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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김수철·크라잉넛 "합동 가위점프 기대하세요"
올해 '경록절' 8일 무대서 즉흥 잼 연주·협업 무대 예고
데뷔 45주년 "'순수예술의 세계화' 이뤄야 문화 강국"
'작은 거인' 김수철·'악동' 크라잉넛 한경록 합동 단독 인터뷰
2023-02-05 18:00:00 2023-02-05 18: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그날 너네 '펜더(기타 브랜드)' 좀 살짝 빌리자. 괜히 나 때문에 악기 대수만 늘어나면 일하는 스탭들이 힘들어한다고. 생일 축제면 생일 축제답게 즉흥 잼도 하고, 뒤엉켜야 하는 거 아니겠니. 함께 언제 뛰어들까. '젊은 그대' 때? 그나저나 요즘 살이 올라서 점프가 좀 덜 올라가더라고. 크하하."
 
8일 서울 마포구 광흥창 인근 한 중식당. 금방이라도 "치키치키차카차카"가 쏟아질 듯한 바로 그 성음이 들려옵니다. 김수철(65). 붙어있던 크라잉넛 한경록(47)의 화답. "걱정마세요. 제가 더 높이 높이 뛰어드리겠습니다. 푸하하."
 
'작은 거인' 김수철과 '악동 밴드' 크라잉넛이 한 무대 합동 가위 점프로 날아오릅니다. 오는 8일 저녁 7시, 서울 마포구 왓챠홀에서 열리는 '경록절' 무대에서. 
 
경록절은 ‘홍대 앞 마당발’ 한경록 생일인 2월 11일 즈음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이 출동하는 페스티벌입니다. 올해는 기존 3일에서 5일로 날짜를 연장하고, 미술·문학·과학·건축 등 다채로운 분야 120여 문화예술인들이 몰리는데, 김수철은 주빈 격인 크라잉넛과 첫 합동무대로 행사의 포문을 열어젖히는 간판 출연진입니다.
 
8일 서울 마포구 인근 중식당에서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와 만난 올해 데뷔 45주년의 '작은 거인' 김수철과 크라잉넛 한경록. 사진=캡틴락컴퍼니
 
작은 거인 시절의 '일곱색깔 무지개', 솔로 활동 이후 ‘못다 핀 꽃 한 송이’, ‘젊은 그대’, ‘정신 차려’, ‘내일’,  ‘나도야 간다’ 등 숱한 히트곡. 국내 최초 100만 장 이상 팔린 사운드트랙 영화 '서편제'를 비롯해 '팔만대장경', '황천길' 같은 국악과 서양음악 간 결합,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 음악과 1986 아시안게임, 1988 서울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 등 국제 행사 음악…. 김수철이 한국 대중음악사에 새긴 궤적은 '한강의 기적'만큼이나 장대한 '반석(盤石)'이었습니다.
 
차분히 강물처럼 흘러가는 연주, 그러나 악기로 직접 따본다면 기존 틀을 뒤엎는 코드와 화성진행이 ‘아 여보게,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직접 말을 건네온다고. 
 
"합동 무대를 준비하려고 우리끼리 선생님 곡 연습하다보면 매번 깜짝 깜짝 놀라요. 'E'에서 'F#'으로 진행을 바꾸는 ‘못다 핀 꽃 한 송이’ 같은 거요.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어마어마한 음압들이 밀려오고 그 파도를 혼자 암흑 속에서 헤쳐가는 '변심'도. 들을 때는 쉬운 줄 알았는데, 왜 '천재의 음악'이라는지 알겠어요."(한경록) 이어 국내 대중음악 최초 목관 5중주곡('변심')을 설명하던 김수철은 "근데 그렇게 따지면 5000만 국민이 천재"라며 몸을 낮춥니다. 
 
한경록은 "'서커스매직유랑단'의 '임찾아 꿈찾아 떠나간다우' 가사가 나온 건 김수철 선배님의 '나도야 간다'가 내 몸 안 DNA로 새겨졌기 때문"이라며 "노래를 발표하고 뒤늦게야 영향을 받았음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김수철은 "오롯이 혼자 힘 100%로 독창적인 음악을 만드는 일은 없다. 위로부터 영향 받아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창작의 과정"이라며 격려했습니다.
 
2015년 EBS스페이스공감에 출연해 합동무대를 꾸민 김수철과 크라잉넛이 가위 차기를 하는 모습. 사진=EBS스페이스공감
 
올해로 데뷔 45주년을 맞은 김수철. 백남준의 미디어 파사드쇼, 앙드레김의 패션쇼가 한때 그의 음악 일부로 존재했던 시절을 환기한 그는 "문화를 현실화시키는 것은 결국 예산"이라며 "요즘의 케이팝 등 대중예술의 성취에는 사실 우리 것이 너무 없다. '순수예술의 세계화'도 이뤄야 진정 문화 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다양한 장르 음악가들에게 무대 기회가 돌아가는 경록절 같은 문화 기반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문화란 인위적으로 직조하는 것이 아닌 넝쿨처럼 얽히고설켜 만들어지는 것. 그간 서너차례 합동 무대를 꾸민 적 있는 김수철과 크라잉넛은 이제 척 하면 척 받는 '지음(知音)' 사이라 딱히 정해놓은 곡 순서와 리스트들이 없어도 즉흥적으로 이어 붙이며 30분을 달굴 예정. 인터뷰 직후 ‘보석보다 찬란한 무지개’ 뒤로 ‘젊음의 태양을 마시듯’(‘젊은 그대’ 1984) 음성이 수화기 너머 다시 들려옵니다. "이 말 꼭 좀 넣어주세요. 어려움을 딛고 자기 꿈을 주도적으로 끌어가는 후배 음악가들에게 꼭 좋은 날 올 거라고."(김수철) 
 
2019년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합동무대를 꾸민 김수철과 크라잉넛. 캡틴락컴퍼니

<에필로그: 데뷔 45주년 김수철, 크라잉넛, '문화 르네상스' 선언한 경록절>
 
-2021년 산울림 김창완 선생님, 지난해 한영애 선생님에 이어, 올해는 김수철 선생님이 합동 공연을 하네요. 경록절은 해마다 거장들, 신예들과의 무대를 주선하며 한국 대중음악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경록: 음악을 넘어 과학, 강연, 전시, 문학 등 '예술 융합의 장', '문화 르네상스'가 올해의 목표인데요. 개막식에서 선생님이 그 중심을 잡아주시는 것이죠. 흑사병이 지나고 이탈리아에는 르네상스가 왔다고 하죠. 코로나19 기간 억눌렸던 우리나라 문화·예술도 확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어요. 장르와 세대 경계가 허물어지는 축제를 준비했고, 테마파크처럼 즐기시며 느끼셨으면 해요. '예술도 어려운 게 아니다.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를. 산책하듯 이 문화를 경험하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수철: 대한민국에 이런 흔치 않은 광경을 볼 수 있는 축제가 없어요. 다 경록이가 쌓아온 은덕이지. 노래하면 리듬 붙여 주고 한명씩, 연주가 안 끊기게 블루스 잼이 되고. 그러다가 베이스와 기타 솔로 나오고. 이런 광경은 방송 같은데서는 볼 수 없는 백미죠. 투잡 쓰리잡 가지면서도 음악에 몰두하는 연주자들이 조명 받을 수 있는 문화적 토대가 더 마련돼야 해요. 저는 김수철로서가 아니라 경록이와 친한 형으로서 무대에 나갈 겁니다.
 
-김수철 선생님과 크라잉넛은 합동 무대를 여러차례 꾸민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척 하면 척 받는  '지음(知音)' 사이겠어요.
 
한경록: (곡들을) 정하지 않고 그냥 바로 무대에 올라갈 거예요. 초기 경록절이 원래 그랬거든요. 자연스럽게 즉흥 잼 연주 하듯. 
 
김수철: 우리가 연을 맺은지도 족히 24년이 넘은 것 같은데? 난 경록-상면-상혁 우정 스토리를 쫙 하면 읊을 정도로 알고 있다고. '얘네들 '드럭 시절'(데뷔 초 크라잉넛의 클럽 공연 시절) 지나고 1~2년 정도 있다가 봤는데 여기저기 침 뱉고, 술 취해 있고 맨날 난리도 아니었다고. 얘네 공연도 젬머스 가서 보다가 맨 뒤로 몰려서, 모자 캡이 돌아가 있던 것도 기억나.
 
-크라잉넛 한경록에게 음악선배로서 김수철 선생님의 존재란, 또 김수철 선생님에게 크라잉넛이란.
 
한경록: 영화 '고래사냥'도 좋아하지만, 선생님께서 작업하신 88서울올림픽 음악 LP를 샀었는데 정말 매일 들었어요. '서편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가사에 이별, 한의 정서도 많고, 제가 좋아하는 꽃도 많이 나오죠. 부모님께서도 차 타고 여행 다닐 때 늘 '못다핀 꽃 한송이'를 들으시곤 했는데, 그런 음악적 DNA가 자연스레 제 몸에 배인 셈이죠.
 
김수철: 다섯명이 하나라도 다른 마음이면 28년 간 한국에서 록밴드를 할 수 있었겠어요? 이탈할 수 있다고요. 이렇게 음악으로 뭉쳐 오고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 생각들이야. 이쁘고 좋아요. 가능하면 잘해주고 싶고.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기 꿈을 찾아나서는 멋진 밴드죠. '밤이 깊었네'처럼 취하면 취한 대로, 찌그러져있으면 찌그러진대로 얘네는 늘 '생기'가 있다고요. 제가 '작은 거인'할 때는 부모님이 다 반대했었어요. 언제든 부활시키고 싶었어요. 그리고 언제든 부활할 수 있을 것이고.
 
-김수철 선생님은 올해가 데뷔 45주년이라 들었습니다. 지난 음악 세월을 돌아볼 때, '88 서울올림픽 전야제' 연출을 못한 것이 아쉽다는 이야기를 봤습니다. 아직도 그 꿈을 실현하고픈 마음이 있는 것이지요?
 
김수철: 서울 올림픽 때로 가면, 레이저가 그때 처음 들어왔거든요. 당시 제가 낸 아이디어가, 레이저를 63빌딩에 쏘고, 다시 남산과 여의도 쌍둥이 빌딩에 쏘고. 하늘에 헬기 8대를 띄워다오. 옥상에다가는 100대의 스피커를 설치해다오. 그러면 각 장소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이 교차하고 화면이 계속 전환되는 거죠. 클래식, 뉴에이지, 국악, 그러다가 록이 합류하며 콰콰광! 그 아이디어를 아직도 못 써먹었어요. 문화는 예산인데 그때 저보고 미친놈 소리를 했어요. 향후 20-30년 안에 우리나라에서 가능할 수 있을까. 그건 아직도 퀘스쳔 마크에요.
 
-세계에 없는 편성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 공연을 시도하려 했다고 봤습니다. 팬데믹 영향으로 잠정 중단했다고요.
 
김수철: 지휘와 전기기타 연주를 병행할 예정이었는데 그렇게 됐어요. 한국의 문화, 음악을 세계로 더 알리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작업이거든요. 우리 고유의 소리로 세계로 나가려고 그간 많은 노력을 했어요. 나이 60까지 작곡에 충실했던 이유도 그것이고. 다시 발표할 여건만 지금 기다리고 있어요.
 
-태평소를 컴퓨터 음악과 붙여 솔로 악기로 끄집어낸 '황천길'(1989년), 국악 타악을 주연으로 세운 뒤 외국 타악까지 아우른 '불림소리 마'(1992)를 대표곡으로 꼽으신 적 있는 걸로 압니다. 그 외에도 45주년을 돌아봤을 때, 음악 생애 변곡점이 됐던 곡들을 꼽는다면.
 
김수철: 당장 떠오르는 것은 '일곱색깔 무지개', ‘못다 핀 꽃 한 송이’, ‘서편제’, ‘날아라 슈퍼보드’, 88올림픽, 한일월드컵, ‘날아라 슈퍼보드’ 이것들이 남은 것 같고. 내 평생 시리즈로 할 것은 팔만대장경과 불림소리라 봐요. 난 음악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핸드폰을 열어 메신저 10여개도 안되는 목록을 보여주며) 인간관계도 내가 좋아하는 음악 선후배들이 전부. 그 외에 아무것도 없어요. 
 
-기타로 산조에 도전한 것이 1986년부터고 2002년 UN본부 총회의장에서 코피 아난 당시 UN 사무총장을앞에 두고 10분 넘는 ‘기타산조’를 펼치셨다고. 국악과 서양음악의 억지 조화가 아닌 진짜 조화를 이루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김수철: 공부죠. 특히 국악은 공부 안 하면 알 수가 없어요. 오전에 공부한 걸 오후에 실습해보고, 오후에 한 걸 다시 저녁에 해봐야죠. 한 장르를 내면 1~2년 간 칩거에 돌입하며 공부를 해요. 대금소리 구분에만 10년이 걸렸어요. 1995년 무렵에는 팔만대장경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불교계의 작곡 의뢰로 팔만대장경 (곡)을 만들었어요. 
 
-그 신비로운 음악을 만들며 술, 담배도 끊고, 음악에만 투신했다고요. 포크, 록, 솔, 클래식… 창고에 쌓인 음악만 앨범 20~30장 분량이 될 거라고.
 
김수철: 글쎄요. 50장이 넘을지도 몰라요. 그냥 빌딩은 없어도 '음악 빌딩'은 무지하게 많거든요. 신작을 내려고 해도 자주 낼 수는 없어요. 언제든 하루만에 표절을 해버릴 수 있는 세상이 조금 무섭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국악은 여전히 외면받고 투자를 받지 못하는 분야죠. 개인이 하려다보니 저처럼 나이만 드는 것이고 이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순수예술이 우리나라도 필요한 시점이 왔어요. 물꼬만 트기 시작하면 된다고 봐요.
 
-'정성을 다하는~'으로 전 국민이 다 아는 KBS 뉴스 테마곡부터 "치키치키차카차카"로 유명한 '날아라 슈퍼보드' 얘기도 빼놓을 수 없죠.
 
김수철: 뉴스 테마곡은 '메시지'이자 '방송국의 얼굴'이에요. 그 짧은 20초 정도의 시간 안에 압도해야 하거든. 그러면서도 남녀노소 들어도 괜찮아야 하고, 시대를 초월해야 하고. '슈퍼보드'를 제작한 계기는 그 당시 어린 아이들이 자신들을 위한 노래가 아닌, 성인들이 만든 가요를 부르고 다니는 게 싫어서였어요. '내가 애들을 위해 뭔가를 해볼 수 없을까'. 허영만 형님하고 얘기하다가 7~8살 시야로 내려가보자고 생각했어요. "나는 나는 저팔계 왜 나를 싫어하나~" 저팔계가 왜 억울했을까 그 마음으로. 근데 슈퍼보드 가사는 사실 복선이에요. "나쁜 짓을 하면 우리가 다 알아요!"라는. 어른들에게는 메시지고, 아이들에게는 동심의 자기 얘기고. 요건 몰랐죠? 가만, 경록절 20주년이 언제지? 테마송 만들어야지!
 
한경록: 아마 2025년일 겁니다. 
 
김수철: 테마곡 만들어야지 진짜! 너네가 안되면 진짜 내가 만들어줄게. 크라잉넛 우정 스토리 내가 다 알고 있으니까. 지금 당장 아이디어가 '빠바박' 떠오르네. 그땐 거다란 홀 빌려다가 크게 틀어놓고 말이야.
 
한경록: 선배님께서 만들어주시면... 진짜 저흰 영광이죠.
 
-45년의 음악 인생을 돌아보면 후회되는 부분은 없나요.
 
김수철: 나는 후회는 안해요, 실패하면서 배우는 게 많아서. 팔만대장경 작곡 당시 말로 먹던 술, 하루 몇 갑씩 태우던 담배 싹 끊었죠. 취미는 음악 뿐. 음악 안할 땐? 벽 보고 가만히 있어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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