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경찰이 10월부터 동료가 맡은 사건을 문의한 경찰관은 물론, 문의를 받고도 신고하지 않은 경찰관까지 징계키로 했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정착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류가 팽배합니다. 일선 경찰들 사이에서도 선후배 관계를 우선시하는 조직문화가 여전하고, 사건문의를 부적절한 행위로 인식하기보다 "선배나 상급자가 물어보는데 어떻게 딱 잘라 거절하고 신고하겠느냐"고 반응할 정도입니다.
오는 10월부터 사건문의 신고·징계 강화…'유명무실' 제도 손질
경찰은 오는 10월부터 그동안 내부 지침으로 운영해 왔던 '사건문의 금지제도'를 경찰청 공무원 행동강령에 명문화하고, 사건문의 금지·신고 대상과 징계 기준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다른 수사관에게 사건을 문의한 경찰관은 물론 문의를 받고도 신고하지 않은 경찰관 역시 징계 대상이 됩니다. 적용 대상도 전·현직 경찰관에서부터 사건을 선임하지 않은 변호사와 법률사무소 사무장 등 외부인까지로 넓힙니다. 사건문의를 비롯해 사건 관련 정보 누설, 신고의무 위반 등 유형별 징계 양정 기준도 별도로 세분화해 마련할 방침입니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경찰청 본청사. (사진=뉴시스)
사적접촉 신고제 있었지만…사적접촉 149건 중 후속조치는 '0'
경찰이 사건문의를 엄격히 통제하는 조치에 나선 배경엔 기존의 사적접촉 신고제도가 사실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지난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박상웅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7월까지 '퇴직 후 직무 관련성이 있는' 경찰관과의 사적접촉 신고는 149건이었지만, 별도의 후속 조치는 한 건도 없었습니다.
경찰은 기존 제도가 처벌보다는 예방을 목적으로 한 것이어서 한계가 있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그간 경찰 내부에선 사건 진행 상황을 묻거나 지인을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수준의 행위에 대해 경각심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게 사실입니다. 특히 경찰 특유의 엄격한 상하·선후배 관계가 결합하면서 사건문의 자체를 심각한 비위로 여기지 않는 문화가 깊게 자리 잡은 영향도 큽니다.
수사 부서 근무 경험이 있는 한 퇴직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다른 수사기관, 조사기구보다 피고발인이나 참고인이 직접적으로 마주치는 첫 번째 공권력"이라며 "이런 사람의 지인들이 아는 경찰에게 '겁먹지 않게 해달라', '부드럽게 대해달라' 이런 부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정도는 청탁이 아니라고 보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불거진 방송인 양정원씨 관련 사기 사건 수사 무마 의혹은 이런 내부통제의 허점과 무감각한 현장의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서울남부지검은 양씨 남편으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고 양씨 관련 사기 사건 수사에 개입한 혐의로 전 서울 강남경찰서 수사팀장을 구속기소하고, 사건 관계인과 수사팀장을 연결한 경찰청 소속 경정을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검찰은 해당 수사팀장이 후배 수사관들에게 사건 종결을 재촉하고 피의자로 등록됐던 사건 관계인을 참고인으로 변경해 수사 대상에서 제외한 걸로 보고 있습니다. 사건문의와 수사 개입을 막는 제도가 이미 존재했지만 실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선 이를 걸러내지 못한 셈입니다.
"내일 얼굴 볼 선배인데"…신고의무 실효성 '확보' 방안이 관건
경찰은 10월부터 기존의 허점을 보완하고자 신고의무와 징계를 강화하기로 했지만, 여기에도 맹점이 있습니다. 선배나 상급자가 사건을 문의하고 담당 수사관이 이에 응했지만, 양측 모두 문제 삼지 않는 경우입니다. 제3자로선 사건문의 사실 자체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강화된 제도 역시 당사자의 신고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현직 경찰관 역시 "사건문의 금지제도가 강화되면 적어도 거절할 명분은 이전보다 분명해질 것"이라면서도 "상급자나 오래 알고 지낸 선배를 직접 신고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실제로 얼마나 신고가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경찰 관계자도 "선배나 상급자가 사건을 물었을 때 규정을 이유로 딱 잘라 거절하거나 이를 신고하는 데는 현실적인 부담이 있다"면서 "'당장 내일 또 얼굴을 보고 현장에서 부딪혀야 하는데'라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지난 4일 경찰청에서 열린 전국 경찰 지휘부 화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찰 출신 전문가들은 사건문의와 청탁의 경계를 더욱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조세희 목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건과 관련해서 '잘 부탁한다', '커피 한잔 타달라'는 것도 청탁"이라며 "사건 관련 내용은 아예 언급하지 못하도록 강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평소 잘 아는 사람이고 내일 또 얼굴을 봐야 하는 사람이 전화했을 땐 자발적으로 이를 신고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신고의무를 위반한 사실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에 대해서 방침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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