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주식 빚투' 부추기는 금융위
2025-11-06 06:00:00 2025-11-06 06:00:00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가 '빚투(빚내서 투자)' 발언을 내놓은 지 하루 만에 국내 주식시장이 폭락했다. 코스피는 5일 장중 6% 이상 급락하면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되기도 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4일 라디오에서 "빚투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일종의 레버리지"라며 "지난 10년을 보면 주식이 부동산보다 나았다"고 말했다.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국자가 차입투자를 부추기는 듯한 발언은 매우 이례적이다. 
 
금융당국이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명분으로 가계대출 관리를 내세우면서 차입투자를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그간 당국의 논리대로라면 레버리지의 위험을 경고해야 할 위치에서 오히려 차입투자를 옹호하는 셈이다. 
 
금융당국자의 언어는 곧 시장에 대한 신호로 작용한다. 그의 발언이 "빚을 내서 투자해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확산시킬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생산적 금융'이라는 정책 방향을 강조하는 취지의 발언이겠지만, 생산적 금융은 자본의 질적 전환을 뜻하는 개념이다. 위험 감수 리스크를 키우라는 의미가 아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 조심스러운 이유는 그만큼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권 부위원장은 "지난 10년을 보면 주식이 부동산보다 나았다"고 했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자산의 성격을 간과한 단순 비교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담보가 존재하고 실사용 목적이 분명한 자산인 반면 주식은 시장 변동성을 이용해 수익률이나 원금 손실 리스크를 극단적으로 키운 투자 수단이다. 쉽게 말해 주식은 하루아침에 종잇조각이 될 수도 있는 고위험 자산이다. 부동산의 '갭 대출'이 구조적 레버리지라면, 주식투자는 순수한 시장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두 자산의 위험 수준을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금융정책 책임자로서 적절치 않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금융당국은 "빚투는 위험하다"며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19 시기 초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속에서 2030세대는 주식과 코인 시장으로 몰려들었고,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을 통해 '레버리지 투자'에 뛰어들었다. '빚을 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빚도 자산'이라는 인식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면서 수많은 청년들이 신용불량자로 내몰렸다. 
 
'빚내서 투자하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낸 '부채 폭탄'이 청년 세대의 어깨 위에서 터진 셈이다. 일부는 빚을 갚지 못해 채무조정 프로그램으로 몰렸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들도 이어졌다. 빚투의 악몽이 이렇게 생생한데 "빚투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당국 고위 관계자의 발언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현재 개인의 레버리지 투자는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단순한 개인 차원의 위험을 넘어 경제 전체의 불안정성을 확대할 수 있는 요인이다. "빚을 많이 진다는 것은 리스크가 올라간다는 뜻이고, 리스크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금융의 기본 원칙을 다시 새길 필요가 있다. 
 
투자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판단이지만 금융 당국자는 시장의 방향을 제시하는 위치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금융정책 수장의 '빚투 예찬'과 같은 투자 조언이 아니라 위기 관리의 필요성을 일관성 있게 강조하는 것이다. 금융정책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언어의 무게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임유진 금융팀장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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