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리티법 지연…미국은 '물밑작업', 한국은 '제자리'
미국, 포괄법 지연에도 기존 법으로 제도 정비
"입법 공백기, 규제 기관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차이"
2026-08-24 16:49:41 2026-08-24 16:55:05
[뉴스토마토 전연주 기자] 미국의 가상자산 시장구조 법안인 클래리티법(CLARITY Act)이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지만, 시장 제도화 작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기존 법률과 권한을 활용해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부터 파생상품까지 개별 규율을 잇달아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국은 가상자산 발행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등 상당수 영역에서 2단계 입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클래리티법은 미국 상원에서 논의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상원은 다음 달 15일 절차 표결을 앞두고 있지만 윤리·자금세탁방지 규정 등을 둘러싼 이견이 남아 통과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다만 법안 처리와 별개로 미국 규제 기관은 제도 정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SEC는 지난 3월 가상자산에 기존 증권법을 어떻게 적용할지 기준을 정리해, 어떤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볼지와 거래 방식별 규제 적용 방식을 구체화했습니다. CFTC도 지난 5월 등록 거래소인 칼시엑스(KalshiEX)가 비트코인 현물가격을 추종하는 무기한 선물을 상장할 수 있도록 승인했습니다. 포괄적 시장구조법이 완성되기 전이라도 기존 권한 안에서 가능한 영역부터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입니다.
 
미국이 포괄법 없이도 움직일 수 있는 배경에는 이미 기존 법과 규제 기관의 권한이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김태림 엑시스 로(AXIS Law)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미국은 포괄법이 없어 규제 공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연방증권법과 상품거래법이라는 강력한 모법이 존재하고, 그 적용 경계가 불명확했던 것"이라며 "SEC와 CFTC는 각각 기존 법에 따른 해석·면제·규칙제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클래리티법 역시 새 권한을 만드는 것보다 두 기관의 관할 경계를 명확히 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설명입니다.
 
미국은 기존 법과 규제 기관 권한을 활용해 가상자산 제도화를 이어가는 반면, 한국은 2단계 입법 지연으로 관련 제도 정비가 더딘 상황이다. (이미지=챗GPT)
 
한국은 구조가 다릅니다. 현재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이용자 자산 보호와 불공정거래 규제를, 특정금융정보법은 자금세탁방지(AML)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가상자산 발행·공시, 원화 스테이블코인처럼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데에는 별도의 입법 근거가 필요합니다.
 
법인 거래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 제한은 법률상 금지가 아니라 과거 정부 대책과 금융권 관행에서 출발했는데요. 때문에 금융당국은 새 법률 없이도 지난해부터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를 단계적으로 허용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발행 주체, 준비자산, 상환 의무 등을 새로 규정해야 합니다. 커스터디 같은 신규 업종의 인가 체계나 금융회사의 가상자산 사업 참여 역시 새로운 법적 근거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입법 지연은 국내 사업자들의 사업 계획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전통 금융회사와 디지털자산을 결합한 여러 협업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현재 제도 안에서 구체화할 수 있는 영역은 제한적"이라며 "제도화가 진행돼야 실제 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한미의 차이는 단순한 입법 속도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분석입니다. 미국은 클래리티법 처리가 늦어져도 기존 법을 토대로 규제 기관이 입법 공백을 일부 메울 수 있지만, 한국은 새로운 제도를 만들 위임 근거가 부족해 2단계 입법 지연이 곧바로 사업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김 변호사는 "실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입법 공백기에 규제 기관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라며 "미국은 기존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은 반면 한국은 제한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상자산 산업이 거래소를 넘어 스테이블코인과 금융상품, 기관 서비스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입법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가 국내 시장의 다음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전연주 기자 kiteju10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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