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집·고문·프락치 강요…국가는 배상하라”
황언구 토마토미디어그룹 회장, 녹화공작 피해 국가 상대 2억원 손배소 제기
81년도 학내 시위 참여했다가 강제로 군 입대…고문 및 프락치 강요
전역 후에도 감시…“수십년 지난 후에도 꿈에 나타나 정신적 고통”
진화위 “중대한 인권침해…피해자들에 사과하고 경제·사회적 회복조치 해야”
2024-02-26 06:00:00 2024-02-26 06:00:00
[뉴스토마토 유연석 기자] 황언구(62) 토마토미디어그룹 회장이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강제로 군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해당 사건 관련해 현재 100여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언론사 사주가 소를 제기한 건 처음으로 전해집니다.
 
녹화·선도공작 의문사 진상규명 대책위가 2020년 6월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반인륜 국가폭력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 살인 주범인 전두환, 최경조, 서의남 등에 대한 형사고소·고발 및 보안사 존안파일 정보공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군사정권서 자행된 강제 군 입대·고문·감시·프락치 강요
 
이른바 ‘녹화·선도 공작’의 피해자인 황 회장은 지난 6일 대한민국(법무부)을 상대로 위자료 2억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청구 소장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습니다.
 
녹화·선도 공작은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한 대학생들을 강제로 징집하여 고문하고 프락치(신분을 속이고 활동하는 정보원) 활동을 강요한 대규모 인권침해 사건입니다.
 
특히 ‘소요관련 대학생 특별조치 방침’(1981)에 따라 집회시위 참가 등 학생운동 전력이 의심되는 대학생들은 징병적령·징병검사 실시·신체상해 여부 등과 관계없이 최우선적으로 강제 징집 대상이 됐습니다. 일선 경찰서에서는 이들을 ‘현지입대’시킨 후 대학에 학적변동을 지시하는 ‘선(先) 입대 후(後) 학적변동’ 조치를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소장에 따르면, 연세대 79학번(공과대 요업공학과, 현 신소재공학과)인 황 회장은 1981년 11월25일 학내 시위에 가담했다가 경찰에 체포돼 강제로 휴학과 군 입대를 당했습니다. 당시 황 회장은 신체검사에서 시력저하(-6디옵터)로 보충역까지 받았음에도 현역병으로 배치됐습니다. 이후 17일 동안 소속부대와 보안부대로부터 폭행, 고문, 감시 그리고 프락치 공작을 당했다고 황 회장은 밝혔습니다.
 
녹화·선도공작의문사진상규명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2021년 11월23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앞에서 열린 '대통령소속 軍사망사고위원회 의문사 김용권 사건 조사결과 발표에 대한 입장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너는 빨갱이니 파랗게 되어야 한다…때려도 너무 때렸다”
 
황 회장은 군에서 고문과 프락치 강요로 오랜 시간 고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군대에 다시 끌려가거나 군에서 고문 및 프락치 공작을 당하는 일이 꿈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등 심각한 후유증에도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는 군에서 겪었던 일들을 일기로 기록했고, 시간이 지나 주변 친구들과 공유했습니다. 다음은 당시 작성된 일기의 일부입니다.
 
“때려도 너무 때렸다. (중략) 전날 오전에 쓴 자술서와 오후의 자술서를 비교하고는 반성하는 구석이 없고 아직 자수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너는 빨갱이니 파랗게 되어야 한다'라며 엎드려뻗치라 한다. 그리고 사정없이 한 시간 정도를 때린다.”
 
“그들의 몽둥이는 높이 1.4m, 두께 8㎝짜리 6각봉이고, 거기에 ‘정신봉’이라 검정 글씨로 각인했더라. 무게가 있으니 힘이 안 들어가도 정신봉을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뼈까지 고통이 있더라.”
 
“허벅지부터 무릎 전까지 집중 타격하고 고통에 뒹굴면 어깨든 머리든 어디든 타격한다. 이러기를 1시간, 이 정도면 정신이 없고, 손과 발은 고통에 부들부들 떨린다.”
 
“녹화사업할 때 제일 무서운 것은 조직표를 그리라는 거다. 못 그린다 하면 몽둥이일 것이고 그리긴 그려야 한다. 대학원에 다니거나 선생하는 선배를, 써클활동 잘 안 하는 후배를 채워 넣어야 한다. 몽둥이 상황을 모면할 조직도를 그리면 진술서에 나온 내용을 안 넣었다고 역시나 몽둥이 세례가 들어온다.”
  
복무기간 동안 군은 황 회장에게 휴가를 준 뒤 대학 선후배들의 동향을 확인 후 보고케 하는 등의 업무도 시켰습니다. 황 회장은 ‘선후배들을 만나지 못하였다’고 보고하는 등 저항했지만, 그 과정에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마지막 휴가 중에 정OO(후배)가 죽었다고 한다. 왜 죽었는지, 죽임을 당한 건지 아무도 모른다. 난 추측이 가능하다. 같이 군대에 끌려간 대학 1학년 어린아이가 이런 폭압에, 이런 프락치 역할을 못 견뎠으리라고 본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이 2022년 11월23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당시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진화위 “중대한 인권침해” 인정…“위자료 2억원, 사과문 요구”
 
황 회장에 대한 군의 감시는 전역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황 회장은 보안대 수사관들이 자신의 어머니와 형 등을 접촉하고 그의 동향을 물으며 겁을 주는 등의 행위를 해 가족들이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고 진술했습니다.
 
황 회장은 자신의 겪은 △강제징집 △보충역 판정을 받았음에도 현역병으로 배치 △폭행과 고문 △녹화사업 △제대 후 동향 감시 등으로 수십년이 지나도록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2억원을 청구했습니다. 아울러 모든 사실을 인정하는 사과문을 게재해 줄 것을 국가에 요청했습니다. 
 
앞서 2기 진실화해위원회(진화위)는 지난 2022년 11월22일 ‘강제 징집·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 조사 1차 결과를 발표하며 “국방 의무라는 명목으로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정권 유지 목적으로 전향과 프락치를 강요당했다. 국방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교육부, 병무청 등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경제·사회적 피해에 대한 회복 조치를 하라”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진화위가 확보한 1970년에서 1980년대 녹화사업 피해자 명단에 담긴 숫자는 총 2921명입니다. 이 중 진실규명 신청을 접수한 대상자에 대해 진화위는 △과거 국군보안사령부 생산자료 △각 대학 학적부 및 성적표 △병무청 병적기록표 △기타 신청인 제출자료 및 진술조사 등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288명을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로 인정했습니다. 황 회장도 288명 피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유연석 기자 ccb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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