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미중 냉전 '샌드위치' 신세 전락
미, 한국에 '대중 반도체 제재' 동참 요구…삼성·하이닉스 '진퇴양난'
2023-04-25 17:01:57 2023-04-27 00:21:04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레드카펫을 걷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사면초가에 빠진 K반도체…'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제재'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의 '대중 반도체 제재' 동참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을 제한하며 사실상 '반도체 판매 통제'에 나선 겁니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탈중국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 내몰리며 '진퇴양난'을 겪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미, 동맹국 기업에 사상 첫 '중국 제재' 동참 압박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3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 논의에 대해 아는 소식통 4명을 인용해 미 백악관이 한국 정부에 중국 정부가 미국 메모리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을 제재하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부족분을 메우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4일 현지 브리핑에서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대해 "특별히 더 드릴 있는 말씀은 없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같은 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확인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미 백악관의 요청이 사실이라면 미국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에 대한 제재에 동맹국이나 동맹국 기업의 직접적인 동참을 요구한 것으로 처음입니다. 이는 미중 반도체 갈등을 이유로 동맹국 기업의 자율적인 경영 활동까지 좌우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실제 마이크론 구매를 중단하면 지난해 매출 308억달러(약 40조9763억원) 가운데 중국 본토와 홍콩 판매가 25%를 차지하는 미국 최대이자, 세계 3위 규모의 업체인 마이크론은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난감해하는 분위기입니다. 미국의 요청을 수용하는 것과 외면하는 것 모두 한국 기업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국내 반도체 업체가 미국으로부터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1년 유예를 받은 상황에서 이번 요청을 외면했다가는 향후 어떤 조치를 받을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당장 오는 10월로 다가온 유예 연장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또 국내 반도체 수출의 3~40%가량을 중국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중국 내 판매를 제한하기에도 부담이 큽니다. 매출 감소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의 제재를 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마이크론의 반도체를 팔 수 없게 된다면, 국내 업체로선 반사 이익을 얻을 기회가 되는데 그러지 못한 점도 아쉬운 부분으로 남습니다.
 
지난해 11월1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로 선 반도체 '탈중국' 전략최악 땐 '경제보복' 
 
양국의 반도체 갈등 속에 국내 업체들은 미국과 중국 중 한 국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였습니다. 일각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국내 업체들이 '탈중국' 전략에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미중 갈등에서 시작된 미국의 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때문에 중국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갖춘 국내 업체들이 최신 공정으로 시설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주저하거나 중국에 대한 투자를 멈추는 상황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동맹에 가입함으로써 '탈중국' 전략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칩4' 동맹이 사실상 반중 노선의 핵심축인 만큼, 향후 중국의 경제보복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 소장은 본지와 한 통화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도, 거부하는 것도 둘 다 선택하기 어렵다"며 "난제인데 정부가 지금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서 기업들이 더 어려워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선 우리 목소리를 좀 더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미 워싱턴에 도착한 윤 대통령은 첫 일정으로 글로벌 콘텐츠 기업인 넷플릭스의 테드 서랜도스 공동대표(CEO)를 만나 4년간 한국 콘텐츠에 25억 달러(약 3조3000억원) 투자를 약속받았습니다. 이 금액은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에 투자한 총금액의 2배에 가까운 규모라고 합니다. 다만 투자 유치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별도로 부인 김건희 여사에게도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습니다. 대통령실은 또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의 확장억제 강화를 구체화한 별도 문건을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이규하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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