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 폭력 난무…'극단정치'가 부른 참극
'트럼프 피격'에 증오 정치 최고조…"대의제 민주주의 한계 직면"
2024-07-16 17:28:42 2024-07-16 18:07:13
[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단의 정치'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대선판을 요동치게 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피격이 대표적입니다. 트럼프 피격은 '증오정치'가 극에 달한 현대 정치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는데요. '정치적 양극화'에 직면한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올해 들어서만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와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등이 습격을 당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정치 문화가 혐오 정치를 불러왔다고 진단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암살 미수 사건 이틀 만인 15일(현지시간)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날 공화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총상을 입은 오른쪽 귀에 붕대를 착용한 채 등장했다. (사진=AFP·연합뉴스)
 
지난 13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유세 현장. 연단에 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오른쪽 귀 윗부분을 총알이 관통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치켜든 채 "싸우라"고 외쳤고, 이 장면은 사진으로도 포착돼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용의자는 토머스 매튜 크룩스라는 20살 청년으로 확인됐는데요. 현장에서 즉시 사살됐습니다. 총격 과정에서는 트럼프 지지자 1명도 사망했습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자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피격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각국 정상들은 일제히 그의 빠른 쾌유를 빌며 정치 테러를 규탄했습니다. 
 
2년 전엔 아베 전 총리 사망…국내도 안전지대 아냐
 
최근 들어 선거 유세 혹은 현장 시찰 중인 정치인의 피습은 그다지 생경하지 않은 장면이 됐습니다. 지난달 7일에는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 코펜하겐 광장에서 선거 운동 도중 한 남성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지난 6월에는 독일 기독민주당(CDU) 소속 로데리히 키제베터 연방하원 의원이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알렌의 유세장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인물에게 주먹으로 맞았습니다. 지난 5월에는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 외곽 마을에서 로베르트 피초 총리가 지지자들을 만나던 중 가슴과 복부에 총탄 세 발을 맞고 중태에 빠졌다가 최근 퇴원했습니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2022년 7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나라시에서 참의원(상원) 선거 지원 유세 중 사제 총탄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지난 2021년 7월에는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사저에 침입한 괴한들이 쏜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국내 정치인들도 테러 안전지대에 있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초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는 부산 일정을 수행하던 중 괴한으로부터 목 부위를 흉기로 찔렸습니다. 당시 그는 부산대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한 뒤 서울로 이송돼 서울대병원에서 수술과 입원 치료를 받았는데요. "상대를 죽여 없애야 하는 전쟁 같은 정치를 이제는 종식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대표 피습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강남의 한 건물에서 10대에게 돌덩이로 머리를 가격당했습니다. 
 
지난 15일에는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자들의 합동연설회 장소에서 한동훈 후보가 무대에 오르자 객석의 일부 당원들 간의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한 후보자를 향해 의자를 집어 던지려고까지 했던 일촉즉발의 순간이었습니다. 
 
"저성장·양극화가 혐오·증오 야기"
 
지역을 막론하고 서로 죽고 죽이는 극단의 정치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진단했습니다. 
 
박창환 장안대학교 특임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호황의 시대에서는 정치가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포용과 허용이 가능했지만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2000년대 이후부터는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호황의 시기에는 좌파든 우파든 정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과 상관없이 경제는 성장하고, 그 과실을 두루 나눌 수가 있었지만 저성장의 불황기에는 양극화 문제가 보다 첨예해진다는 것인데요. 양극화 등으로 인한 박탈감을 상대방을 향한 극단의 정치 혐오 등으로 해소하게 된다는 설명이지요. 
 
박 교수는 "소위 양극화 문제를 기성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다 보니 양극단을 넘나드는 정치인들이 등장하게 되고, 이들이 증오나 혐오를 조장하거나 그 선을 넘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며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인에 대한 분노 등이 테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시작'에 불과하다고 박 교수는 경고했습니다. 그는 "과거 대공황 시기에 등장했던 것이 '파시즘'이었다"며 "불황의 시기에는 정치 테러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기성 정치권이 혐오정치, 증오정치를 벗어나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지점에 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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