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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유아인, ‘지옥’을 만들고 ‘정진수’를 그려냈다
“‘정진수’ 유일무이한 존재, 20년 동안 고통·번민·번뇌가 만든 괴물”
“죽음 앞 ‘정진수’도 마찬가지 존재였을 듯… 난 ‘나답게 살자’ 주의”
2021-12-09 00:04:02 2021-12-09 08:24:17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1화부터 6화까지로 구성돼 있다. 사실상 이번 여섯 편이 시즌1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번 시즌1은 전반과 후반으로 나뉜다. 1화부터 3화까지 그리고 4화부터 6화까지. 전반과 후반의 동력이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지옥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인물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드라마가 된 지옥이다. 이번 시즌1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인물, 바로 지옥의 세계관을 구축한 당사자 정진수 의장이다. 그는 새진리회를 만들었다. 새진리회는 이 세상을 다스리는 법이 됐다. 법 위에 종교가 존재하고, 주권자 위에 새진리회를 이끄는 간부들이 존재한다.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지금은 사라진 중세시대의 신정국가체계가 된 지옥의 대한민국. 이건 오롯이 정진수가 만들었다. 그는 초자연적 존재들이 나타나 죽음을 행사하는 것을 이용해 세상을 다스릴 초법적 체계를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는 3화 마지막 사라졌다. 스스로가 진짜 신이라도 된 듯한 것처럼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모습이 정말이고 진짜처럼 느껴졌다. 그 힘의 절반은 분명히 정진수를 연기한 유아인이란 배우의 존재감이 만든 것이다. 부인 못할 사실이란 이런 것일 듯하다.
 
배우 유아인. 사진/넷플릭스
 
당연히 유아인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게 정답이다. 그의 연기력은 자타가 공인하고 충무로에서 감독이란 직업을 택해 일하는 사람치고 의심한단 것 자체가 넌센스다. ‘지옥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은 그에게 시나리오를 건네고 연락이 오기까지 유아인이 출연하겠다란 전화를 주는 장면을 실제 꿈으로도 꿨을 정도로 그를 원했다고 한다. 이처럼 유아인에게 지옥의 정진수는 그리 어려운 역은 아니었을 듯했다.
 
그런 표현은 과찬을 넘어서니 사양하고 싶어요(웃음). 저도 어떤 작품보다 긴장을 많이 했었어요. 제가 연기할 정진수는 주요 캐릭터 중에서 출연 분량이 가장 적어요. 그런데도 초반과 중반 그리고 제가 출연 안 하는 부분의 감정들까지 지배해야 하는 힘을 느끼게 해야 되요. 그러다 보니 한 신 한 신이 정말 무겁게 다가왔어요. 에너지는 강한데 겉으론 크게 드러나지 않는 내재된 상태로 조금씩 새어 나오게 하면서 미스터리 한 느낌을 살리려 노력했죠."
 
배우 유아인. 사진/넷플릭스
 
유아인이기에 정진수는 탄생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연상호 감독이 정진수캐스팅에 유아인 외에는 대안을 두지 않고 캐스팅 작업을 진행했단 비화도 이젠 유명하다. 이처럼 정진수는 카리스마와 부드러움 그리고 유약함이 뒤섞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고 또 누구도 본적 없는 기괴한 느낌의 인간이 돼야 했다. 유아인이 만들어 낸 정진수는 정말 전무후무한 악인과 인간 그 중간 어디쯤 존재하는 인물이 됐다.
 
말씀하신 대로 저도 정진수가 유일무이한 존재란 점에서 많이 끌렸어요. ‘지옥세계관에서 가장 먼지 고지를 받은 인물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20년 전 받은 걸로 나오잖아요. 20년의 시간을 상상해 나갔죠. 그 시간 동안 받은 고통과 번민 그리고 번뇌. 그 감정들이 그 시간을 지나면서 정진수를 어떻게 괴물로 만들어 나갔을까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걸 표현해야겠단 욕심이 커졌죠.”
 
배우 유아인. 사진/넷플릭스
 
어떤 지점에선 무표정했다. 또 어떤 지점에선 무표정하면서도 말투에서 다른 감정을 드러냈다. 또 다른 지점에선 표정과 말투가 감정을 숨기고 있었지만 몸에서 감정이 폭발하고 있었다. 유아인은 그런 정진수를 만들어 냈다. 그를 보고 있으면 진짜 새진리회가 우리 사회에 어딘 가에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이 곧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 버릴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의 말 한 마디는 이미 그 사회를 움직이는 법이고 믿음이었다. 그럼에도 유아인에겐 아이러니한 벽이 연기 과정에서 느껴졌었다고.
 
이렇게 강력한 인물을 연기하니 정말 어떤 면에선 너무 재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의외의 장면이 절 어렵게 만들기도 했어요. 제가 뉴스에 출연해서 새로운 세상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대사에 담긴 막대한 분량의 의미가 있어요. 그걸 전부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지금도 제일 아쉬워요. 정진수가 민혜진에게 농담을 하는 부분도 되게 어렵게 다가왔죠.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제일 집중한 장면은 당연히 3회 마지막 부분 정진수의 고백장면이에요. 정말 빠져 들어서 연기했던 기억이 나요.”
 
배우 유아인. 사진/넷플릭스
 
정진수는 앞으로도 웬만한 작품에선 만나기 힘든 그런 색깔을 지닌 캐릭터다. 이런 색깔의 배역은 유아인 입장에서도 배우 생활 동안 처음이었다. 보통 이런 색깔과 존재감의 배역을 소화하고 나면 배우들은 후폭풍을 겪기 마련이다. 가장 제일 큰 점은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개인적인 변화까지 맞이하는 배우들도 많다. 세상을 휘어 잡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 잡는 정진수를 연기하면서 겪은 유아인의 변화는 이랬다.
 
뚜렷하게 이런 점이 그랬다라고 말씀 드리긴 어려워요. 그게 바꿔 말하면 그런 점이 없다가 아니라 지금도 변화되는 과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에요. 정진수는 이미 저에겐 지나간 인물이지만 그 인물을 겪으면서 저도 순간순간 자신을 감시했는데, 제가 생각보다 제 의식 아래로 더 가라 앉아 있는 듯했어요. 다른 작품을 하면서 마구잡이로 수면 위에 끌어 올린 저 자신에 대해 긴장을 하고 있는 걸 느끼게 된 것 같았죠.”
 
배우 유아인. 사진/넷플릭스
 
가장 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지옥이 넷플릭스에 공개된 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온라인에도 상당 부분 지옥의 스포일러가 공개됐다. 가장 궁금했던 점이다. 정진수는 이미 20년 전에 고지를 받은 상태였다. 그리고 20년 동안 그는 새진리회를 만들어 이끌면서 다가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갔다. 그런 정진수의 심리가 궁금했다. 유아인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천사에게 구체적인 날짜를 받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삶을 살고 있지 않아서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마음을 알 수는 없죠. 하지만 우리 모두가 사실 죽음을 늘 옆에 두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죽음을 구체적으로 계획한 건 아니지만 사람은 어차피 누구나 죽잖아요. 전 개인적으로 시원하게 그리고 나답게 살아가자는 주의입니다(웃음). 어차피 정진수도 전무후무한 인물이지만 죽음 앞에선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배우 유아인. 사진/넷플릭스
 
유아인의 정진수는 사실상 시즌1 3화에서 퇴장한다. 하지만 6화 마지막 장면까지 지옥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지옥의 또 다른 주요 인물 박정자 6회 마지막 장면에서 충격적 반전으로 등장한다. 유아인은 3화에서 퇴장했지만 내심 시즌2가 제작되면 출연하고 싶단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아직은 정진수와 이별하고 싶지 않다며 웃는 유아인이다.
 
전 개인적으로 정진수도 부활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보는데(웃음). 연상호 감독님께 연락 좀 드려봐야 할 듯 하네요. 아직 안보신 분들이 있다면 지옥꼭 한 번 접해 볼 작품이라고 추천드립니다. 여러 분 각자에게 지옥도 각자의 이미지로 구축돼 있을 겁니다. 그걸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 줄 경험이 이번 지옥이 될 듯해요. 꼭 한 번 접해 볼 작품이라고 강추합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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