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가속화하던 시중은행 점포 통폐합 작업이 멈춰섰습니다. 우체국이 은행의 대면 업무를 대신하는 은행대리업 시범사업이 곧 시행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은행의 공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제동이 걸렸습니다.
은행권 "점포 구조조정 여전히 필요"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은 아직 올해 3분기 이후 영업점 통폐합 계획을 별도로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은행이 최근 전국 지점과 출장소 37개를 인근 점포에 통합한 것을 제외하면 하반기 들어 점포 정리에 나서거나 계획하고 있는 주요 은행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우리은행의 통폐합 대상은 영업점 29곳과 출장소 8곳으로 서울과 경기뿐 아니라 부산, 대구, 울산, 인천, 전북, 충남, 제주 등 전국에 걸쳐 있습니다. 작년에만 문을 닫은 우리은행 점포가 30곳이었던 걸 감안하면 올해는 한 차례 통폐합만으로 지난해 폐쇄 규모를 넘어선 셈입니다.
은행권 점포 감소는 모바일·인터넷뱅킹 확산에 따라 최근 수년간 계속돼 왔습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지점과 출장소 수는 2023년 말 5744개에서 2024년 말 5628개, 지난해 말 5514개로 줄었습니다. 2년 만에 230곳이 사라졌습니다.
점포 형태도 대형 지점에서 소규모 출장소 중심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국내 은행 지점은 2023년 말 4865개에서 지난해 말 4547개로 318곳 줄었지만, 같은 기간 출장소는 868개에서 956개로 늘었습니다. 인력과 비용이 많이 드는 지점은 줄이고 일부 업무만 취급하는 출장소를 늘리는 방식으로 영업망을 재편한 결과입니다.
이 같은 통폐합 기조 속에 오는 20일부터 시행되는 은행대리업 시범사업이 점포 통폐합의 대체 수단이나 정당화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은행대리업은 은행이 아닌 제3자가 은행으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아 예금이나 대출 등 금융서비스를 대면으로 제공하는 제도입니다.
시범사업에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과 우정사업본부가 참여합니다. 은행 점포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역의 총괄 우체국 20곳에서 은행의 대출 상담과 신청 접수 등 대면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방식인데요. 시범사업을 거쳐 취급 업무와 시행 지역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존에도 우체국이나 편의점에서 일부 은행의 입출금과 현금자동입출금기 업무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대출 상담과 서류 접수까지 은행 외부에서 처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은행권에서는 은행대리업이 본격적으로 정착하면 점포 통폐합을 둘러싼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점포를 폐쇄하더라도 인근 우체국 등에서 대면 업무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대체 수단으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은행이 점포를 폐쇄하려면 해당 지역 고객에게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해야 합니다. 점포 이용 고객의 연령과 수, 주변 점포까지의 거리, 대체수단 유무 등을 조사하고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영향평가위원회의 검토도 거쳐야 합니다.
우정사업본부와 4대 시중은행, 금융결제원은 시중은행이 없는 군 단위 지역 중 20개 총괄우체국에서 은행대리업 시범운영을 추진하기로 했다. 서울 서울중앙우체국 창구에 시중은행 입출금 업무 안내 포스터가 붙어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당국 "은행대리업, 점포 폐쇄 명분 안돼"
금융당국은 올해 3월부터 점포 폐쇄 절차를 한층 강화했습니다. 과거에는 반경 1㎞ 이내에 다른 점포가 있으면 일부 절차를 생략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동일 건물이나 같은 상권 내에서 단순 통합하는 경우 등을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사전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했습니다.
은행대리업자가 곧바로 은행 점포와 동일한 대체 수단으로 인정돼 사전영향평가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체국 등에서 예금과 대출 관련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면 은행이 영향평가 과정에서 금융 접근성을 보완한 수단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적어도 올해 하반기에는 은행대리업을 계기로 점포 폐쇄에 속도를 내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시범사업 초기부터 점포를 줄일 경우 금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점포 폐쇄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당국도 이런 우려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은행대리업 시범 운영 단계에서 인근 영업점을 폐쇄하는 것을 제한하는 부가 조건을 걸었습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율규제 성격의 부가 조건이나 가이드라인 만으로는 은행 점포 감축 흐름을 막기는 어렵다고 본다"며 "법적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은행입장에서는 형식적 절차를 이행한 뒤에 통폐합을 강행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포용금융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점도 부담입니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서민·취약계층 지원과 지역금융 공급 실적을 평가하고 이를 비교·공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점포 유지 여부도 고령자와 장애인, 농어촌 거주자 등 금융 취약계층의 접근성과 직결되는 만큼 포용금융 평가 과정에서 비중있게 다뤄질 전망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대리업 시범사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제도의 운영 상황과 고객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점포 폐쇄 속도를 조절하는 측면이 있다"며 "대리점이 점포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지도 검증되지 않은 단계에서 곧바로 대체재로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김진홍(오른쪽에서 네번째) 금융위원회 금융산업국장이 1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은행대리업의 실제 사업시행 주체인 우정사업본부, 금융결제원 및 4대 시중은행과 은행대리업 업무협약(MOU) 체결식에 참석해 모두발언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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