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보험사들이 설계사 조직을 보험대리점(GA)으로 분리하는 '제조·판매 분리(제판분리)'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GA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보험사조차 관리하기 어려운 수준에 달하면서 감독 강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보험사·GA '주객전도'
3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대형 법인GA의 2024년도 내부통제 실태 평가 결과'에 따르면, 대형 GA 75개사 중 내부통제 실태 평가등급에서 취약·위험을 받은 GA는 22개사(30%)에 달합니다. 이 중 소속 설계사 1000명 미만인 GA가 취약·위험 비중의 52.0%를 차지했습니다. 지사와 지점들이 연합해 조직을 꾸린 '지사형' GA 34개사 중 15개사는 취약·위험 등급을 받았습니다. 규모가 작고 보험사와 독립된 GA일수록 내부통제가 부실하다는 방증입니다.
해당 평가는 보험업법상 영업 기준 마련과 준법감시인 선임 의무가 있는 소속 설계사 500인 이상 대형 GA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나 500인 이하 GA가 약 4400곳에 달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내부통제가 상대적으로 더 부실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대형 GA는 그나마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지만 작을수록 더 어렵고 깜깜이 상태"라며 "설계사 간 이동도 잦아 관리가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제판분리는 2021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확대됐습니다. GA는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한화생명(088350)이 자회사형 GA인 '한화생명금융서비스'를 출범시키면서 시장 구도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이후 다른 보험사들도 앞다퉈 제판분리를 추진해 자회사형 GA가 늘어났고, 일반 GA의 영향력까지 커지면서 보험시장의 주도권이 보험사에서 GA로 이동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기준 전속·GA 설계사 규모는 총 50만9604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중 GA 설계사는 30만1275명으로 전속설계사(20만8329명)보다 약 10만명 더 많습니다. 전속설계사는 보험사 소속이라는 안정성이 있는 반면, GA 설계사는 판매 영향력이 크다는 장점이 있어 GA 중심의 성장세가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또한 GA는 금융사가 아니라 위탁사업자로 분류돼 금융당국의 직접적인 규제를 받지 않아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불완전판매, 과열 경쟁, 리베이트 관행, 계약 빼앗기, 설계사 간 형평성 논란 등 각종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왔습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이정문 민주당 의원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에게 GA 관리·감독 공백을 지적하며 직접적인 규제 강화 필요성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전속 설계사는 자사 상품 우선으로 팔지만 GA 설계사는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함께 팔아 강점이 있다"며 "설계사들이 GA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GA 영향력이 막대해졌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GA 수가 한 둘이 아니다 보니 사실상 관리하기 매우 어렵다"며 "보험은 여전히 대면 채널 판매 비중이 높아 고령층 등에게는 여전히 불완전판매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외경. (사진=뉴스토마토)
제3자 리스크 관리 실효성 의문
금융당국은 GA 관리·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1일부터 '제3자 리스크관리 가이드라인'을 시행했다고 밝혔습니다. 보험사가 GA를 정량·정성적으로 보다 세밀하게 평가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보험사를 통한 간접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당초 공개됐던 초안보다 완화된 수준으로 시행되면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생·손해보험협회는 지난 9월 '제3자 리스크관리 가이드라인' 초안을 내놓았습니다. 초안에는 불완전판매 비율, GA의 내부통제 수준, 소비자 보호 체계의 적정성 등을 지표로 삼아 GA 리스크를 평가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러나 GA 업계가 보험사에 사실상 금융당국에 준하는 감독 권한이 부여돼 경영 자율성이 침해될 수 있다며 반발하면서 가이드라인 시행 전 재논의를 거쳐 최종안이 마련됐습니다.
가이드라인 초안에 포함됐던 위탁자 감사 및 자료 요구 권한은 '보험사 점검과 자료 요구 권한 및 이에 대한 수탁자 협조'로 완화됐습니다.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기보다는 GA가 과도한 자료 요청이라고 판단할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있도록 조정한 것입니다. GA에서 리스크 발생 시 보험사가 업무 위탁을 중단하거나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조항도 '업무 변경·중단 등을 고려해야 한다' 형태로 순화됐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기존 초안보다 많이 순화된 형태로 합의안이 도출됐다"며 "결국 GA가 협조를 하지 않는다면 보험사도 쩔쩔 맬 수 있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이어 "GA를 당국이 아예 관리를 하던 보험사가 관리할 수 있게 권한을 세게 주든지 해야 하는데 애매한 상황이 됐다"며 "가이드라인을 일단 시행해보고 고쳐 나가자는 취지일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ryuyoungjin153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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