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무비게이션)‘이터널스’, 마블 과욕이 만든 MCU 최대 악수(惡手)
이미 완성된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변화와 진일보 노린 선택
존재 가치·의미 파고든 클로이 자오 감독, 마블과 ‘잘못된 만남’
2021-11-02 00:00:01 2021-11-02 07:49:3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 정도면 끔찍한 정석이다. ‘정석이라 해서 올바른 것이라 한다면 그것도 착각이다. ‘마블은 마블스러웠기에 모두가 열광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마블이 그저 오락으로만 치부된 것은 아니다. 오락 안에서 메시지와 현실이 고민하는 지점을 적절히 녹여내 왔다. 메시지와 오락의 줄타기를 가장 적절히 조율해왔던 게 마블이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이고 마블이 지닐 수 있던 최고 흥행 잠재력이었다. 하지만 마블의 이런 유의미적 자세는 공교롭게도 페이즈4’를 여는 새로운 시작에서 완벽히 무너진다. 굳이 자신의 정체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해도 마블의 영화적 세계관인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는 이미 완성형이다. 페이즈1부터 페이즈3까지 이어진 마블 서사를 이끌어 온 연출자들을 되새겨 보면 답은 간단하다. 마블은 그 자체를 인정해야만 가능한 설계자만을 받아 들여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터널스와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쥔 중국계 여성 감독 클로이 자오는 완벽하게 잘못된 만남이다. 이들 만남은 양측 모두에게 상당기간 치유 불가능한 치명타를 안겨줄 것 같다.
 
 
 
이터널스는 인종과 성별 나이 나아가 다양성까지 추구하게 된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든 히어로 무비다. 영원 불멸의 삶을 사는 그들에게서 마블은 존재 그 자체로서의 가치와 올바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연출을 맡은 클로이 자오가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노매드랜드에서 선보인 작법이다. ‘그 자리에 있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그 의미 역시 그 자체로 의미란 메시지였다. 중국계 이민자 출신인 감독 자신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던 대화법이다. 히어로 장르 진일보를 마블 측은 클로이 자오를 통해 노려봤다고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장르와 작법(감독의 연출)은 분명한 연결고리다. 마블의 이터널스페이즈4’를 열어야 하는 도입부이자 거대한 떡밥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 클로이 자오의 이터널스는 그 자체가 온전히 메시지로만 이뤄져 있다.
 
영화 '이터널스'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후 마블은 근원적 문제로 시선을 돌린다. 시작으로 돌린단 의미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확장의 개념이다. 여기서 시작은 우주를 의미하고 그 우주를 만들어 낸 근원적 존재인 셀레스티얼을 등장시킨다. 셀레스티얼은 세상을 창조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터널스를 만들었다. 그들은 지적생명체를 죽이는 데비안츠로부터 지구를 지키란 명령을 이터널스에게 내린다. 지구에 온 이터널스는 인류가 등장한 시기부터 인류와 함께 존재해 왔다. 그들은 인류 역사의 변곡점에 항상 존재해 왔다. 하지만 그들은 인류의 역사에 개입하지 않는다. 인류의 자발적 진화를 위한 셀레스티얼의 명령 때문이다. 타노스가 핑거스냅으로 전 우주의 생명체 절반을 소멸시킨 인피니티 워엔드 게임에서도 등장하지 않던 이유다. 그들 존재는 데비안츠와의 대결에서만이다.
 
영화 '이터널스'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이렇게 인류와 함께 무려 7000년 세월을 지내 온 10명의 이터널스는 세월의 흐름 속에 인간의 감정과 삶에 동화되면서 각자 뿔뿔이 흩어진다. 인류를 위협하던 데비안츠도 소멸됐다. 하지만 소멸된 것으로 확신했던 데비안츠가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이터널스와 데비안츠에 대한 숨겨진 비밀도 드러난다.
 
이터널스그 자체가 강조한 올바름은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화두이면서 가장 중요한 삶의 지표이자 외면할 수 없는 가장 순수한 가치다. 클로이 자오가 추구했고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과도 가장 맞닿아 있다. 존재 그 자체의 의미이면서 그 존재를 가늠하는 다양성이다. 마블 최초 동양인 히어로(마동석: 길가메시)가 등장한다. 그는 가장 힘이 쎈 가장 강력한 존재다. 지금의 세계 주류를 지배하는 서양 시선에선 상당한 역설이다. 10명의 이터널스를 이끄는 리더는 여성(셀마 헤이엑: 에이잭)이다. 여성 리더는 이미 우리 관념을 뒤흔들만한 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해야 할 요소다. 동성애자 히어로도 등장한다. 그것도 유색인종(흑인)이다. 10명의 이터널스 가운데 발명과 과학을 주도한 파스토스. 그는 수천 년 만에 자신을 찾아온 옛 동료들과 함께 하기로 결정한 장면에서 동성 파트너와 키스신을 선보인다. 그의 파트너로 출연한 남성 배우는 실제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다. 장애인도 등장한다. 마블 최초다.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마카리는 실제 청각장애인 여배우 로런 리들로프가 맡았다. ‘어벤져스가 그려 온 백인 슈퍼히어로 그리고 그들이 리드오프로서 세상을 구원한 스토리에서 벗어났단 점만으로도 마블의 선택은 변화를 추구하기 위한 시도로서 분명 유의미하다. ‘모두가 함께란 정치가 가야 할 궁극적 목적과 방향성을 제시한 초석으로서도 볼 수 있다. 이런 연대는 마블이 앞으로 끌어 갈 페이즈4’의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어 보인다.
 
영화 '이터널스'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이런 유의미한 시도와 존재는 분명 히어로 장르로서 획기적이고 주목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게 너무 앞섰다. 마블은 클로이 자오란 감독 정체성을 간과한 부분이 큰 것 같다. 클로이 자오 역시 스스로를 맹신한 듯했다. 전작 노매드랜드를 통해 선보인 존재의 이유와 가치의 의미가 히어로 장르에 너무 깊게 투영됐다. 철학자 칸트의 존재론을 담아낸 듯 어렵고 또 어렵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너무 깊게 파고 들었다. 사색과 고뇌까지 끌어왔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란 존재론적 문제를 언급한 세익스피어가 그리스 고대 서사의 비극까지 끌어 온 같은 느낌이다. 마블이 갖는 특유의 유머와 가볍지만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적당한 무게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담아낸 장르적 판타지 활용성이 완벽하게 제로 베이스로 끌어 내려진다.
 
영화 '이터널스'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이터널스는 너무 깊게 파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극단적으로 지루해져 버렸다. 히어로 장르, 즉 마블이 담아내야 할 눈을 현혹시키는 판타지와 액션이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색채로 해석됐다. 그나마 등장하는 액션은 1980년대 일본 장르물 전매특허였던 전대물수준으로 떨어졌다. 앞서 언급한 모두가 함께란 유의미한 시도는 시도에서 끝을 맺었어야 했다. 시도를 넘어 갈등과 충돌 구조로 전개를 끌어 갔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를 만들어 낸 세익스피어가 떠오르고, 그리스 신화 구조 자체까지 끌어 와 만들어 낸 10명의 이터널스’가 등장하니 감정의 판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커져 버렸다.
 
영화 '이터널스'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이터널스는 이 모든 판을 해결하기 위해 상상을 넘어선 결론을 내버린다. ‘데우스엑스마키나를 끌어 온다. 고대 그리스극에서 자주 사용하던 극작술이다.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 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이를 결말로 이끌어가는 수법이다. 허탈하다. ‘이터널스가 주목돼야 한다면 마동석의 화끈한 액션 그리고 마동석과 안젤리나 졸리의 유려한 연기 호흡 정도만이다.
 
마블은 분명 고민에 빠져 들었을 것이다. 클로이 자오가 만들어 낸 페이즈4 서막의 색채. 끌고 갈 것인가 이 자리에서 멈출 것 인가. 그것이 문제가 될 듯하다. 이터널스가 마블에게 던진 그 자체로서의 고민만 남아 버린 최악의 결과물이다. 개봉은 11 3.
 
P.S 쿠키영상은 두 개다. 첫 번째는 타노스의 동생이 출연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후 스토리이기에 앞으로 이어질 페이즈4 흐름에 대한 힌트로 해석될 수 있다. 두 번째는 마블 세계관 최고 검술 넘버원 히어로 캐릭터 블랙 나이트에 대한 힌트다. ‘이터널스에 등장한 한 유명 배우가 블랙 나이트’란 떡밥이다. 러닝타임 동안 이 배우의 얕은 존재감에 실망했다면 두 번째 쿠키영상에서 환호성을 지르게 될 듯하다. 국내에도 상당한 팬 층을 보유한 인기 배우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