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정부가 추진하는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대상 중 하나로 코스피 상장사인
기업은행(024110)이 거론되는 가운데 개정 상법이 새 변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기업이 경영 판단을 할 때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의 이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게 개정 상법의 취지인데요. 지방이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업가치와 일반주주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을 경우 정부와 여당의 주주권익 보호 기조와도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책금융기관 유일 '코스피 상장사'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대상으로 금융공공기관과 국책은행을 검토하고 있으며 조만간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기업은행은 정책금융기관이자 공공기관이지만 동시에 일반주주가 존재하는 코스피 상장사인데요. 지난해 말 기준 정부가 기업은행 지분 59.5%를 보유하고 있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지분도 각각 7.2%, 1.8%를 갖고 있습니다. 나머지 31.5%는 일반주주 등 기타 주주들입니다.
정부가 최대주주인 만큼 지방이전에 대한 정부 방침이 확정될 경우 기업은행이 이를 독자적으로 거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정부 정책만으로 곧바로 본점 이전을 추진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닙니다. 현행 중소기업은행법 제4조는 기업은행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두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기업은행을 서울 외 지역으로 이전하려면 우선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또한 중소기업은행법은 정관에 본점과 지점 등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본점 소재지를 변경하려면 정관도 함께 손질해야 합니다. 기업은행은 정관 변경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정관 변경의 효력이 발생하려면 금융위원회 인가도 받아야 합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개정된 상법이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여당 주도로 통과돼 지난해 7월 시행된 상법 제382조의3에서는 이사가 '회사 및 주주'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이사가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정부·여당이 상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강조했던 것이 지배주주나 특정 주주의 이해보다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도록 기업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은행의 지방이전이 정부 결정과 관련 법 개정만으로 끝나는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반주주 사이에서는 상장사의 경영 의사결정인 만큼 기업은행 이사회가 이전에 따른 비용과 편익,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 일반주주의 이해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습니다.
현재 기업은행의 지방이전안 등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돼 있습니다. 정부가 기존 법안과 다른 지역을 이전지로 결정하면 새로운 법안을 발의하고 여야 간사 협의를 거쳐 상정해야 합니다. 정무위 안팎에서도 정부안이 구체화하면 법안 검토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무위 한 관계자는 "소관 부처와 기관으로부터 법안에 대한 의견을 받아야 하는데,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되거나 기업은행처럼 상장사인 곳도 있어 그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대상 중 하나로 코스피 상장사인
기업은행(024110)이 거론되는 가운데 상법 개정이 또 다른 변수가 될 전망이다. 사진 이날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 모습. (사진=뉴시스)
기업가치 훼손시 밸류업 정책과 상충
본점 이전에는 새로운 사옥 마련과 전산·시설 이전, 직원 이전 지원 등 상당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핵심 인력 이탈이나 금융사와 기업이 집중된 수도권에서의 접근성 저하가 영업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기업은행의 기업금융 공급망 역시 수도권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금융위의 올해 정책금융 공급계획에 따르면 기업은행의 기업금융 공급액 69조원 가운데 수도권 공급액은 43조5000억원으로 약 63%를 차지합니다. 지난해 기업은행 사업보고서를 기준으로 전체 644개 영업점 가운데 수도권에 427개가 몰려 있습니다. 전체의 약 66%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행 본점까지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영업 네트워크와 기업 심사의 효율성 등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기업은행이 시장에 약속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계획과 상충되는 점도 지방이전 추진에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기업은행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통해 중장기 자기자본이익률(ROE) 10% 이상을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보통주자본비율(CET1)에 연계해 배당성향을 최대 40%까지 높이겠다는 계획도 내놨습니다. 수익 다변화와 비용관리 혁신 등을 통해 수익성을 높이고 이를 다시 정책금융과 주주환원에 활용한다는 구상입니다.
지방이전으로 일회성 비용이 커지거나 전문 인력이 이탈하면서 경영 효율성이 떨어질 경우 기업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데요. 국토균형발전 명분의 정부 정책 수행을 위해 발생한 비용을 결과적으로 기업은행과 일반주주들이 감수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부가 기업은행 지방이전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경우 이전 비용 부담 주체와 기업가치 훼손 가능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자본시장정책 분야 한 수석 연구원은 "지방이전 자체가 곧바로 충실의무 위반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이사회가 지방이전에 따른 비용과 편익, 기업가치 영향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정부 방침이라는 이유만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주주 권익 보호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한국산업은행 본점 옆 의사당대로에서 산업은행지부, 기업은행지부, 수출입은행지부가 주최한 국책은행 지방이전 저지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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