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제조업 경기가 반도체 등 정보통신기술(ICT) 중심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기계·소재·철강 등 전통 제조업은 공급과잉·글로벌 통상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양극화가 극명해지고 있습니다. 반도체 등과 달리 대부분의 전통 제조업은 개선보다 버티기 국면을 걷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K-제조업'의 체온이 한쪽만 뜨겁고 한쪽은 식어가는 구조적 시그널을 내비치면서 산업의 생존 조건인 '균형 회복'은 사실상 안갯속에 놓인 형국입니다.
26일 산업연구원(KIET)의 산업경기 전문가 서베이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제조업의 11월 업황 전망 PSI는 '개선'을 예측하고 있지만 반도체 등 ICT 부문만 기준치(100)를 지속 상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반도체 등 ICT 부문만 '호황'
26일 산업연구원(KIET)의 '산업경기 전문가 서베이조사'(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총 119명·165개 업종 응답) 결과를 보면, 내달 제조업 업황 서베이 지수(PSI)는 전월보다 4포인트 오르면서 상승 전환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PSI 항목별 응답 결과는 100을 기준치로 200에 가까우면 전월 대비 '개선' 의견을, 0에 근접할수록 '악화' 의견을 말합니다. 국내 제조업의 11월 업황 전망 PSI가 기준치보다 높은 106 지수를 가리키면서 개선' 전망을 높게 보고 있는 겁니다.
특히 내수(107), 수출(113)이 8개월 만에 기준치를 상회하면서 생산도 100을 웃도는 108을 기록했습니다. 투자(108)와 채산성(104)도 상승 전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배경은 국내 제조업의 주요 유형별 업황 PSI 중 기계·소재 부문을 제외한 ICT 부문만 긍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전월 대비 ICT 부문은 5포인트 상승 전환한 반면, 소재 부문(97)이 5개월 만에 기준치를 하회했습니다. 기계 부문(98)도 100을 밑도는 수준입니다. 세부 업종별로 보면, 반도체가 15포인트 급등한 147 지수를 기록했습니다. 기준치를 웃돌긴 했지만 전월과 비교해 5포인트 감소한 10월 업황 전망(132)과 비교하면 대조적입니다.
이달부터 보면 가전, 화학, 조선 등의 업종이 전월보다 상승했습니다. 자동차, 철강, 섬유,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기계 등 다수 업종은 하락세입니다. 더욱이 기준치(100)를 웃도는 업종은 반도체 등 ICT 부문 중심에 그치고 있습니다. 자동차, 철강, 섬유,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기계 등 다수 업종은 기준치를 밑돌고 있습니다.
11월 전망에서는 가전, 기계,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업종에서 상당 폭 반등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섬유,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바이오·헬스 등의 업종은 하락세를 예견하고 있습니다.
이중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자동차, 조선, 섬유 등의 업종은 100을 하회하고 있습니다. 전자와 화학의 경우는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 전문가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와 정보기술(IT) 제품 교체 수요가 회복의 중심축이나 문제는 ICT 외 산업으로 확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제27회 반도체 대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11월 '철강 반등' 전망에도 '불안'
전통 업종 중 이달 100지수로 보합세를 유지한 철강의 경우는 내달 114를 전망하고 있지만 앞날이 밝지 않은 대표적 업종입니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은 공급과잉과 무역 불안의 직격탄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유럽연합(EU)의 철강 수입쿼터 대폭 축소와 관세 인상 방침이 현실화될 경우 국내 철강 생태계 전반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최근 이재관 민주당 의원실의 분석을 보면, EU에 무관세로 수출하는 한국 철강은 지난해 수출량이 381만5000톤 규모입니다. 한국에 배정된 국가 쿼터는 263만6000톤입니다. 글로벌 쿼터는 117만9000톤으로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EU는 철강 쿼터 총량을 기존 3053만톤에서 1830만톤으로 47% 줄이고 초과 물량에 대한 관세도 25%에서 50%로 인상할 것으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
쿼터가 47% 줄어들 경우 국의 국가 쿼터는 139만7000톤으로 감소하는 등 최소 123만9000톤이 관세 적용을 받는다는 추산입니다. 철강 업계가 EU에 납부하게 될 관세만 8754억원에 이릅니다. 이는 철강업계 상위 10개사 영업이익의 30%에 이르는 규모입니다.
이재관 의원은 "공급과잉으로 이미 업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EU 관세까지 현실화하면 국내 철강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며 "EU는 각국과의 협상을 거쳐 최종 쿼터 물량을 확정할 방침인 만큼 정부의 통상 협상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무엇보다 철강은 자동차·조선·기계 등 연관 산업의 기반 소재로 연쇄 타격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합니다. 정부는 EU와 공식·비공식 협의를 강화하고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내놓겠다는 전략이나 조기 협상력 확보가 최대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 8월18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야적장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최근 2025년 기업 경영실적 전망을 통해 "산업별 특성에 맞는 투트랙 산업 지원 전략이 필요하다"며 "반도체 등 첨단산업은 생산세액공제, 직접보조금 지급 등 과감한 정책으로 지원하고 철강·석유화학 등 위기산업은 특별법 통해 기간산업의 경쟁력 회복을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경제 전문가는 "제조업 회복의 이면에는 구조적 불균형이 자리한다. 반도체 업황 개선은 긍정적이지만 기계·철강 등 중간재 산업의 활력이 떨어지면 하반기 경기 확산 속도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산업의 생존 조건은 '균형 회복'이나 한쪽만 뜨겁고 한쪽은 식어가는 구조에서 벗어나긴 어렵다고 본다. ICT 중심의 수출 호조가 전체 제조업을 끌어올리기엔 기계·소재 부문의 수요 위축이 너무 크다는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16일 경기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와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