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만 23명…이번에도 책임자 '실종'
기술은 '선진국' 안전은 '후진국'…"예견된 인재" 비판
2024-06-25 17:33:08 2024-06-25 17:34:43
[뉴스토마토 김진양·이진하·유지웅 기자] 예고된 참사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안전 불감증' 민낯이 또다시 드러났습니다. '배터리 기술' 선진국을 자부했지만, 1차 전지 화재 매뉴얼과 안전 기준은 없었습니다. 화재 참사 이틀 전, 같은 공장에서 리튬 배터리로 인한 화재가 한 차례 발생했지만, 쉬쉬하기에만 급급했습니다. 그 사이 '리튬전지 화마'에 사상자만 30명을 웃돌았습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목숨을 잃으면서 '코리안 드림'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정부는 25일 합동 감식에 나섰지만, '10·29 이태원 참사'와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이어 또다시 대규모 참사와 마주하게 됐습니다. 이번 참사에도 '예견된 인재'라는 꼬리표가 붙으며 국민 생명과 안전은 말뿐인 구호에 그쳤습니다. 
 
사망자 23명 중 외국인 18명…무너진 '코리안 드림'
 
경기도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10시31분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 발생한 화재는 이날 오전 8시48분 완전히 진화됐습니다. 이 사고로 이날 오후 4시 기준 근로자 23명이 사망했고 8명(2명 중상·6명 경상)이 다쳤습니다. 사망 중에서는 한국인(귀화 포함)이 5명, 외국인이 18명으로 외국인 노동자 피해가 컸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아리셀 배터리공장 화재는 역대 화학공장 화재 사고 중 1989년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럭키화학 폭발 사고(사망 16명, 부상 17명)를 뛰어넘는 최악이 참사로 기록됐습니다. 화성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 중에서는 지난 1999년 6월 발생한 '씨랜드 참사'(사망 23명)에 이은 역대급 재난 사고입니다.
 
 
윤 대통령 지시 하루 만에일사불란 TF 구축
 
정부는 이날 관계 부처와 민간전문가가 포함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총력전에 나섰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화재 방문 하루 만입니다. 윤 대통령은 화재가 발생했던 전날 오후 현장을 긴급 방문해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화재 조기 진화를 위한 종합적 대책을 연구하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불러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유사 업체에 대한 안전 점검과 재발 방지 대책 수립에 만전을 기하라"고 거듭 당부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오후 경기 화성시 서신면 소재 리튬전지 제조 공장 화재 현장을 찾아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이 장관은 이날 '화성 공장화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열어 "행안부는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총괄하고 고용부·산업부·환경부·과기부 등 8개 부처 합동으로 유사시설에 대한 안전점검과 외국인 화재 안전교육을 강화하며, 리튬 전지와 같은 화학물질에 대한 소화약제를 새롭게 개발할 예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피해자별로 일대일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사망자의 신원이 추가 확인되는 대로 유가족분들께 신속히 알려주고 구호비 지원과 심리 회복, 장례비 지원 등 피해자 치료와 유가족 지원에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달라"며 "외교부는 외국인 사망자와 유가족들의 불편함이 없도록 각국의 주한대사관 등과 적극 협력해 본국 송환 절차 간소화 방안을 적극 검토해달라"고도 요청했습니다. 
 
범정부 TF 구성 후속조치 이행을 위해 부처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강경성 1차관이 충남 당진의 리튬 1차 전지 제조시설을 방문해 소방청, 전기안전공사, 가스안전공사 등 유관기관과 현장 안전관리 상황 합동점검을 실시했습니다. 
 
또한 산업부는 국가기술표준원, 소방청, 배터리산업협회, 전기안전공사 등 유관기관이 참여하는 '배터리 산업 현장 안전점검 TF'를 구축하기로 했습니다. 현장 점검 대상에는 이번 화재가 발생한 리튬 1차 전지 제조시설뿐 아니라 리튬 2차 전지 제조시설, 리튬 배터리 ESS(에너지저장장치) 제조시설, 사용후 배터리 보관시설 등 리튬 배터리 관련 국내 핵심 사업장을 포함하기로 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환경부, 행정안전부, 산업부, 소방청, 경찰청 등이 함께하는 '전지 등 화재위험 방지 대책 TF'를 구성해 사업장 대규모 화재 예방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노동부는 1차 전지 뿐 아니라 2차 전지 제조업체에 대해서도 안전관리 현황을 파악하는 동시에 외국인 노동자 등 산재에 취약한 노동자 안전관리 강화 방안도 수립하기로 했는데요. 
 
"안전불감증 인재…중처법 적용 강화해야"
 
이 같은 대책들이 쏟아지는 것을 두고 노동계에서는 "안전불감증이 낳은 인재"라고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리튬, 1차 전지는 그동안 많은 화재 사고의 원인이 됐는데도 사업장 안전은 무대책으로 방치됐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들은 또 "사고 이전에 진행된 안전 점검이나 셀프 소방 점검에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나왔다"며 "무용지물인 안전 점검이 반복된 것"이라고도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민주노총은 "안전교육이나 최소한의 대피 방법에 대한 교육도 제대로 되지 않은 이중삼중의 구조에서 20명의 이주노동자가 희생됐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이후 7명의 사망사고가 발생한 대전 아울렛 참사도 2년 가까이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수사도, 기소도, 처벌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실태가 반복되는 중대재해의 원인"이라고 미흡한 노동 환경도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백승주 한국열린사이버대 소방방재안전학과 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화재안전조사 제도라는 것이 있지만 보통은 큰 사업장을 대상으로 이뤄지게 된다"며 "작은 곳까지 적극적으로 점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도 하고 외부 위원들의 하루 점검으로 (문제들을) 다 밝혀내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중대재해처벌을 비롯한 징벌적 배상을 강화해야 한다"며 "선진국처럼 50배, 200배에 달하는 배상을 하게 해야 사업주·자본가들이 적극적인 시설 투자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백 교수는 또 "우리나라의 화학 위험물 시설은 인허가 제도만 존재하지, '어떤 사람들이 이런 것을 설계해야 된다'는 법적 제한이 없다"며 "위험성에 대해 전문적 지식을 갖춘 사람이 건물 설계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생산성이나 품질 향상에 대한 안전을 확보하는 시대에서 본연의 안전을 확보하는 시대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김진양·이진하·유지웅 기자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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