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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올빼미’ 유해진 “‘나라면 어땠을까’ 거기부터 시작했다”
17년 전 ‘왕의 남자’ 세트장에서 작업한 ‘올빼미’…“기분 정말 이상했다”
전형성 깨트린 조선 왕의 이미지·성격…“상상한 이미지 더해 ‘왕’ 완성”
2022-11-28 07:01:00 2022-11-28 07:01: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유는 분명했다. 이 영화, ‘아차싶었다. 사실 얼굴만 봐도 웃음이 터지는 이 배우에게 정말 예상을 벗어난 배역을 맡겨 버렸다. 그럼 이유는 두 가지다. 제작진과 연출자인 감독이 영화의 파격을 캐스팅의 의외성으로 밀어 붙여 보고자 하는 것이 첫 번째다. 그리고 나머지 두 번째는 해당 배우가 그 배역을 욕심 내고 고집을 했을 경우다. 드물지만 두 번째 케이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 이 영화에서는 앞선 두 가지 이유 가운데 어떤 게 해당될까 싶었다. 일단 두 가지 모두 아니다. 지금부터 말하고 싶은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감독은 대한민국 사극의 신으로 불리는 이준익 감독 밑에서 오랜 시간 동안 조연출로 내공을 갈고 닦은 전력이 있다. 이 감독과 함께 국내 사극 영화 가운데 유일한 1000만 흥행작 왕의 남자를 함께 작업했었다. 당시 이 연출자는 조연출왕의 남자에 함께 했었다. 그리고 그때 한 배우가 눈에 들어왔다. 전라북도 부안 오픈 세트 댓돌 바닥에 납죽 엎드려 있던 이 배우. 쩔쩔 끓는 한 여름 날씨에 달궈진 댓돌에 온 몸을 엎드리고 감독의 사인만 기다리고 있었다. 주연도 아닌 조연 배우이기에 견디고 견뎌야 했다. 그때 그 배우의 견딤을 보고 기억했던 걸까.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중요한 것은 17년이 지난 지금이다. 당시 현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가장 바쁘게 굳은 일도 마다하지 않던 조연출은 올해 가장 인상적인 데뷔작을 선보이게 된 연출자가 됐다. 그리고 당시 들끓는 댓돌 한 가운데 납죽 엎드려 감독과 스태프의 눈치만 보던 배우는 이젠 그 세트의 가장 높은 곳에 앉아서 왕 노릇 제대로 해봤다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영화 올빼미의 안태진 감독이 이 영화의 왕 역할로 배우 유해진을 선택한 이유가 뭘까. 아마도 당시의 인연과 기억이 조금은 작동되지 않았을까. 거기부터 얘기를 끌어가 봤다.
 
배우 유해진. 사진=NEW
 
유해진은 200512월 개봉한 사극 왕의 남자에서 육갑이캐릭터로 등장한 바 있다. 조선 시대 천민, 그리고 천민 중에 천민인 남사당패 일원이었다. 신분 제도가 분명했던 조선 시대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던 인물을 연기했다. 그리고 17년이 흐른 뒤 유해진은 왕의 남자조연출을 맡았던 안태진 감독의 연출 데뷔작 올빼미에서 왕 역할을 제안 받았다. 처음에는 놀란 정도가 아니었다고. 그냥 문자 그대로 뭘 잘 못 알고 보내온 것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단다.
 
“(웃음) 살다 보니 왕도 해보고 하하하. 우선 안 감독님 당연히 기억 나죠. ‘왕의 남자세트장이 전북 부안이었는데, ‘올빼미가 딱 그 세트에서 찍었어요. 17년 만에 같은 공간에 갔는데 기분 이상하더라고요. 특히나 17년 전에는 저 댓돌 한 가운데 납죽 엎드려 있었는데, 지금은 멋들어진 옷 차려 입고 여기서 쫙 내려다 보는 기분이 하하하. 사실 처음에는 잘 못 보내온 거다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자꾸 나한테 온 거라고 하길래 도대체 왜 나야?’라고 오히려 내가 물었다니까요.”
 
배우 유해진. 사진=NEW
 
당시 안태진 감독은 유해진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질문을 받고 딱 한 마디를 했었단다. ‘지금 하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다라고.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을 산산조각 내고 싶었다. 그게 바로 안태진 감독이 유해진을 올빼미속 불안과 광기에 사로 잡힌 인조를 연기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감독의 그 말 한 마디에 찰나의 고민도 사치라고 여기게 됐다고. 곧바로 수락을 해버렸단다.
 
너무 간결하지만 힘이 있는 그 말 한 마디에 그냥 넘어가 버렸죠. 감독이 내 이미지를 깨 주고 싶다는 말을 하는 데 어떤 배우가 안 넘어 가겠어요.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서 고민도 안하고 그 자리에서 하겠다고 했어요. 사실 진짜 고민은 많았죠. 나 때문에 몰입이 안돼서 영화 못 보겠다는 말이 나올까 봐 제일 걱정했어요. 그런 말 안 듣게 진짜 열심히 준비하자 싶었죠. 그리고 솔직히 나한테 언제 또 왕 역할이 들어오겠어요 하하하. 냉큼 받아 먹은 것도 있어요 사실(웃음)”
 
배우 유해진. 사진=NEW
 
워낙 겸손하게 말을 하는 유해진이다. 하지만 올빼미를 보고 나면 유해진이 만들어 낸 인조의 모습에 상식의 경계까지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조는 반정으로 추대된 왕이란 것 외에는 사실 국내 사극 콘텐츠에서 그렇게 크게 다뤄지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박해일이 인조를 한 번 연기했었지만 올빼미의 인조와는 전혀 결 자체가 달랐다. 유해진은 인조가 역사 속 인물이란 것 하나만 남겨두고 모든 것의 전형성을 깨버렸다.
 
제가 뭔가를 색다르게 해야지라고 접근한 건 진짜 단 한 개도 없어요. ‘어떤 마음이었을까그게 제일 중요했죠. 무슨 말이냐면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싶은 거죠. 우리가 실제로 보지 않았잖아요. 모르잖아요. 정말 그랬을지 누가 알아요. 내가 그때 왕이었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싶은 거죠. 좀 흐트러져 앉아 있기도 하고, 말투도 항상 근엄하게 뭐라 하는 것 보단 편안하게 그렇게 말도 했을 것이고. 다큐멘터리가 아닌 완벽한 창작극 이잖아요. 이런 생각이 하나하나 모여서 올빼미의 인조를 만들어 낸 것 같아요.”
 
배우 유해진. 사진=NEW
 
왕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극 속 전형적인 왕의 이미지가 깨지는 순간은 극중 소용 조씨에게 윽박지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유해진이 만들어 낸 인조의 광기와 불안감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순식간에 넘나드는 장면전환처럼 압도적으로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우리가 선입견으로 착각해 온 유해진=코미디란 수식어가 완벽하게 산산조각 나는 올빼미의 명 장면 중 명 장면이다.
 
“말씀해 주신 그 장면이 올빼미인조가 어떤 인간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했어요. 그 장면에서 제가 소용 조씨를 연기한 안은진 배우의 뺨을 때리는 데, 리허설에서 뭔가 자세가 잘 안나오더라고요. 그러니깐 은진 배우가 제가 좀 틀어 볼께요하는 데 제가 그냥 있으라고 했죠. 순간 인조라면 뭐가 어찌됐든 어떻게 해서든 한 대 후려 갈길 거 같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제가 영화 속 장면처럼 뺨을 후려 쳤는데 진짜 예상 밖의 장면이 나와 다들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참고로 진짜 때린 건 아니에요(웃음).”
 
배우 유해진. 사진=NEW
 
여러 동료 선후배들과 함께 한 올빼미’. 언론 시사회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함께 했던 류준열에 대한 칭찬을 했고 그 말에 류준열이 눈물을 흘린 장면은 최고의 이슈가 됐었다. 그는 류준열과 이번 작품까지 3번째 호흡을 맞춰왔다. 후배의 성장이 너무도 대견하고 또 든든한 마음이었다고. 무엇보다 이 작품을 함께 하면서 가장 깜짝 놀란 배우가 있다고 덧붙였다. 극중에서 자신의 아들로 등장한 소현세자역의 김성철이었단다.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연기를 잘해 샘이 날 정도였단다.
 
“준열이가 맡은 배역이 정말 쉽지 않은 역이었어요. 그런데 너무 능숙하게 극 자체를 끌고 가는 모습에 제가 다 든든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뭐랄까, 기자간담회에서도 말했지만 되게 튼튼하게 잘 올곧게 뻗어 나가고 있구나 싶었죠. 그리고 진짜 제일 놀랐던 건 아마 성철이에요. 사실 잘 모르는 배우였어요. 그리고 극중에서 저랑 마주하는 장면도 그렇게 많지가 않아요. 분량도 적고. 근데 촬영 때도 느꼈지만 영화를 다시 보니 더 놀라운 게, 정말 별거 아닌 대사를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진짜처럼 연기를 하지 싶더라고요. 영화 보는 데 소름이 돋을 정도였어요.”
 
배우 유해진. 사진=NEW
 
한국영화 시장이 극심한 비수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한국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올빼미가 언론 시사회 그리고 일반 시사회를 통해 얻어 낸 호평은 코로나19’ 이전에 버금갈 정도로 뜨겁다. 이 정도의 분위기와 관심은 올빼미란 영화 한 편을 넘어 올해를 마감하는 한국영화 시장에 가장 흥미롭게 기분 좋은 송년회 선물이 아닐까 싶다.
 
너무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계속 되고 있죠. ‘무조건 극장에 와 주세요라고 말씀 드리기엔 참 말씀 드리는 저도 죄송스럽고 부담이에요. 하지만 혹시라도 영화 한 편 볼까라고 싶으시면 혼자 오시던 주변 친구분들과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오셔서 봐도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닌 영화라고 자부합니다. 올해 마무리를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재미로, 그것도 올빼미로 하신다면 더 없는 선택이 아닐까 싶네요(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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