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란봉투법, 노동 있는 민주주의의 출발점
2025-08-21 06:00:00 2025-08-21 06:00:00
서구 사회의 거대한 전환점이었던 68혁명에 이어 터져 나온 노동자들의 구호는 “공장 문 앞에 멈춘 민주주의를 공장 안까지”였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분배 정의를 실현하는 경제적 민주주의에 이어 산업 민주주의, 노동 있는 민주주의의 요구였다. 우리나라는 87년 봄 정치적 민주화 요구가 78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져 노동기본권 요구가 분출했다. 그리고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실질적 노동권 회복의 출발점인 노란봉투법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진통을 겪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파업할 권리는 ‘헌법이 허락한 권리인 동시에 현실에서 금기시된 행동’이었다. 노란봉투법, 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안은 그런 현실을 바꾸려는 출발점이다.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의 근거인 사유재산권이라는 헌법의 권리와 파업할 권리를 포함한 노동삼권이라는 헌법의 권리를 조화시키는 합리적 방안이다. 노란봉투법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자, 과거부터 해결해야 했던 과제를 풀기 위한 지극히 상식적인 선택이다. 노동자들의 삶을 망가트리고, 실제로 수많은 노동자를 삶의 벼랑 끝으로 또 죽음으로 내몬 제도를 이제야 바로잡고 있을 뿐이다. 형식적인 노동권을 실질화하는 조처에 반대의 목소리가 과도하게 크다. 
 
이번 개정안의 다른 축은 사용자 범위의 확대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실제 권한을 가진 원청이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를 깨뜨리지 않고는 어떤 권리도 진정으로 행사될 수 없다. 하청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어렵지만 만들어도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과 교섭할 기회조차 없어 임금 한 푼 올리기 어렵다. 이번 개정안은 이미 대법원 판례에서 인정된 기준에 따라,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원청을 사용자로 인정하도록 한 것이다. 과도한 제도적 부담이 아닌 현실 인식의 반영일 뿐이다. 수많은 하청 노조와 교섭하느라 날 지새운다는 원청 사용자들의 우려는 공동교섭을 하면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 원하청 공동교섭, 외주 하청과 원청 간의 밀실 교섭이라는 전례를 바탕으로 공동교섭 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번 개정안은 단지 국내 법체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기준에 맞춘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EU 공급망 실사 지침(CSDDD)과 같이 ESG 경영 흐름 속에서 책임 있는 공급망 관리와 단체교섭 권리의 보장은 필수 요소이며, 노란봉투법이 그 방향과 맞닿아 있다. 
 
제도가 현실에 효과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선, 구체적 실행 기준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기업들이 사용자성 확대를 기업 활동의 불확실성과 부담으로만 해석하지 않게 하려면, 고용노동부가 구체적 판단 기준과 교섭 절차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공동교섭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노란봉투법은 단지 노동조합 활동 공간을 확대하는 법 개정이 아니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의 현실화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며,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실질화하는 제도적 전환이다. 지금 반대하는 목소리는 ‘권리 남발’을 강조하지만, 오히려 이 법안은 질서 있고, 절제된 권리 회복의 장치다. 과도한 손배·가압류를 막고, 원청 책임을 명확히 하여 노사 갈등의 무대를 교섭 중심으로 전환하는 방안이다. 하청 노동자를 권리의 사각지대로 방치하고, 과도한 손배 가압류로 파업권을 형식상 권리로 전락시키면서 초래되는 많은 갈등과 무질서의 대가를 줄이고 확장된 제도의 틀 안에 효과적으로 담을 질서의 회복이다. 
 
이제 국회는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담았던 연대의 의미를 법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결단을 해야 한다. 실질적 노동권 보장을 위해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위해 노란봉투법은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이다. 한국의 기업들도 권리 배제, 책임과 위험의 전가, 과도한 착취의 관행에서 벗어나 산업 민주주의의 일원이 되는 계기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참여하길 바란다.
 
김성희 L-ESG평가연구원 원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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