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역대급' 압승, 중·일 관계는 긴장 고조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중 외교부장-일 관방장관 공방
2026-02-18 13:50:56 2026-02-18 16:20:58
중·일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 일본은 기존 정당을 모두 해산하고 대정익찬회(大政翼贊會)를 만들었다. 국가총력전을 위해 일국일당제(一國一黨制)가 필요하다는 군부의 주장에 따라 기존 정당이 해산하고 대정익찬회로 통합됐다. 이에 따라 태평양 전쟁 중이던 도조 히데키 내각 시절 1942년 4월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대정익찬회 추천 후보가 466석 중 381석(81.8%)을 얻었다.
 
지난 8일 일본 중의원 선거 결과는 대정익찬회를 떠올리게 할 만큼 역대급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일본 자민당은 전체 465석 중 개헌선인 3분의 2(310석)를 가뿐히 넘긴 316석(68%)을 차지했다. 물론 현재의 민주주의 선거를 군국주의 시절 국가총동원 체제와 비교할 수는 없으나, 선거 결과는 그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압도적이다. 
 
1955년 자민당 창당 이후는 물론이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자민당은 단일 정당이 3분의 2 넘는 의석을 쓸어 가는 기록을 세웠다. 연립 여당인 일본유신회(36석)까지 합치면 352석이고, 개헌에 우호적인 국민민주당(28석), 참정당(14석)까지 합치면 개헌 찬성 세력은 무려 394석(84.7%)에 달한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연합뉴스)
 
'여자 아베' 다카이치, 아베 뛰어넘어…2차 대전 이후 '가장 강력'
 
'여자 아베'로 불릴 정도로 보수색이 강한 다카이치 총리가 고 아베 전 총리를 뛰어넘어, 사실상 2차 세계대전 후 최강의 정권이 됐다. 총리 취임 자체가 아슬아슬한 약체 정권이었으나 취임 3개월 만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는 승부수를 던져 대반전을 이끌어냈다.
 
다카이치는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으로 중·일 관계가 악화된 것이 오히려 지지도 상승 요인으로 작용해 평균 7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확보했다.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일본에서는 '자민당이 아니라 다카이치의 승리'라는 데 이견이 없다. 
 
다카이치는 지난해 10월20일 요시무라 히로후미 일본유신회 대표와 당수회담을 열어 연정에 합의했다. 이 자리에서 양당은 "전후 80년에 걸쳐 쌓아온 숙제를 해결한다"며 △스파이 방지법 제정 △국가정보국(가칭) 창설 △무기 수출 5종 제한 철폐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 △헌법 개정 등 우경화가 뚜렷한 9개 항에 합의했다. 
 
헌법 개정은 평화헌법 9조(전쟁 영구 포기·전수 방위 원칙) 개정을 뜻한다. 다카이치는 이번 선거 중에 "헌법에 왜 자위대를 명기하면 안 되는가"라며 개헌을 하게 해달라고 촉구하고 다녔다. 핵무기 보유·제조·반입을 금지한 비핵 3원칙 재검토도 부정하지 않고 있다. 3대 안보 문서(△국가안전보장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 개정에도 적극적이다.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 2% 이상으로 올리고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 의사도 공개화했다. 하나같이 일본 보수·우익의 숙원 과제들로, 종합하면 '전쟁 가능한 보통 국가'로 가겠다는 것이다.
 
일본 내부를 단칼에 평정한 다카이치가 한·일 관계는 어떻게 가져갈까?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은 물론 일본에도 온갖 변덕을 부리고 있고, 중국과는 심각하게 갈등하는 상황에서 한국과는 우호 관계를 지속해야 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다카이치의 고향인 나라를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답례 차원에서 3월쯤에 이 대통령의 고향인 안동을 방문해 '셔틀 외교'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지속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이 크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가 중의원 선거 압승으로, 강경 우파로부터의 자율성을 확보했다고 분석하지만, 다카이치 자신의 우익 성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당장 오는 22일 시마네현에서 열리는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이름)의 날' 행사가 주목된다. 지난 13년간 일본 정부 차원에서는 차관급인 정무관이 참석했지만, 다카이치는 작년 10월 자민당 총재 선거 때 "대신(장관)이 당당히 나가면 좋지 않나. 한국 눈치 볼 필요가 없다"고 한 바 있다. 춘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뇌관은 수두룩하다.
 
중국은 '다카이치 압승'에 대한 당혹감과 거부감이 뚜렷하다. 다카이치의 '대만 유사시' 언급에 대해 중국은 "더러운 목을 벨 수밖에 없다"(쉐젠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는 격한 발언은 물론, 수산물 금수 조치와 희토류를 포함한 이중용도 물자의 수출 통제 등 강력한 보복 카드를 통해 압박해 왔다. 그런데 이런 조치들이 오히려 다카이치의 인기를 높이면서 자민당 대승의 배경이 됐기 때문이다. 다카이치는 선거 승리 뒤 "앞으로 중국과 의사소통을 지속적으로 할 것"이라면서도 "단, 국익이란 관점에서 냉정하고도 적절하게 대응하겠다"고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31일 경주에서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군국주의 전철 밟지 말라"중국, '다카이치 압승' 거부감
 
중국 외교부는 일본 선거 직후부터 연일 다카이치 정부를 비판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일본 당국이 국제사회의 우려를 직시하고 군국주의의 전철을 밟지 말라"면서 "일본 극우 세력이 제멋대로 행동할 경우 반드시 일본 국민의 저항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직격한 데 이어 10일과 11일에도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14일에는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외교부장이 직접 나섰다. 외교·안보 분야 세계 최대 포럼인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일본 총리가 대만해협의 유사시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 위기 사태'를 구성한다고 말했다"며 "이는 중국의 국가 주권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자 일본 정부 대변인인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은 바로 그다음 날 "일본의 방위력 강화는 갈수록 엄중해지는 안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특정 제3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며 외교 경로를 통해 중국 측에 엄정한 입장을 전달했다고 맞대응했다. 
 
이에 대해 주일 중국대사관은 17일 대변인 명의로, 일본의 입장 전달을 "중국은 이미 단호히 기각했다"는 입장문을 내고 "일본이 과거 국가 존망 위기 상태를 이유로 대외 침략을 감행했던 길을 다시 걷는다면 이는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11월 다카이치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으로 촉발된 중·일 갈등이 단기간에 타결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거의 사라진 셈이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