되는 구조가 되기 때문입니다. 출산율 제고라는 명분 아래 신용 질서를 흔들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됩니다. 결국 보험사의 건전성은 물론 금융 윤리에도 역행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3종 세트 중 어린이보험료 할인은 그나마 합리적인 대책으로 평가됩니다. 출산 직후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보험료 할인 폭이 미미하면 실질적인 유인책이 되긴 어렵다는 분석입니다. 할인분 역시 보험사가 부담해야 하므로, 전체 보험료 인상 요인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해당 방안은 정부가 재정 지출 없이 출산 부담 완화라는 정책성과를 홍보할 수 있지만, 실제 비용은 보험사 몫으로 귀결됩니다. 보험계약대출은 원리금 상환이 연체되면 곧바로 해약 환급금에서 차감되는 구조입니다. 유예기간이 늘어날수록 보험사 부채 리스크는 커지고,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험료 인하나 상환 유예는 재무적 손실로 직결되는 구조인데, 당국이 상생을 강요하면서 사실상 민간자본으로 복지를 실현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당국 '관치식 상생'…타 업권에도 부담 지우기
 
금융당국이 '상생금융'이라는 명분으로 그간 타 업권에도 비슷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우려는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은행권에는 취약차주 대출금리 인하, 이자 상환 유예 프로그램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카드사에는 영세 가맹점 수수료 인하, 저축은행에는 중금리 대출 확대, 금융지주사에는 청년·서민 맞춤 대출 확대를 요구해왔습니다. 각 업권마다 정부 정책의 부담을 떠안은 채 수익성 악화와 자본적정성 저하를 감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는 보험업계의 생산적 금융 전환을 위한 제도 개편 방안도 논의됐습니다. 금융당국은 보험 건전성 관리 방안 중 하나로 손해율 등 계리 가정을 구체화해 K-ICS(신지급여력제도) 비율의 비교 가능성을 높이고, 기본자본 비율 규제 방안을 연내 마련키로 했습니다. 
 
또 최종관찰만기(30년) 확대를 2035년까지 10년에 걸쳐 추진해 장기금리 변동에 대한 리스크 완화를 유도할 방침입니다. 금융위는 보험 부채 평가 시 적용되는 할인율을 현실화하고, 자산·부채 만기 불일치를 줄이기 위한 듀레이션 규제 도입을 추진할 방침입니다. 이 위원장은 "시장 환경이 변화된 상황 등을 감안해 최종관찰만기 확대를 2035년까지 10년에 걸쳐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위원장은 "자본의 양뿐만 아니라 자본의 질을 관리할 수 있도록 기본자본 비율 규제도 연내 마련하겠다"며 "경영실태평가에 듀레이션 갭 지표를 신설해 금리 변동에 취약한 보험사 체질 개선을 유도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보험사가 단순히 자본의 양이 아니라 질을 관리해야 한다"며 "해약 환급금 준비금 적립 방식 개선 등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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